자연물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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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 나무와 사람, 도시의 모습을 모은 꼴라쥬.
  • 나무가 매개하는 풍경. 나무가 중심인 끝말(모양)잇기.
  • 다른 지역의 닮은 나무를 통해 연결되는 풍경의 파노라마.
  • 작업들이 단독 1장으로서도, 여러장으로서도 아름답기를 바란다.


작업물

왼쪽 사진은 타이페이, 중간 사진은 아마도 도쿄, 오른쪽 사진은 오사카

  • 초등학생 내 방 천장 코너엔 장마 누수로 생긴 얼룩이 남아있었다. 거기서 나는 비스듬하게 묘사된 여우의 얼굴을 보았다. 오랜만에 놀러온 사촌언니에게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화책 여우같아. 언니도 내가 보는 그림을 발견했다, 놀랐다. 재밌었다.
  • 이 작업도 그의 연장선 같다. 오늘은 봄 꽃 숲의 아이들 놀이터.
  • 만약 이 사진을 내 신체만한 사이즈로 만들어 전시공간에서 본다면, 가까이서 보면 한장의 식물과 초록이겠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개별적 사진이 숲을 이루게 된다. 왼쪽엔 그네가 오른쪽엔 노는 아이들이, 그 사이에는 정체모를 어떤 나무와 또 소나무와 벚나무, 매그놀리아의 숲이 있다.
  • 눈은 한번에 다 못본다, 어디에서 어디론가 움직이며 머릿속에서 임시적으로 전체 그림을 구축한다. 뭉테기로 보고 선의 연속으로 어떤 이어짐을 따라 주욱 주욱 뻗어나간다. 이 때 전체 그림 내에서 방향성이 일관적이라면 더 연관성이 짙어진다. 빛의 방향 (즉 그림자가 유사한 방향으로 배치)이나 원근감이 살려지는 선이라든가.
  • 작업이 매우 크기에 사람들의 눈은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움직이며, 한번에 전체 작업의 일부를 보지만 머릿속에서는 이 정보들이 모여 어떤 가상의 숲이나 이야기가 구축되고 전개된다.

구성의도: 인간은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기 때문에, 나무를 훑어 올릴 때에 눈의 위치에 따라 우리가 보는 나무의 크기가 바뀐다. 땅-몸통까지는 1:1 비율로 본다. 그런데 고개를 올려 나무의 상부나 하늘로 시선이 향하면 뭐든 더 작게 보인다. 그래서 1층 → 2층 → 3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작게 배치/만들었다.

3층 (가지와 하늘) — 종결

2층 (몸통 상부와 가지) — 전개

1층 (땅과 뿌리와 몸통) — 시작

가상의 동산을 휘감는 길의 흐름. 내가 사는 남산과 홍콩 미드레벨 지역처럼.

3곳의 산에서, 3개의 시선흐름

왼쪽 두사람은 타이페이 마오콩 산 중턱길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서울 남산의 벚꽃을 본다

왼쪽 두사람이 타던 길을 따라 오른쪽 아래로 내려오면, 케랄라 무나르 산 중턱을 걷는 여성을 버스의 시선으로 본다.

그녀는 봄비를 맞고 있다. 옷이 젖지 않은 승객들을 올려다 본다.

버스기사는 친절하게 이 60명이 탄 40명 정원의 버스를 조심히 세워 그 여자 마저도 태운다

산의 도로에 어둠이 내리기 전에, 더 안전하고 깊은 안쪽으로 우리는 함께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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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르 – 부산 – 간사이 북쪽 – 제네바

인도 자이푸르 – 홍콩 라마섬 – 우리 강릉 – 스리랑카 콜롬보 아래지역 해변 – 인도 케랄라 무나르 차밭.

가로로 1개 행을 유지하며 놓되 시각적으로 풍경의 거리감을 만들기 위해 이미지 간의 거리와 수직 높낮이를 조절했다. 원근감의 표현이 일어나길 바랐다.

타이페이, 부탄, 서울 마포와 잠실, 홍콩의 한 성당!

홍콩, 설악산, 성산일출봉, 서강대.

나무와 작게 봉긋한 언덕이나 바위, 나무의 끝이 서로 연결되어 보였으면 했다.

우리 부산 해운대 6월 점심께, 바르셀로나 6월 이른 새벽녘, 간사이 와카사와다 해변 5월 6시, 우리 서울 한강 뚝섬 근처의 강변 10월 18시. 이미지 사이 여백을 넣을지 뺄지를 많이 고민했었다.


소고.

  • 자연과 인공물 그리고 사람 (작업노트 #116. 20240122의 일부)
    • 어쩌면 우리가 도시에 살며 자연결핍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일뿐, 인간이라면 또는 자연의 한 부분의 어느 생명이라면 누구나 자연과 연결되기를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내가 살고 있는 남산 중턱에서 저 한강너머의 엄청난 콘크리트 건물 뭉텅이의 블록들을 볼 때면,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진다. 불안감이 든다. 그 곳에 가면 마치 ‘생명이 바싹 바를 것만’ 같다.
    • 반대로, 인간의 창작이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서라면 나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숲에서 길을 잃어본 적이 있다면 나의 두려운 마음을 짐작할 것이다. 주변에 내가 걸친 옷 외에는 100% 자연만이 존재할 때, 위압감을 느낀다. 자연에 흡수당하거나, 나의 종족이 만든 안전함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봐, 손쉽게 죽음의 위협에 노출될까봐 무서워하는 연약한 나를 느낄 수 있다.
  • 내게 중요한 것은 그 둘 사이의 균형감, 조화, 대칭성, 융화, 병용. 인간의 안전지대와 생활의 공간이 공존하는 상황. (단 여기서 자연이라면 인공과 대비되는 개념이고, 생물체와 자연현상을 포함한다.)
  •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자연과 인공물 둘 각각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이 융화된 가운데에 사는 사람들과 그 조화로운 환경적 배경이 담긴 잘 담긴, 그 상황을 포착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한장에, 또는 대비효과를 원한다면 여러 장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러나 초기엔 가능하면 패턴성이 보이도록, 이런 요소들이 종합된 사진이 여러장 있으면 좋겠다.

참고링크1:: 꼴라쥬 시리즈 작업글, 참고링크2:: #116 중 자연과 인공물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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