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식물과 초록 (24): 22년도 여름 제주 /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언제든 쉴 수 있는 큰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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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이 20년였으니 오늘은 21년도 사진을 돌아보려고 했다. 저 시기에 유난히 사진이 얼마 없지만 숲이나 나무나 초록사진은 아예 없었다. 기억도 별로 없다. 기억이 없다니? 나는 기억을 잘한다. 적어도 어떤 흐름으로는 인상을 갖고 산다, 매 해의 큰 이벤트들은 잘 기억한다.

대체 내게 어떤 해였던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나는 저 해에 뭘 했던 거지? 앞 뒤의 사진을 찾아보고, 10초정도 고민했다. 생각해도 앞뒤로 뭔가 지워진 듯 흐릿하다.

떠올리고 퍼즐을 맞추고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 한 해는 그 시절의 내게는 풀기 어려운 시기였다. 성인기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시기. 나는 그 시기를 이기기 위해 작년까지 고군분투 했다. 그 시절을 인정하고 거름으로 삼고 나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발버둥을 쳤었다.

그렇게 어려워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반응하는 날이 올 줄이야. 작년부터 시간을 들이고 노력해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쪽 중력의 궤도를 이탈하여 다른 궤도로 들어가는 중인 듯하다.

새 궤도에서 오늘을 함께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나는 그 해를 견뎌내는 과정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가톨릭은 외할머니와 엄마의 종교이다. 내가 가톨릭 세례를 받은 이유는 그곳이 우리들이 어려웠을 때에 찾아갔던 곳, 멀었지만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는 내가 엄마도 할머니도 없을 때에 돌아갈 수 있는 곳, 돌아갈 곳. 그렇게 돌아돌아 또한 한번 더 돌아서라도, 갈 곳이다. 그래서 내 고향이다. 꼭 돌려받을 생각이 없이도 세상 속에서 아주 작은 한 조각인 나를 받아주고 의탁하는 내 집이다.

외할머니에게도 이런 말을 들려줄 수 있었어서,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아지고 극복할 수 있도록 외할머니의 시간이 기다려줬어서 감사하다.

나는 이성적이며 감성적이고, 무신론자이며 유신론자인 듯 하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세상의 면면 모두 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것만이 마음에 남는다. 모두 다르고 그래서 가치있으며 아름답다. 나를 만들어주고 물려주고 보완해주고 아껴주고 곁을 내어주시는 주변 분들께 고맙고 때로는 감동한다. 종종 연쇄적 마음베풂의 상호작용이 낳는 관계형성의 신비로움에 대해 작은 의문을 갖기도 한다, 또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도. 나는 신비주의자인지도.

자 이제 다시 일하러 장례식장으로 가자!

네 분 모두 떠난 지금에 돌아보기에, 그들이 나무라고 할 때 어린 내가 자라는 동안 그들의 그림자는 항상 내 어깨와 머리에 어른대었다. 내가 겪는 어려움과 부딪힘으로 힘들어 할 때에 그들이 내게 준 정신적 유산들은 내가 기다리고 방법을 찾아서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들의 그림자는 내가 모르는 새에 비와 우박과 바람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도록, 그들의 몸뚱이를 빌려 집을 만들고 지붕을 세우도록, 또는 그를 연습하도록 품을 내주었다.

네 분이 다 떠난 이 시기에 돌아보건데, 그들은 나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도록 주변에서 보호해 준 큰 나무이다.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두 발에 땅을 붙이고 살 수 있는 어른이 되도록, 품어주고 기다려주었다. 감사하다, 감사하다는 말이 상투적이다. 더 깊은, 옳은, 알맞는 그런 말을 찾고 싶다. 잘 살아내겠다. 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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