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1 — 봄맞이 눈.
직장인 시절의 초록이란 여행지 사진 뿐이다
직장인이 아닌 지금 이 겨울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지만.
오늘 덕수궁 돌담길 기와에서 눈이 녹아 도도록 떨어지는 모습을 가만 봤다. 양옆으로 넓게 퍼진 처마의 기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한 눈들이 낮 2시의 빛에 조금씩 녹고 있었다.
물이 되어 밀려나는 눈은 마치 수정구슬처럼 반짝이고 빛나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도로록 다라락 대는 모습이 세기 어려운 기와의 갯수만큼 겹쳐보였다.
이것은 물방울 커튼, 마치 중국집의 문발처럼 구슬이 알알이 꿰어진 모습.
이번 눈은 올 때에도 눈보라로 커튼처럼 땅에 오더니, 물로 녹아 땅으로 사라질 때에도 커튼처럼 움직인다. 밀려 내려오며 기와의 굽이진 턱마다 모여 몇방울씩 빠르게 땅으로 굴러내렸다.
무작위하나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물방울의 춤, 그것들이 내려오는 모습은 꼭 오로롱대는 피아노 연주 소리처럼 들렸다.
노트2 — 파이
그리고 오늘 저녁, 2주 만에 우리집 고양이와 병원을 또 다녀왔다. 동그란 머리에 분홍 귀를 가진, 하늘색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냐아 울며 그렇게 치대고 말을 거는 나의 고양이.
이제 나와 함께한지 10여 년인 나의 파이. 파이의 이름은 3.14159, π, 라이프오브파이 그 파이. 경상도 사투리 파이 말고 그냥 그 Pi이다. 피, 파이 파이 파이, 내가 돌아올 이 집을 계속 지켜준 아이. 파이. 내 파이.
나의 고양이 파이가 임파선 암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 그럴 줄로 생각했다. 이미 생각했었다. 너무 결절이 컸어. 얼마전 떼냈던 그 혹이 악성 림프종이라고 했다.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 전개가 안되는 것을 바라지. 바라는 것과 진행은 다르다.
생은 참 짧다 우리가 만나고 교차하는 순간과 시선. 곱게 짙게 여기면 영원일 것처럼 숨이 길다. 오래 촘촘하다. 파이 눈과 오래오래 꼬옥 마주볼 때면 처음부터 오늘까지 눈물이 차오른다. 왤까. 더 많은 눈맞춤 더 많은 사진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더 많은 더 많은.
그냥 충실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