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14년 7월 방콕: 자연과 인공물, 그 사이 사람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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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진에 관하여
  2. 오늘은 #115 의 테마 중 먼저 할 것:
    1. 어제 나열한 테마: 내 사진 라이브러리를 양분한다면?
    2. 생각이 어려울 땐, 먼저 출현한 지성의 힘을 빌려보자
    3.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나의 얘기
    4. 나 = 자연과 인공물의, 양극단 또는 조화 사이에서 자란, 80년대생 시골발 신도시 키드
    5. 자연과 인공물 그리고 사람
  3. #114에서 지정한 할 일 목록의 현황

사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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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떠나기 전날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태국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친해졌던 친구와 밤산책을 하던 날.

사진 아래에는, 사진엽서 테마에 관한 글이 있다.

결론적으로 오늘 정한 사진엽서의 초기 테마는 “자연과 인공물, 그리고 사람의 조화성”에 대한 것이다.

오늘은 #115 의 테마 중 먼저 할 것:

결론) 자연과 인공물과 사람의 조화에 대해 다룰 것

어제 나열한 테마: 내 사진 라이브러리를 양분한다면?


  1. 자연-안정감-안전지대-행복감…



  2. 도시-사람-생활력-다양성…



  3. 그리고 이 대조성 자체가 하나의 주제일 수도


3을 하고 싶다. 근데 3을 어떻게 표현하지?

생각이 어려울 땐, 먼저 출현한 지성의 힘을 빌려보자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프티맹장 Claire Petitmengin (2020)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는 상호관계를 인정하고, 연결을 복구하고, 서로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한복판에서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구글 fr→en 번역: The issue is not to recognize interrelationships, to re-establish connections, to repair or weave links between “human” and “nature” conceived as separate, but to realize their unity at the heart of the experience.)

방키앵 (2022)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p.236 재인용

라고 했는데, 경험의 한복판에서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구현한다는 게.. 무엇이지? 좀더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방키앵의 책을 벗어나 프티맹장의 해당 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읽어보는데,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 비슷해 마음을 두드리는 부분들이 있다.

In this relaxation and this space which opens, rises a kind of sweetness, of tenderness. Plants, trees, earth and water are recognized as living beings, different from us but beings, to whom we are grateful for and want to take care of. 

또 이부분도 마음에 닿는다.

We recognize them as made of the same texture as us. 

프랑스어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고, 해당 문서를 다운로드 하여 구글번역 웹사이트에 올리면 통째로 번역해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나의 얘기

나 = 자연과 인공물의, 양극단 또는 조화 사이에서 자란, 80년대생 시골발 신도시 키드

나에게는 인간이 도시를 구축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서 (또는 동반자로서, 자연을 함께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자연을 대하고 이를 (악세서리가 아니라) 충분히 구조 안으로 끌어들였을 때에 그 융화된 모습에서 경외를 느끼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색의 구성들, 빛과 그림자, 규모있는 개방성은 인간과 자연의 수준 높은 조화라는 묘사 아래에 하나로 묶일 수 있다. 이런 나의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를 추구하는 성향은 언제부터 계발된 것일까? 시골에서 농장과 농사일을 도우며 유년기를 보내고 신도시로 이사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내 삶은 자연과 인공물이라는 양극단을 오가며 일종의 균형을 일궈냈다.

내가 만지고 자란 논밭의 흙과 먼지들과 벌레들은 도시에서는 쓸고 흡수하고 죽여버릴 것들이었던 한편, 위생적이고 세련되며 합리적인 도시의 편의시설들은 시골생활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이던 어느 한 여름 날, 시청 가는 길에 남산 소월로를 지나는 버스를 탔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창을 통해 버스에 들어왔고, 그 밖으로 보이는 우거진 녹지는 반짝였다. 오른쪽으로는 초록 숲을, 왼쪽으로는 저 넓게 펼쳐진 서울의 콘크리트 숲을 가로지르는 버스의 창 밖은 이질적이었지만 동시에 당연했다. 그래서 크면 여기에 자리를 잡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이 길에는 사람이 공들여 만든 건물들과 자생성 높은 자연이 함께했다. 여기에 산다면 내 삶에 원할 때에 언제나 자연이 지근거리에서 함께할 수 있어 보였다. 숲에 들어가 촉촉한 땅을 밟고 그 향을 들이마시고 눈으로 색을 주워담고 몸으로 빛의 온기를 받는 것. 그건 어쩌면 내가, 도시의 삶을 선택한다면 다시 찾기까지 꽤 오랫동안 잃어버릴 수 있는 자연의 조각들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이후 진입할 내가 모를 학교 바깥 세계에 대해 압박감을 갖고 있었다. 대체로 서울 어디든 그러했지만 저 콘크리트와 벽돌만이 내 환경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웠다.

당시 내가 다니고 있던 고등학교는 서울 근처 신도시 경계의 산자락 높은 곳에 있었다. 학교는 농사를 가르칠 정도로 자연친화적인 것을 추구했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푸릇함이 아주 드문 회색과 붉은 빛의 인공물로 가득했다.

내 방의 창문을 열어보면 바깥에 흐린 하늘색과 비슷한 건물이 즐비하였다. 집에서 나와 어떤 생명력 있는 것이라곤 인간 뿐인 듯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학교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주변환경은 천천히 바뀌고, 어느새 내 눈앞에는 푸릇한 산과 숲이 있었다. 오직 우리뿐인 캠퍼스 초입에 진입한 뒤, 숲 한 가운데에 빗물이 빠지도록 설계된 보도블럭 놓인 길을 밟으며 등교길 언덕을 오른다. 10여분의 산책 후엔 나무와 철이 적절하게 사용되어 지은 교실 건물들이 눈 앞에 나타난다.

양희은 가수가 사람들 간엔 적당히 선선하게 바람이 통할만한 거리감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우리 학교는 그의 비유에 적절했다. 도심은 인구밀도만큼 자연결핍도 높았지만, 그를 헤치고 도착하면 (정확히 그 반대인듯) 함께 지내는 사람 수는 충분히 적었고 우리를 품는 자연은 넘치도록 주변을 채웠다. 그렇게 건강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들이치는 빛과 바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특히나 좋아했다. 그곳에는 우리의 소리 뿐이었고, 내 입에 넣는 것들은 출처가 분명했으며, 주변 생태의 중요성에 대해 학교는 교과과정 전반을 통해 다뤄주었다. 감각적으로나 지성적으로나 자연은 내 삶을 구성하는 환경 중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렇게 도시의 편의와 자연의 안정감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게 나뿐이었을까? 아마 우리 학교를 만들었던 선생님들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장년기 전까지 주로 충청도에서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가, 신도시로 이사한 뒤에 제일 좋아했던 것은 다름 아닌, 아파트 꼭대기 층 그의 집 거실에 설치된 거대한 4장의 투명유리를 통해 볼 수 있는 산의 모습이었다.

사계절 혹독할텐데도 우아하게 생존해내는 산의 모습이 사시사철 병풍처럼 걸려있던 까닭에, 할아버지는 안전한 곳에서 매일 아침 시간을 들여 성의있게 관조하며 그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에는 자연 속 고향을 떠나 거대한 도시로 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흡족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 산 자체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집에서 자연의 모습을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다는 사실, 도시에서 사는 동시에 거대한 산을 마주하며 세례를 받는 듯 넘치도록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자연과 인공물 그리고 사람

어쩌면 우리가 도시에 살며 자연결핍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일뿐, 인간이라면 또는 자연의 한 부분의 어느 생명이라면 누구나 자연과 연결되기를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내가 살고 있는 남산 중턱에서 저 한강너머의 엄청난 콘크리트 건물 뭉텅이의 블록들을 볼 때면,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진다. 불안감이 든다. 그 곳에 가면 마치 ‘생명이 바싹 바를 것만’ 같다.

반대로, 인간의 창작이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서라면 나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숲에서 길을 잃어본 적이 있다면 나의 두려운 마음을 짐작할 것이다. 주변에 내가 걸친 옷 외에는 100% 자연만이 존재할 때, 위압감을 느낀다. 자연에 흡수당하거나, 나의 종족이 만든 안전함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봐, 손쉽게 죽음의 위협에 노출될까봐 무서워하는 연약한 나를 느낄 수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둘 사이의 균형감, 조화, 대칭성, 융화, 병용… 이런 시각인 것 같다. 인간의 안전지대와 생활의 공간이 공존하는 상황. (단 여기서 자연이라면 인공과 대비되는 개념이고, 생물체와 자연현상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자연과 인공물 둘 각각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이 융화된 가운데에 사는 사람들과 그 조화로운 환경적 배경이 담긴 잘 담긴, 그 상황을 포착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한장에, 또는 대비효과를 원한다면 여러 장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러나 초기엔 가능하면 패턴성이 보이도록, 이런 요소들이 종합된 사진이 여러장 있으면 좋겠다.)

어라 이번에 할 테마가 정해졌네~

그럼 여기서 오늘 글은 끝~ 와~

#114에서 지정한 할 일 목록의 현황

1) 다루고 싶은 테마를 생각나는대로 추린다 (내일 일요일에 이거 해라)

2) 그 테마 중 ‘먼저 할 것’을 고른다 (월요일 작업 시간에 이거 해라)

3) 그 테마에 맞는 사진을 몇 장 추린다 (화요일에는 이거)

4) 그 중에 연초에 주고받기 괜찮은 사진을 고른다 (수요일에는 이거, 그리고 편집해서 맡겨라)

5) 그 사진을 왜 좋아했는지 생각하며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하장을 쓴다. (다다음주에는 이거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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