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 이 모든 일은 내 영역화의 과정. 돌아보니 내가 이 여정의 의미를 먼 시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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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거창하다. 쓸 말이 길지는 않다.

살면서 일을 하고 배운 점들 몸에 체득되어 흡수된 습관들 반복되는 생각의 형태들 그것을 마치 툴처럼 사용하고 이용한다.

10월에는 목적을 상기하고 목표를 다시 세우기 위해, 비운 상태에서의 검토와 방향전환의 여지를 만들기 위해, 나를 가장 괴롭게 하던 일을 중단했다.

최초에 사진관의 형태를 선택한 건 어떤 계기 때문이었고, 해보니 형태는 아직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삶도 작업실도 지속하기 위해 그 서비스 중에서 나와 합이 맞지 않는 일은 중단할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혹은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볼 수 있는 워크샵에 들어갔다. 2주 간 진행했다. 기대가 낮았다. 툴리을 중심으로 강의식 전개가 된 부분은 아쉬웠고, 실습의 여지로 남겨진 부분은 시간이 부족하여 또 아쉽지만 그래도 참여하며 신선한 바람이 마음에 기억에 일어났다.

마지막 날에 여러 작가들과 얘기하면서 회사 다니는 동안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어떤 ‘어려움’을 이해하고 쉽게 공감하는 그 과정이 그 느낌이 좋았다. 학교다닐 때에도 회사 다닐 때에도 몰랐던 그 기분을 지금에서야 느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또는 저이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저이의 고민, 저이가 말하고자 하는 어려움. 왜냐하면 나도 같은 상황에 처했었고, 타개하기 위해 용을 썼으므로, 이해하고자 했고, 버려볼까도 하였으나 결국은 붙잡혀 돌아오는 일련의 이 과정들, 그리고 계속하기 위해, 저항을 낮추기 위해 버릴 것들을 선별하고 잘라내고 선택하고 그래도 오늘도 하는 그 모든 일.

워크샵이 끝난 다음날에는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었다.

창작자로서의 의지를 가진 프로젝트.

내 사진을, 내가 생산한 사진을 고르고 골라 세상에 내보내는 목적의. 사진에는 사람들의 눈길과 손길과 세상의 바람읠 쐬어주고, 사람들에게는 눈길 한번으로 한순간 긴장을 쉴 수 있길 바라는 목표에서. 그 사진의 배포나 확산에 대한 방법론 적인 고민 중에서 지난시간 고른 건, 관계의 형성을 지향하고 육필 에너지가 담길 수 있는 물성적 엽서라든가, 많은 눈길이 닿을 수 있는 아트월 포스터 형태라든가, 이야기처럼 묶어 내는 물리적 책 또는 전자책, 블록체인에 엮어 웹의 세계에 반영구적으로 띄워놓는 NFT. 이번에 새로 추가된 건 아카이빙의 관점에서 브라우징용 카탈로그의 구축. 그렇게 본체가 있다면 이런 활동을 사진 아이템 단위별로 기록할 수 있다, 이건 나의 전산화 욕망을 건드리는 매력적인 안이다.

나는 집요하면서도 느슨하다. 나는 데이터를 쌓을 때엔 고도로 집요하고, 실행에서는 힘을 빼고 힘을 줄 때를 아직 구분하지 못해 쉽게 지치며,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느슨하다. 균형을 맞추면 좋겠다.

사업자로서의 의지를 가진 프로젝트.

파이를 돌보고 보내며 영감을 받은 반려동물 관련 앱의 아이디어가 있다. 이건 여기에 정확히 아직 쓰진 않았다. 그리고 예술가나 창작의 영역에 관련해서는, 최초에는 저작물/저작권 관리의 토큰화를 기획했다. 실제 설계를 깊이 하진 않았다, 여름의 일이었고 당시 부족하다 느낀 건 스마트컨트랙트의 개발 뿐만 아니라 기획에 필요한 저작권 영역이나 시장수요에 대한 이해였다. 이번에 워크샵 참여하며 이 두번째 아이디어가 진화했다. 아카이빙과 저작물-저작권 관리를 엮어서 다시 생각했다. 아래 문서는 아이디어의 사업화 가능성만 다룬 간단한 피치덱 (alpha v1.0 수준) 이다. (서비스 구성에 대한 내용은 적지 않았다.) 대강 이런 느낌일 듯 하다. Acq-strategy::Airbnb, data-input::Claude/V-flat, DB::Airtable, Amenities::Dropbox, Network/Community::Github+SoundCloud+Linkedin, Catalog/Archiving::Omeka, Publish::Google Arts & Culture/Linktree. 이런식으로. 좀더 더 드릴다운 해야한다.

내가 몇년을 잠재워놓은 내면의 그로스매니저의 페르소나가 기지개를 피며 ‘응 내차례인가?’ 한다. 그 아이가 등을 펴고 다리에 힘을 주고 땅에서 일어나는 걸, 그 일어나는 걸 느낀다. 이제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시간도 감정도 떨어져 나왔다, 회사 때의 일은, 회사 때의 일로 갈무리를 하였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사고를 전개하고 실행을 할 수 있는 최초의 배터리 3% 충전은 했다. 그렇게 내 속의 어떤 내가 매우 신나하면서 제발 제발 이 사업 개발안을 고민할 시간을 좀 내놔, 라고 말한다.

이거 될 거 같아, 라고. 이거 너의 커뮤니티이면서 동시에 너의 고통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이용하여 서비스의 편의성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아마 그 예술가를 위한 아카이빙 워크샵에서 모두가 어려워 하는 부분,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 외부의 기술은 이미 그걸 뛰어 넘었는데 아직 그 기능이 흘러들어오지 않은 영역, 이에 따른 비대칭성의 상황 등을 목도한 듯 하다. 또 내가 이 생활을 안했다면 몰랐을, 혼자서 모든 일을 끌고나가며 에너지도 메모리도 부족한 1인 창작자의 현실, 동시에 평생 어차피 이 일을 놓을 수 없다는 걸 이미 받아들여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당면한 과제들. 내가 돌아다니며 내 작업을 설명할 때마다 꼭 필요했는데 구축하기엔 너무 힘들었던 것들. 엘리트주의의 아카이비스트들이 갖는 벽들. 그러나 최신의 기술이 이미 그걸 쉽게 넘을 수 있는 현 상황. 그 모든 일들이, 그러니까 내가 10년을 머물렀던 IT업계와, 더 그 긴 시간을 머물렀고 앞으로 머무를 이 예술과 창작의 언저리에서, 나는 끈을 엮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그 그로스 매니저가 잠에서 깨더니 육체를 갖고 정신을 점유한 내가 묻는다. 그래 이번주 일지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갖고 있던 오랜 습관은, 2025W49 처럼 업무진행노트를 쓰는 것인데, 그러니까 2023년 중반부터 지금까지 그걸 썼느냐고 묻는다. 아니, 안썼지. 그러면 워크스페이스 노트는 어딨어 기록을 모두 남긴 통 말이야, 지라든 에버노트든 가져와봐. 라고 했을 때 나는 이 블로그를 들이밀며 어 이런 건 하나 있어. 라고 하자 혼이 난다. 이 항해일지에는 목표가 없고, 목적도 명문화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해한다. 이 항해일지는, 빙글 빙글 돌더라도 몸을 푸는- 어쩌면 진찰기록 같은 것, 내가 어디가 고장나고 구멍이 뚫렸는지 어디가 작동하고 어디가 막혔는지를 알기 위한 시간의 기록. 그럼 시작했다는 사업에 대해서라도 기록이 있을 거 아니야, 라고 묻는다. 응 거기엔 어떤 계획도, 잘하고자 하는 그런 것은 없었어, 라고 내가 답한다. 그런 공간에서 그런 시간에서 내가 무엇을 할 때에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알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곳이었어, 라고. 그 말은 맞다.

사진관은 내게, 리트머스 시험지, 시험대였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서 처음 원했던 대로 모르는 사람을 (그 수로만 본다면) 여럿 만났고, 동일 사람과의 관계적 밀도는 더 얕아졌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 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회사모드가 아닌. 자영업자로 프로필화된, 일종의 NPC 상태인 나를 대하는 사람들. 그 군상들. 사람들은 어떤 패턴화가 있고 캐릭터도 정의할 수 있다. 아니 하고자 했던 말은 이게 아니다.

그 리트머스 시험을 치는 동안에 나는 인상사진을 거의 매일 수행해야 했는데, 그 인상사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목적과 목표가 분명하며 배포가 비즈니스 측면에서 되는 일,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 고치고 또 고치며 내면에서 좀처럼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그의 주관적 지표를 의식해야 하는 일. 즉 어느 프로젝트에 어떤 쓰임을 위해 생산되어야 하는 사진, 사전기획이 가능하며, 성공성 지표는 프로젝트의 성격과 연관되어 있으며 어느정도 객관적 사고가 가능한, 그리고 일정상이든 예산상으로든 그 제약이 만들어서 일을 멈출 위치가 있는 것은 내게 적당한 수준의 챌린지로 배울 점과 해낼 수 있는 역량 모두를 자극했다. 한편 어떤 사람의 결핍된 자아적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내가 동원되는 일, 정확히는 개인이 자신의 얼굴사진이나 가족사진 등을 그 내면의 표준이나 정답에 맞추어 내게 고치라고 지시하는 상황, 그리고 그 결과물의 성공성 지표는 다분히 주관적이며 그의 마음에 드느냐 안드느냐에서 갈음나며, 제일 중요한 쓰임, 그 의의에 있어서 그의 개인상활 중 쓰이는 사진 이상으로서의 임팩트가 없는 형태의 서비스는 내게 매순간 긴장과 좌절감으로 연결되는 고통을 주었다.

모든 일의 수행자는 나의 몸과 마음과 정신이다, 나는 일련의 필터 같은 존재이다, 껄끄러운 긴장은 이 필터를 지나지 못하고 몸에 남는다. 그리고 10월, 나는 잠시 후각을 잃었다.

인상사진에서도 이 둘 사이에서, 나는 후자의 상황이 거듭되며 점점 마음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행복감이 사라졌다. 완벽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완벽주의, 누군가의 완벽한 상을 위해 나를 갈아넣는 종류의 완벽주의. 그것을 떼어내려고 얼마나 힘들었나. 그런데 1년여를 이렇게 살고 나자, 완벽주의 고개를 빼꼼히 들고 그 꼬리를 드러내었다. 안녕 나 여깄었어, 사라진 줄 알았는데 먹이를 주네 고마워. 그 완벽주의 자식은 거대한 도마뱀이나 이무기 같이 생겼을 것이다. 그 굵은 목을 내 손 날로 퍽 치고, 다시 기절을 시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증명사진을 내가 하는 서비스에서 도려내었다. 증명사진은 짧은 기간동안 깊은 수준으로 현재 서울사람들이 어떤 얼굴을 원하는지 알게해줬다, 그리고 그것을 빠르게 보정으로 얻어내는 법을 연구할 기회를 주었다, 좋은 부트캠프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이상 할 수 없고 안하는 게 낫다.

그래서 중단하였다, 좋은 선택이다.

다른 말로는 계속 할 일을 선택하였다, 정말 좋은 고민과 결정이다.

이 외에도 좋아하는 지적탐구를 위한 영역들의 책을 다시 읽고, 그것을 과식하는 개처럼, 탐식하는 고양이처럼 와구와구대며 게걸스럽게 읽어대고, 때로는 쪼아먹는 새처럼 문단마다의 이야기를 노트에 적어가며 그려가며 정리하는 놀이. 그 놀이를 다시 시작했다.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이것이 그 시끄러운 유튜브보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드라마의 드라마의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 요즘에는 마이클 모리스의 집단 본능을 읽는다. 나의 지적 탐구의 지향점은 인간과 사회와 의사결정과 활동의 패턴과 그 어디즈음인 것 같은데, 아직은, 이렇게 읽고 고민을 해도 아직은 정체를 찾기 어렵다. 내게 경제학과 금융, 행동경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영역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탐구성은 트버스키나 댄애리얼보다는 대런 애쓰모글루에 가깝다, 내가 그처럼 집필력을 갖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약점이자 덜 개발된 곳은 바로 그 영역이다, 생각을 하고 기획을 짠 뒤에 직조하는 실행과정을 묵묵하게 견디며 결국 하나의 니트를 완성하는 일. 그 전체에서, 실행과정을, 코를 정확하게 만들고 실을 끼워넣고, 다른 실을 또 찾아서 그것을 끼워넣고, 엮어내고, 다시 또 하는 일, 나는 그것을 잘 해내지 못한다, 그걸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달라질텐데. 왜 나는 그게 어려울까?

그리고 그게 바로, 단거리와 장거리 수영의 차이 같기도 하다.

논문도 책도 작품의 포트폴리오(아카이빙)화도, 어쩌면 장거리의 일이다. 리듬을 갖고 호흡을 적당하게 하며 쉬었다 힘주기를 적당한 수준으로 반복하며 그냥 밀고 나가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일. 회사에서는 크게는 이걸 훈련할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물론 내 영역의 일을 후다닥 끝내는 방법도 연습했지만. 그런데 가만 생각하면 요 몇년 간 사진일을 하며 훈련한 건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또는 패턴의 윈도우를 길게 가져가지 않고 후딱 끝내는 형태였다. 며칠 내에 끝내고 없애고. 짧은 호흡, 밭게 하는 생각. 즉시성이 강조되는. 실행력에도 레이어가 있다면 어떤 하나의 레이어는 잘 충족하지만 (빠르게 움직여서 그 시간동안 필요한 사진을 만든다), 다른 한켠의 레이어 (호흡이 긴 일을 완성까지 밀고가며 완전하게 한다)에 대해서는 충족수준이 낮았다.

그래서 다음 1년은 결국 이 ‘프로젝트’들, 내가 기획하고 완결짓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결국은 해내기 위한 시간’으로 쓰려고 한다. 그 초석이든, 그것의 중간완성이든. 단거리 스퍼트 말고, 괴로운 과정이 분명 있겠지만, 충분히 리듬을 가지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직조하고, 한 덩이로 만들어, 마음에서 생각에서 꺼내어 내 물리적 세상에 다른사람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참여할 수 있는 상태로 내어놓는 일.

그것을 하려고 한다.

생일이다. 생일을 축하하자, 지은아. 생일 축하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파이가 많이 보고 싶다. 내가 잘 크고 있어 여러분. 나를 키워가고 있어. 어렵고 쉽지 않지만 가능성이 있는지도 몰라. 내가 해내면서 나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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