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15분 쓰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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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트

2024년 12월 30일 낮.

무슨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머릿속에서 뽑아낼 얘기가 무엇일지 잘 모르겠따. 오른쪽 눈꺼풀이 가볍게 떨린다. 나침반은 일기를 쓰며 돌아갔는데, 글쓰기를 멈추자 내가 갈 곳을 가리키던 나침반이 휑뎅그렁 어디에 안착하지는 못한 채 바늘이 어디인듯 아닌듯 확신없이 움직이길 반복한다, 멈추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나.

언제 쉴지 정하지 않았다보니, 과로가 반복되며 피로를 겪었다. 예전 직장에서 성장 매커니즘을 설계했더라도 기간마다의 마일스톤 목표치를 정하지 않고는 성장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냐는 타박이 떠올랐다. 해소되지 않은 긴장은 출처에 상관 없이 몸을 끌어당겼다. 주의력이 산만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매일 몇번씩 다닌 곳에서 넘어졌고, 막 끓인 물에 손등을 데이고, 다래끼가 올라오고, 자주 실신 전조증상에 해당하는 특유의 변화를 몇번 느꼈다. 월초에는 허리가 굳었기도 했다.

쉰다는 게 뭐지.

긴장을 놓는 시간.

언제 긴장을 놓지.

답하기 어렵다.

잘 모르겠다.

그럼 나는 왜 긴장을 했을까? 언제 긴장이 올라왔을까? 쳐내야 할 일이 앞에 밀려있고, 제대로 쉴 틈이 없을 때? 12월 중순 기말고사 한 주는 과도하긴 했다. 4개 수업의 기말과, 이틀의 부산출장과 아트센터 홍보촬영과 미니프로젝트 촬영 두 건, 그리고 그만큼의 후보정..

내가 가려던 길이 이게 맞나? 라고 자문을 했다. 왜냐하면, 비슷한 바쁨을 예전에도 겪은 적이 있고, 그 때에 느낀 부조리함은 (사회적이 아니라 1명의 개인사 측면에서) 지금 1을 넣어서 나오는 결과가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살아있게 맞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각 프로젝트의 연결성이 매우 낮아서, 여러 건이 마치 단독주택처럼 분산되어 있고 본질과 의도 측면에서 어떤 궤를 중심으로 합치되는 힘이 없다. 그러면 1회성으로 쓰이고 마는 단건의 업무에 준하고 거기서 사라진다.

이런 관점에서는 내가 하려는 작업이 무엇인지 정하고, 공간의 정체성을 그 작업의 방향과 얼라인을 어느정도 시켜서 여러 프로젝트의 운영이 하나의 우물을 파는 방향으로 가도록 설계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고민은 집중을 요하고, 집중을 필요한 일 외의 긴장을 완화한다. 그렇게 집중은 피로를 푼다. 반면 고민하지 않는 자신을 인지할 때에는, 사는 측면에서야 즉각적인 정신노동이 덜한 것 같아 추가적 피로가 없는 것처럼 느끼지만, 고민하지 않고 대강 사는 데서 오는 ‘뭉테기의 삶’이 주는 불안이 상존하고 여기서 오는 긴장이 더 큰 피로를 은은하게 삶에 끼얹는다.

그게 글쓰기를 하거나 설계적 고민을 할 때의 이득..

일단은 쓰는 게 목적이었고 곧 손님이 올 예정이므로 우선 여기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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