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업
자이푸르 방문.
자이푸르는 잘 마할이라는 물 위의 궁전과 북쪽 산의 요새와 그 성벽을 가리키는 나하르가르 포트, 시내 중심가의 시티궁전으로 유명하다. 내 인상은 심각한 교통체증이었다. 도로에 공사가 많아 시끄럽기로는 올드델리 못지 않았다.
아마 비행기 타고 도시로 들어간 뒤 우버를 불러 어느 부촌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북쪽 교외의 한 호텔로 나가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오며 돌아다녔던 것 같다.
여행노트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설정을 잘못 놨어서 Raw파일이 없이 jpeg만 남은 여행이었다. 때문에 사진 화상이 좀 투박하다

















노트: 가족사진 찍나요?
- 며칠 째 잇따라 ‘가족사진을 찍을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 아 이것은 작년 말의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똑같이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와 비슷한 인상이지만..
- 사람들이 [사진관]을 통해 연상하는 것, 즉 Top of mind 단어가 ‘가족사진’일 수도 있고
- 또는 주변에 가족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이 꽤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 연초까지 생각만하고 실행계획은 세우지 않았던 ‘가족사진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 [가족사진 프로젝트] 초안 글. https://leejieun.net/2024/01/03/2024-01-03/
- 당시 내 생각은 내가 가족사진을 한다면, 가족의 뜻을 [각자 정의하는 내 집단]으로 바꾸어 사진을 찍고자 했다.
- 통상 사회적 관념 안에서의 가족원 구성, 또는 법률의 테두리에 들어가있는 가족유형이 아니더라도 ‘가족사진을 찍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도 민구스럽지도 않도록 문을 열어놓고 싶었다.
- 왜 그러고 싶었을까… 그냥. 그게 요즘의 생활/살이/흐름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 과거 어린 내가 ‘통상적이지 않은 가족형태’이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하거나 몰상식하게 느껴졌던 행정적 불합리함에 대해 펼치는 반기일 수도 있다.
- 청소년기 초반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일부 교사나 어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거나 ‘정상 범주’ (이 단어도 싫다) 에 들지 않은 예외적 환경에서 자란 나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고 그래서 불이익을 주려는 (정확히는 혜택의 범주 안에 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 아마 그들에게는 부모와 형제 모두 있는 가족구성이 완벽 혹은 완전하다는 인식이 있던 것 같다. 만약 그 구성이 여러모로 완전하다면 덜 완전한 쪽에 손을 내미는 게 균형이 맞고 (그들이 볼 때에) 찢어진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더 합리적이 아닌가 싶지만, 그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 불합리함. 불평등. 불공정. 불편함. 이들은 차별을 만들고, 차별을 당하는 측에서는 필연적으로 차등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한다. 차등을 공간적 위치로 환원하여 생각한다면, 이를테면 중심이 아니라 외곽이다. 타인이 나를 일방적으로 ‘외곽’으로 밀어낸다면 반발심이 들 수 밖에.
- 그런 차별적 태도는 잘못되었다, 라고 시차를 두고서라도 곱씹으며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다름을 수용하지 않으므로서 개인에게는 상처이고, 사회는 (문화)다양성과 (성장)가능성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면..
- 멜팅팟이든 샐러드이든, 다름을 수용하지 않는 경직된 문화가 나는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도 잘 설명하고 싶다. 좀더 공부해서..
- (우리도 비빔밥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밥에 그 나물 말고)
- 극단적 저출생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테두리 안에 더 많은 가능성을 밀어넣어서 유틸라이제이션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게 차순위 아닐까.
- 즉 가족의 테두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개별성에 대한 사회의 용인/존중을 이끌어낸다면..? 더 넓은 이해, 더 많은 상호작용, 더 다양한 경우의 수, 더 다채로운 삶, 더 입체적인 우리.
- 한번 물이 들어가서 커브가 돌면, 시차는 있겠지만 출생도 어느정도 돌아오지 않을까.
- 또 저정도로 매력적인 사회라면, 외부에서의 유입이 일부 부족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이 때엔 이미 외국 발 이민자 문화에 대한 사회적 포용력이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이니)
- 내가 자라는 동안의 가족사진은 그런 사회의 시각을 부끄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90년대-00년대라도 젊은 한부모 가정의 가족사진을 일상에서 본적이 있는가? 나는 오늘날 까지도 없다.
- 그래서 되려 나에게 가족사진은 고유하고 비정형적인 ‘각자의 가족사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률적 가족관계증명서를 반영하든 말든 혈연관계로 구축되었든 말든 종족이 같든 다르든 상관 없는 각자 정의대로 찍는 가족 사진.
- 또는 한부모 가정이든 입양 가정이든. 나랑 고양이만 있든 비혼인 동거 가정이든 비혈연 친구관계이든 그 구성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또는 세상에 가족이 아직 없어 ‘내 집단’에 나 혼자이든.
- 또는 장성한 형제들이 만든 가족을 제외하고 내 부모와 나, 함께 자란 형제자매만 있는 사진이든.
- 내 가족, 내 울타리, 내가 구축한 나의 공동체, 경제활동과 생활을 함께하고 삶의 고락을 함께 넘는다면 가족이 아닌가.
- 그래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사진 촬영에 임하기 전 충분히 고찰하고 싶었다. 리서치와 현실 상호작용을 통해 관념과 통념, 실제는 어떠한지 알아보는 구성이었달까.
- 질문은… ‘이전세대까지의 가족이란 무엇일까’,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족의 범주는 어디까지이며 무슨 의미일까’, ‘가족의 유형이나 형태.. 어떻게 구분해볼 수 있을까’, ‘차별이 없는가? 있는가? 있다면, 가족 형태따른 직간접 차별에 의한 사회경제적 영향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는가.’
- 여전히 질문이 너무 크다. 더 더 더 좁히고 싶다.
- 사진은 시선의 방향과 각도를 고를 뿐, 현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매체이다. 이런 시각을 견지하며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아카이빙을 한다면 어떨까?
- 이 여러장의 가족사진과, 그들의 스토리가 만드는 다채로움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을까. 또 거쳐오고 버텨오며 맞춰가고 담금질하고 사랑해 온 그 시간이 ‘전형적 가족사진’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을까.
- 그렇다면 배제와 외곽으로 밀기는 포용과 중심으로 당기기로 전환될 수 있지 않을까.
- 그렇다, 서랍속에 넣어둔 질문 혹은 문제의식과 다시 연결된다. 사진관을 통해.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