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빛나는 햇빛 (31): 2017년 Jaipur / 각자의 정의대로 찍는 가족사진.

·

·

  1. 오늘의 작업
  2. 노트: 가족사진 찍나요?

오늘의 작업

자이푸르 방문.

자이푸르는 잘 마할이라는 물 위의 궁전과 북쪽 산의 요새와 그 성벽을 가리키는 나하르가르 포트, 시내 중심가의 시티궁전으로 유명하다. 내 인상은 심각한 교통체증이었다. 도로에 공사가 많아 시끄럽기로는 올드델리 못지 않았다.

아마 비행기 타고 도시로 들어간 뒤 우버를 불러 어느 부촌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북쪽 교외의 한 호텔로 나가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오며 돌아다녔던 것 같다.

여행노트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설정을 잘못 놨어서 Raw파일이 없이 jpeg만 남은 여행이었다. 때문에 사진 화상이 좀 투박하다

노트: 가족사진 찍나요?

  1. 며칠 째 잇따라 ‘가족사진을 찍을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 아 이것은 작년 말의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똑같이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와 비슷한 인상이지만..
    • 사람들이 [사진관]을 통해 연상하는 것, 즉 Top of mind 단어가 ‘가족사진’일 수도 있고
    • 또는 주변에 가족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이 꽤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2. 연초까지 생각만하고 실행계획은 세우지 않았던 ‘가족사진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3. 당시 내 생각은 내가 가족사진을 한다면, 가족의 뜻을 [각자 정의하는 내 집단]으로 바꾸어 사진을 찍고자 했다.
  4. 통상 사회적 관념 안에서의 가족원 구성, 또는 법률의 테두리에 들어가있는 가족유형이 아니더라도 ‘가족사진을 찍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도 민구스럽지도 않도록 문을 열어놓고 싶었다.
  5. 왜 그러고 싶었을까… 그냥. 그게 요즘의 생활/살이/흐름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6. 과거 어린 내가 ‘통상적이지 않은 가족형태’이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하거나 몰상식하게 느껴졌던 행정적 불합리함에 대해 펼치는 반기일 수도 있다.
    • 청소년기 초반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일부 교사나 어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거나 ‘정상 범주’ (이 단어도 싫다) 에 들지 않은 예외적 환경에서 자란 나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고 그래서 불이익을 주려는 (정확히는 혜택의 범주 안에 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 아마 그들에게는 부모와 형제 모두 있는 가족구성이 완벽 혹은 완전하다는 인식이 있던 것 같다. 만약 그 구성이 여러모로 완전하다면 덜 완전한 쪽에 손을 내미는 게 균형이 맞고 (그들이 볼 때에) 찢어진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더 합리적이 아닌가 싶지만, 그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 불합리함. 불평등. 불공정. 불편함. 이들은 차별을 만들고, 차별을 당하는 측에서는 필연적으로 차등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한다. 차등을 공간적 위치로 환원하여 생각한다면, 이를테면 중심이 아니라 외곽이다. 타인이 나를 일방적으로 ‘외곽’으로 밀어낸다면 반발심이 들 수 밖에.
  7. 그런 차별적 태도는 잘못되었다, 라고 시차를 두고서라도 곱씹으며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다름을 수용하지 않으므로서 개인에게는 상처이고, 사회는 (문화)다양성과 (성장)가능성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면..
    • 멜팅팟이든 샐러드이든, 다름을 수용하지 않는 경직된 문화가 나는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도 잘 설명하고 싶다. 좀더 공부해서..
    • (우리도 비빔밥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밥에 그 나물 말고)
    • 극단적 저출생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테두리 안에 더 많은 가능성을 밀어넣어서 유틸라이제이션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게 차순위 아닐까.
    • 즉 가족의 테두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개별성에 대한 사회의 용인/존중을 이끌어낸다면..? 더 넓은 이해, 더 많은 상호작용, 더 다양한 경우의 수, 더 다채로운 삶, 더 입체적인 우리.
    • 한번 물이 들어가서 커브가 돌면, 시차는 있겠지만 출생도 어느정도 돌아오지 않을까.
    • 또 저정도로 매력적인 사회라면, 외부에서의 유입이 일부 부족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이 때엔 이미 외국 발 이민자 문화에 대한 사회적 포용력이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이니)
  8. 내가 자라는 동안의 가족사진은 그런 사회의 시각을 부끄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90년대-00년대라도 젊은 한부모 가정의 가족사진을 일상에서 본적이 있는가? 나는 오늘날 까지도 없다.
  9. 그래서 되려 나에게 가족사진은 고유하고 비정형적인 ‘각자의 가족사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률적 가족관계증명서를 반영하든 말든 혈연관계로 구축되었든 말든 종족이 같든 다르든 상관 없는 각자 정의대로 찍는 가족 사진.
  10. 또는 한부모 가정이든 입양 가정이든. 나랑 고양이만 있든 비혼인 동거 가정이든 비혈연 친구관계이든 그 구성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또는 세상에 가족이 아직 없어 ‘내 집단’에 나 혼자이든.
  11. 또는 장성한 형제들이 만든 가족을 제외하고 내 부모와 나, 함께 자란 형제자매만 있는 사진이든.
  12. 내 가족, 내 울타리, 내가 구축한 나의 공동체, 경제활동과 생활을 함께하고 삶의 고락을 함께 넘는다면 가족이 아닌가.
  13. 그래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사진 촬영에 임하기 전 충분히 고찰하고 싶었다. 리서치와 현실 상호작용을 통해 관념과 통념, 실제는 어떠한지 알아보는 구성이었달까.
    • 질문은… ‘이전세대까지의 가족이란 무엇일까’,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족의 범주는 어디까지이며 무슨 의미일까’, ‘가족의 유형이나 형태.. 어떻게 구분해볼 수 있을까’, ‘차별이 없는가? 있는가? 있다면, 가족 형태따른 직간접 차별에 의한 사회경제적 영향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는가.’
    • 여전히 질문이 너무 크다. 더 더 더 좁히고 싶다.
  14. 사진은 시선의 방향과 각도를 고를 뿐, 현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매체이다. 이런 시각을 견지하며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아카이빙을 한다면 어떨까?
  15. 이 여러장의 가족사진과, 그들의 스토리가 만드는 다채로움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을까. 또 거쳐오고 버텨오며 맞춰가고 담금질하고 사랑해 온 그 시간이 ‘전형적 가족사진’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을까.
  16. 그렇다면 배제와 외곽으로 밀기는 포용과 중심으로 당기기로 전환될 수 있지 않을까.
  17. 그렇다, 서랍속에 넣어둔 질문 혹은 문제의식과 다시 연결된다. 사진관을 통해.

Navigate

Posts

Photo Series (Updating..)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