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빛나는 햇빛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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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진은 현실을 관찰하는 작업.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작해 이십여 년을 계속 하다보니 한가지 알게 된 현상이 있다.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사실 많은 부분은 구멍이 뚫려있고 (데이터로 들어오지 않거나 데이터를 내가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나는 의도적이 아니나 이를 관념적으로 메꾼다. 의식을 세우거나 의도하지 않으면 많은 정보는 들어오지도 않고 튕기듯 스쳐간다. 다만 메꾸는 것이다 뇌가. 예측성이라고 해야할까 안 중요하거나 굳이 프로세싱 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어떤 이유인진 몰라도. 촬영에 나서면 이 모드가 꺼지고 매우 전면적으로 관찰자 모드가 되는데, 그 때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 같다. 방학하면 한번 다녀와야지.
  2. 며칠 전에 자전거로 밤의 연남동을 20분정도 헤맸다. 일부러 미로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서도, 답답한 상태. 요즘의 나와 다름 없다. 그래 답답했다. 지도 키고 아는 길로 나갔다. 내 생활도 이제는 목표점 찍고 나아가야지. 더 헤매다가는 진이 빠질지도. 이정도가 딱 좋아.
  3. 며칠 전에 어느 분이 그정도면 이제 거시경제 지표 정도는 다 알겠네요? 아뇨 아직은..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것이니 들여다보면서 생각하면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답했더니, 그거 AI가 다 해주는데. 라고 하셨다.
  4. 왜 공부를 하는가라고 주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 AI시대에. 번역기나 통역가가 있다고 외국어 공부를 안하지 않는 것처럼, 계산기가 있다고 산수를 안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이미 극도의 수련을 거쳐 나온 많은 예술품이 있기 때문에 이제 너는 예술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기존에 쌓아온 지적 유산을 도화지로 삼아 다른 형태로 모험하며 배우고 정복(winning)한다. AI가 있다고 뭐 크게 다를까? 그는 새로운 도구이다. 다만 도구에 종속되지 않고(내가 말하는 종속이란, under the hood를 의심하거나 이해하지 않고 그냥 철썩 믿는 것) 스스로 현실을 해석하고 관념적 사고로 풀 수 있으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5. 어느 영역을 공부하든, 내가 계속 학습하는 이유는 내가 여러 정보를 받아들이고 내 관점에서 재해석 할 수 있는 자유와 스스로 비저닝을 하는 능력마저 AI든 누구에게든 위임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공부를 반복하며 앎의 지평을 넓게 또 약간씩 깊이를 확보할수록,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시간을 바쳐 현실을 관찰하고 해석한 그 산출물을- 그들의 시점과 사고관으로 렌즈를 바꾸어 상상하고 받아들여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들의 의견과 나의 삶이 연결되는 재미, 내 생각을 조금씩 계발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그게 AI 시대가 되더라도 우리가 공부를 멈추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술도 그렇다.
  6. 나는 인간이 이렇게 같은 햇빛 아래에서 따로 또 같이 사는 모습, 비판적 또 비평적으로 사고하고 자기 의견을 계발하고 일생을 통틀어 천착하는 질문과 문제 하나씩 쥐고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하고 부족한 건 위임하며 서로 어느정도 빚을 지고 덕을 보고 이끌고 이끌리고 아웅다웅하고 갈등과 해소를 반복하고 협력하며 함께 하는 모습을 반발짝 떨어져 보는 게 좋다. 도구가 진화했다고 이 현상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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