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업
빛 그림자의 교차에 눈이 끌린다. 나는 분홍빛, 밝은 초록, 노란색, 밝은 주홍이 좋다.
이제 바다도 초록 나무도 새롭게 보인다. 그동안 천착하여 보면서 어떤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럼 다음엔 햇빛도 새롭게 느껴지겠지.
1. 델리 4월 마지막 주
바닥에 굴러다니는 목화솜, 새로 태어난 새처럼 보인다.






2. 시퀀스
내가 좋아하는 빛과 작은 바람,
팔락.


3. 공항 근처 해변
당시 애인이 당시의 내가 좋아했던 간식을 갖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서 그래 뭐 보고 싶냐고 물었다, 인도에서도 내륙에만 갇혀 산 게 거진 3달이었으니 답답했어서, “바다.”
공항에서 영종도 해변은 지척이었다.





요즘 주변과 대화하는 와중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걸 해주고 싶다거나 그 사람이 고생하느니 내가 좀더 움직이는 게 낫지, 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 마음이 참 이뻐서 말한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깊은 애정을 갖고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에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온전하게 다루고 잘 가꾸고 있는 것 같아 존경이 생긴다. 왠지 등 뒤에서 빛이 나는 듯하다.
자기 외의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상호작용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일부를 조금씩 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삶의 충격 앞에서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들이 함께 구축한 세계의 안팎의 사정의 세부내역을 알고자 하기보다는, 그저 주고 받는 사랑으로 구축한 자신의 세계가 있다는 점에 경외할 뿐이다.
사진은 위험해, 자꾸 그 시절의 마음을 불러낸다.
나아가야 해.
오늘의 작업송
그 공항에서 해변으로 향하는 짧은 운전길, 차에서 들었던 solange의 앨범.
어제의 일
학교. 동갑내기 대학원 동기의 부고
어제 수업이 끝날 때 즈음에, 예전 대학원 동갑내기 동기의 부고를 받았다. 이 이름이 익숙한데 누구지. 도서관으로 올라가던 길, 걸음을 멈추고 연락처를 뒤져 떠올렸다. 우리는 정확히 10년 전 이맘 때에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정확히 내가 이 부고문자를 받은 여기 서강대 캠퍼스 안에서.
토실토실한 모습이었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모르겠고, 수업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오늘 배운 건 대체 무슨 맥락에서 나온 뭔 말인지, 주어진 것마다 막막한 그 길의 초입에 그 아이도 함께 서있었다. 언제나 작게라도 불안해했던 시절, 불평도 부러움도 거침없이 표현하는 귀여움이 있는 아이였다.
언제가나 고민을 하는데 점차 비가 더 더 더 세게 왔다. 미루지 말자, 일정 간 이동 사이에 장례식장에 들렀다.
빈소. 까먹은 예절
불교식, 유교식, 가톨릭식… 나 다 가능해 너희집은 무엇이었니, 라고 생각하며 빈소에 들어갈 때 누군가 꽃을 쥐어줬다.
사진 속 그 동기는 우리가 한참 심적으로 헤매이던 20대 중반의 석사생 시절, 복사기 소리가 종종 웅웅대던 연구실 한 구석에 박혀 서로 보던 그 꾀죄죄한 모습 대신, 세련된 화장법과 머리에 컬을 넣은 모습이었는데 꼭 뮤지컬 배우 같았다.
꽃을 들고 마주한 동기의 사진 아래에는 향도 준비되어 있었다. 챙길 것이 여러개 동시에 입력되자 나는 예절을 차리는 방법을 잊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상주에게 물었다. 어른이 알려주었다. 이상하다 나는 여러 번 상을 치뤘는데 왜 지금은 모를까. 무언가가 멈추었나. 향을 피우는 동안 묵념하고 절을 하는 동안은 세 번 아니야, 두 번만 해야해. 라고 되뇌었다.
예고 없는 급성 무엇으로 준비 없이 보냈다고 들었다. 위로도 서툴렀던 나는 말을 잘 못이었다. 대신 그 아이의 오빠 어깨를 감싸안아 한번 안는 것으로 위로를 하고 싶었는데, 그에게 지금 그것이 필요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 사람은 매우 놀란 상태로, 가족을 대표해 일을 해결하고 있는 모드일 것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이 일을 방해하지 말자.
(한편으로는 나는 반가운 사람이나 한동안 못 볼 사람, 또 위로할 사람을 가벼이 껴안는 편이었는데, 이 행위가 요즘의 사회맥락에서는 상당히 빈축이나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작년에 누군가 알려주어 조심하게 된 것도 있다. 이 경직성이 일견 답답하다..)
신촌 길거리. 나의 애도: 깔깔대는 그 모습 떠올리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바로 밖에 나오자 비가 한참이다. 애도가 너무 옅어서, 가족이 수상하게 여기신 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나는 타격 반응이 늦은 대신, 깊게 퍼진다. 어제도 그랬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비오는 신촌을 걷는다. 10년 동안 여기도 사람도 얼마나 바뀌었는지 생각한다.
비가 왜이렇게 세차게 오는 거야. 청바지가 물에 적셔지는 만큼 더욱 허벅지에 달라붙어 걷는 길을 무겁게 한다. 배달 오토바이는 장대비에 급해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달린다.
나보다 세 보 앞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중반 대학생들이 욕지거리 두어마디 던지고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낄낄댄다.
그 남자애들이 이제는 완연한 성인으로 살고 있는 예전 연구팀 사람들의 학생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회사생활과 맞바꿔 졸업논문을 계속 미루는 나를 두고, ‘이지은이 졸업하면 플랜카드 걸어준다’며 위와 마찬가지로 낄낄대던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시점이 바뀐다. 연구팀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내 머릿속 화면은 곧 가브리엘관의 연구실을 보여주고, 거대한 프로젝트 문서들과 수많은 회의의 기억, 타임라인 시트와 선생님들의 얼굴과 나눴던 대화들, 이내 내가 종종 지쳐 주저앉았던 복도, 코너마다의 헤진 소파, 천장이 유난히 높게 보이던 7층의 커뮤니케이션 연구방법론 수업교실, 지금 듣는 게 무슨 맥락인지 영문을 모르겠는 당황한 아이들의 얼굴, 똘똘한 몇명의 발표, 수년 뒤 그 맞은편 교실에서 했던 MPR 수업. 몇 년 차이로 외국인 학생의 비율이 늘어나서 놀랐던 기억. 또 헬스컴, IMC, CSR… 수 년의 기억이 단 한 빌딩에 얽혀있다. 시간에 상관 없이 장소가 먼저 떠오른다.
내 머리의 카메라가 건물 곳곳을 떠다니며 복사실, 엘레베이터, 수많은 문들을 거쳐, 빌딩 정문 1층의 엘레베이터 앞에 멈춘다.
입학한지 몇 주 안되었을 때 엘레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그 아이와 주말 동안의 안부를 주고 받는다. 나는 주말동안 결혼식 사진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다는 얘길 한다. 그 아이는 내게 사진일에 대해 묻는다. 그럼 너는 학교 다니면서 사진 일도 하는 거야? 응, 생활비가 필요해서 그건 사진으로 벌어. 얼마나 벌어? 응, 한번 다녀오면 얼마 정도야. 그 아이가 마무리를 한마디 한다, 좋겠다 였는지 너는 참 열심히 산다 였는지 정확하지 않다.
다음으로는 어느 비 오는 날 가브리엘 관 뒷켠 언덕길로 이어지는 문을 통과한다.
그 아이가 무언가에 지친 등으로 메리홀 앞 초록 자판기에서 캔음료를 꺼내던 뒷모습이 보인다. 즐겨입던 빨간색인지 갈색인지, 스웨터인지 스웻셔츠인지를 입고 있다. 우리는 거의 항상 지쳐있었다. 무엇에 그랬는지.
또 비가 안 오는 봄의 알바트로스 잔디밭을 생각한다. 하얗고 분홍진 꽃나무 아래, 햇빛과 그림자가 어울대는 여러 벤치에 나누어 앉아 수다 떨던 어느 낮.
여자애들만 모여있다. 아이와 어른의 중간 단계에서 헤매는 목소리들. 불평이 이어지는 가운데에 깔깔대는 말들.
그 아래에서 그 아이가 아이스크림이었는지 쭈쭈바였는지 한입하며 무슨 얘기에 팍 터지는 웃음을 내던 모습을 기억한다.
버스 안.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할 일을 생각
비오는 버스, 축축한 도로, 대흥동,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향한다. 밖으로 흐린 한강이 보인다. 검은색 양말을 챙겨나온 양말로 갈아 신는다. 이제 시끄러운 행사장으로 간다. 이제 사운드 스케이프가 엄청 바뀌겠지. 마음을 준비한다.
마침 가지고 나온 책이 알렉상드르 졸리앵이 지은 <인간이라는 직업> 이었다. 제목이 꼭.. 무슨 메시지인가. 한번 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충실하게 하고 싶은, 해야 한다고 느꼈던 일들을 떠올린다. 작년에 우상이 오빠 장례식장에 다녀오며 다시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할 연락을 미루지 말자고 다짐했던 밤을 되새긴다.
작년 안양까지 울며 오갔던 4호선에서 내가 생각한 방향을 떠올린다.
더이상 ‘언젠가는’이라며, 내가 바라는 삶을 지연하며 살지 않을 거란 결심. 내가 즐기고 잘 하는 일을 밀고가기, 충분히 느긋하고 건강한 마음,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내 세상과 시간을 충실히 채우기. 삶의 우아함과 경이로움을 목격하고 감탄과 경탄을 마음편히 순수하게 표현하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창작하고 생산하며 세상과 관계를 맺기. 속도감을 늦추고 초마다 분마다 시간에 밀도를 더해 내 몫의 삶을 살기, 그 삶이 살아질 어떤 구조를 구축하기. 내가 볼 때에 중요한 일에 내 시간을 들여 몰두하기. 조금씩 쪼개어 결국은 해내기.
몇번이나 며칠이나 몇주나 반복하며 오늘의 햇빛 아래에 쉰내나는 과거의 진흙을 들춰내며 찾았던 내 지향, 내 성향.
…
그렇지만 사람은 느슨해진다. 하고 싶어, 해 낼 거야! 일단 해 볼 거야! 라고 했지만, 점차 시간은 무한한 듯 여겨지고 의지는 매일을 지나며 옅어진다. 지금이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점차 다음에 하지 뭐, 더 준비되면 하지 뭐, 그런 것들. 하지만 더 준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밀고갈 힘이 없으니까.
또 관계의 측면에서는 생각났지만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 스쳐가며 한마디 물꼬를 틀까 생각했지만 표현하지 않은 많은 일들, 이들은 모두 나의 오늘에서 회피한만큼 미래의 부채가 된다. 생각하고 검토했으며 해야지 생각했는데, 결국 안한다면 후회로서 갚을 뿐이다.
내 미래의 죽음 시점에, 특히 예고되지 않은 죽음이라면, 그 시점에 내가 ‘아’ 탄성을 내뱉으며 후회할 ‘안한 일’들이 무엇일지 나는 이미 안다. 이미 오래 생각했다.
어제의 비오는 길 위에서 되뇌이길, 해야지. 해야해. 하자.
…
풍선처럼 날아가는 나의 발목에 끈을 묶어서 땅으로 잡아주는 일들이 마음 아픈 형태로 종종 생긴다.
안타까운 마음을 배경으로 나는 또 내 삶을 궁리한다. 사건과 기억 생각과 고민은 이어진다. 그리고 돌고 돈다.
내가 하는 애도란 이렇게 내 중심이다. 아주 저 멀리에 두었던 작은 기억을 꺼내어 한번씩 더 들여다보는.. 그리고 포섭하여 내 삶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이로써 계속 함께 간다.
…
그 아이를 키우고, 지켜주고, 서로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 과정을 잘 이겨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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