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식물과 초록 (50): 꼴라쥬 6 / 구성의도와 골조구축, 상호작용에 대한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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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작업
    1. 구성의도
    2. 이미지 구성 골조 도출
      1. 상<>하로는
      2. 좌<>우로는?
      3. 소결
    3. 작업 이미지
      1. 버전 a.
      2. 버전 b.
  2. 오늘의 작업송
    1. 음악 첫번째 — 정태춘 선생님의 ‘시인의 마을’
  3. 상념 노트
    1. 웹사이트 수정사항
    2. “상호작용”에 대한 고민
      1. * 관심과 빛의 유사성?
      2. * SNA 회상과 k값의 재해석
      3. * 단어 ‘무시’의 혹독함
    3. 단서.
    4. (글) 작업송 추가
      1. 음악 두번째 — 앤 샐리의 도라지
      2. 음악 세번째 — 드보르작 Piano Quintet No.2 A major

오늘의 작업

(> 후지필름 공모 제출할 생각으로 이미지 만들면서 구성 구체화를 동시에 시도 중.)

구성의도

  • 인간은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 나무를 볼 때 땅-몸통까지는 1:1 비율로 본다. 그런데 고개를 올려 나무의 상부나 하늘로 시선이 향하면 뭐든 더 작게 보인다.
  • 그래서 1층 → 2층 → 3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작게 배치/만들었다.
  • (>>> 이 과정에서 키가 큰 조형물 설치할 때 비율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꼭대기로 갈수록 더 크게 만들었던 게 기억남)

이미지 구성 골조 도출

상<>하로는

3층 (가지와 하늘) — 종결

2층 (몸통 상부와 가지) — 전개

1층 (땅과 뿌리와 몸통) — 시작

좌<>우로는?

아직 고민중. 촬영지역의 분산? 계절의 분산?

소결

대체로 3×3 배열을 벗어나지 않는 구조 지향

여백이 없는 나무사진이 이어질경우에 시선분산이 심하다.

작업 이미지

버전 a.

버전 b.

1층이 어려움

시작 → 끝의 흐름이 있다는 점에서 작곡하는 느낌이었다.

오늘의 작업송

음악 첫번째 — 정태춘 선생님의 ‘시인의 마을’

오늘 들은 건 아니고 수요일 저녁 수업 끝나고 귀가하면서 잘 들었던 곡.

정태춘 선생님의 시인의 마을. 가사를, 가사를 귀로 읽게 된다.

내 클래식 기타 어딨을까. 원래 엄마 것이니 엄마에게 있는가. 외삼촌 것이 아니었나. 여튼 어디있나.

상념 노트

웹사이트 수정사항

+ 뉴스레터로 포스팅 업로드 직후 자동발송되는 현상을 발견하여 이를 수정함.

“상호작용”에 대한 고민

+ 일상에서 상호작용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한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 상대의 존재를 내 공간에 들인다는 관점에서 그 해석이 깊어지고 있다. 오늘 고민의 핵심은 이거다.

내가 바라봄으로 인해 대상이 상대로서 내 세계에 존재할 수 있고, 상대가 내게 기울이는 관심으로 인해 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

* 관심과 빛의 유사성?

말하자면 관심과 빛의 기능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사진에 대상이 촬영될 수 있는 이유는 빛이 반사되어서, 마찬가지로 나의 상대가 상호 각자의 세계에 대상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건 상호 관심을 갖고 행동을 통해 작용하여서 가능하다. 그것이 관계형성과 배양의 초석이다.

관심을 기울임으로서 나는 나의 “계”를 형성할 수 있고, 내 “계” 안에 다른 “계”의 주인을 들여온다. 나는 태양이 빛을 드리우듯 관심을 가짐으로서 상대의 존재를 내 세계에 반영하고, 상대가 내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사하여 그에게 알려줄 수 있다.

* SNA 회상과 k값의 재해석

+ 상대도 그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항성과 항성의 관계이므로, SNA할 때 썼던 nodes의 연결 그림에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가 상대를 보고 있다는 액션 한 톨부터 두 nodes의 끈은 연약하나마 형성/생성된다. 그 nodes를 잇는 k값에 대해, 10년 전에는 선이 존재하면 1이고 없으면 0으로 계산했었던 기억이 난다. (/큰 관계망 안에서의 k값을 활용한 다음 계산에는 웨이트가 붙지만 여기서는 두 노드간의 관계로만 한정하여 생각한다.)

오늘날 내 해석에서는…선의 굵기와 길이, 강도도 중요하겠지 않나? 이런 생각. (/직관적으로 여기서 길이는 역수이다, 음…. 꼭 역수여야 할까?)

예: 광케이블의 굵기를 가지고 있으며 관계의 강도가 튼실할수도, 머리카락처럼 얇지만 끊을 수는 없을 수도, 비슷한 굵기이나 탄성은 약한 무명실일수도, 인사동에서 파는 용수염 엿가락처럼 끈적이지만 힘을 조금만 양쪽에서 당겨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 세계로 돌아가 다시 만날 일 없이 잘릴 수도 있다.

* 단어 ‘무시’의 혹독함

+ 한편 무시라는 단어의 혹독함을 이제야 알게된다.

無視 ‘보이지 않는다, 보지 않는다’는 게 죽음과 견줄만큼의 생명없음 또는 존재없음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모든 노드와 연결되지 않은 한 노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은 자의 상태와 동일하다. 그러므로 실체는 있더라 누구의 눈에도 보이거나 감각되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까지 생각이 흐르자 무시 == 투명인간이라는 표현이 다시금 이해된다. 투명은 ‘빛이 가닿아 반사’하지 않는 상태이다. 무시는 ‘관심이 가닿아 반사’하지 않는 상태이다.

디즈니 애니 코코에서 유령들은 죽은자의 날에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게 되면 소멸한다.

단서.

…여기서 상호작용의 대상은 사람이나 생명체 뿐만 아니라, 책이나 건물이나 자연물처럼 물성적이든 자연현상이나 정보나 지식이나 믿음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무형적인 것이라도, ‘대상화’가 가능하다면 포함한다.

이 고민이 계발될수록 내 세계에 들여온 대상에게, 나를 본인의 세계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주는 존재들에게 감사하고 진중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싶단 마음이 깊어진다.

..여기까지 썼을 때 나는 이 생각을 내게 심어놓은 두 책을 떠올렸다.

첫번째 책은 올리버 색스의 <온더무브> (링크) — 저자 본인과 세상과 의료 대상자와의 교류 측면에서.

그리고 두번째 책은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함) Arthur Ciaramicoli의 <The Power of Empathy> (2000) // 국내 출판물 이름은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한국에는 2020년에 출간. (링크) .. 이 책의 정수는 책 목차상 중반을 넘어서는 부분부터 나온다. 자기용납 이후에야 다른사람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메세지는 나에게 큰 도움을 줬다. 사람들의 결정, 그들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받아들이는 작업은 상호작용에 필수적이나 매우 어렵다. 그러니 내 내면으로부터 연습하고 시작해야 한다.

(글) 작업송 추가

음악 두번째 — 앤 샐리의 도라지

재일교포 3세가 부르는 도라지.

음악 세번째 — 드보르작 Piano Quintet No.2 A major

드보르작 피아노 5중주 제 2번 가장조. 첼로가 말을 시키는 걸 다른 현악들이 경외하며 듣다가, 바이올린이 대꾸하고… 대화가 이끌리며 만드는 복합 음선율의 땋음결이 정말 아름답다.

요즘의 나는 가장조나 가단조 같은 A음에 마음이 끌린다. 그리고 러시안이나 헝가리안, 슬로박, 슬라브 선율은 언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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