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 비행기가 구름을 보여주듯, 나도 쇼케이싱을 해야겠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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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작업송.
    1. Yunchan Lim — Chopin op.25 no.12 Ocean
    2. Hermanos Gutierrez — Cuando Llora El Cielo
    3. Terri Lyne Carrington — the corner
  2. 오늘의 소고.
    1. 비행기에서 구름찍기의 사진.
    2. 작업 정리에 시간을 쓰자.
    3. 쇼케이싱 방법을 꾸며내자.
    4. 왜 그래야 하냐면. 무엇을 그래야 하냐면. 나는 누구인지 대답하기 위해서.
  3. 오늘의 사진.
    1. 골라야 하는데, 그게 괴로워서 어쩌니.

오늘의 작업송.

Yunchan Lim — Chopin op.25 no.12 Ocean

안녕.. 힘 있는 사람.. 기력이 부럽다.

Hermanos Gutierrez — Cuando Llora El Cielo

기타.

Terri Lyne Carrington — the corner

동시에 여기 저기에서 악기 마다 자기 맛을 내다가 조금씩 시차를 두고 맞춰간다.

오늘의 소고.

비행기에서 구름찍기의 사진.

비행기에서 구름 찍기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계속하는 걸 보면 우리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거기에 있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광경.

무한한 듯 지속되는 지평선, 지구의 수평선. 둥근 지평선.

기이한 위치의 해는 구름의 그림자를 이렇게 저렇게 바꾼다.

이동경로에 따라 뜨는 해는 계속 뜨기도, 지는 해는 멈추지 않고 지는 상태를 지속하기도.

창문 바깥으로는 패턴과, 의외성과, 귀여움과, 아름다움과, 반짝임과, 어두움과, 가까움과, 먼 느낌과, 층위와, 단순함과, 때로는 착시가 낳는 이야기까지 있다. 구름과 해와밤과 별과 공기의 흩어짐이 낳는 그 세계에서는 제약없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처럼 캔버스위에 이런 저런 얘기들을 흩어놓고는 영상회를 연다.

땅에 디디고 서있던 발로부터 2미터가 채 안되는 우리들을, 빌딩은 수십층 위로 올리지만, 커머셜 기는 우리를 수천 층 수준으로 올린다. 순식간에 산도, 빌딩도 없지만 무엇도 만지거나 걸을 수는 없는 기이한 위치에서 우리는 그저 눈과 몸의 감각으로 우리가 어디쯤인지를 감각한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눈을 굴리며 제한되어 있지 않다고 믿게 해주는.

어느 날에는 번쩍이는 구름의 정수리를 봤다.

그 날에는 번개와 천둥이 치는 구름 위를 날아갔다. 아마 하이데라바드 도시를 지나고 있었다. 저 아래 누군가들은 깊은 항아리 단지에다가 월계수잎이며 강황을 넣고 찌듯 익힌 쌀을 비벼가며 먹을 준비를 하겠지. 비리야니의 땅 위로 번개가 떨어지고, 쾅 소리가 동체를 울린다. 그런 날도 있었다.

그래서 덮개가 아닌 그라데이션형 창문은 내가 싫어하는 장치이다. 공간의 제약 밖으로 그 너머로 볼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긴 것 같아서.

작업 정리에 시간을 쓰자.

마음을 정했다. 다시 남은 건 시간 뿐인 시간을 잠시간 갖자고. 다시 돈을 벌지 않고, 다시 그저 작업을 정리하는 데에 몰두해보자고. 혹은 작업을 계획하고, 힘들더라도 조금씩 공굴려서 이끌고 나가보자고. 대체 이말을 여기에 몇번째 쓰는 걸까.

계속 흩어지는 이유는, 내가 불안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건 순식간에 몸을 휘감는 그런 류의 불안이나 존속이나 생명의 위협에 맞서는 류의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불안은, 말만하고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는 사람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감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감당해야 한다면 어찌할꼬, 와 같은 불안이다.

쇼케이싱 방법을 꾸며내자.

여행을 하다 어느 옆사람이 내게 ‘showcasing’해야해. 라고 말해주었다.

어떻게 showcasing할거야? 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 정리하려면.

정리를 어떻게 할지도 그 큰 고민의 아래에서 뻗어나온다. 나는 탑다운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맞는지도. 그러나 목적이 없고 방법을 생각해내면 멀리가기가 어렵다. 나의 레버리지는 시간에 있다면, 투입시간을 줄이면서도 획득 기대 효과를 높이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쩌면 많은 작가들은 이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그래서 그들의 팬을 빌딩하려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올리고, 공유하고, 재담을 떨고, 집중하고, 시간을 쓰는지도.

그러나 나는 피곤하다, 마치 몸에 보일러가 달린 것처럼, 한쪽은 뜨겁고 한쪽은 차갑다. 그것이 나를 붙잡아둔다. 액션으로부터, 충동으로부터, 집착으로부터, 강박으로부터. 어떤 극단에 치우치지 못하도록 나를 어느 판의 중앙 근처로 밀어넣는다.

어떤 천재성을 번뜩인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그 판을 뒤엎고 한 지표의 끝을 달리는지도 모른다. 바스키아라든가. 특히 그런 사람들은 쇼케이싱에서는 대단한 두각을 드러낸다. 발표에 두려움이 없는 듯이.

나는 쇼케이싱이 언제나 두려웠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대담치도 않고, 자신감도 없는 걸까. 아니.. 이건 자신감과는 좀 거리가 있는 걸까. 나는 쇼케이싱이 싫어서, 발표회가 실허서 많은 일을 그만두었다. 재능이 있네요, 라고 어린시절 평가받던 어떤 일들. 발표회를 해야한대, 라고 하면 나가지 않았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쳤는데, 나이 마흔이 좀 안된 지금 지점에서 깨닫는 건.

어떤 아이디어든 아이템이든,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육체활동이나 액티비즘이나 그들 중 하나정도의 형태를 갖고 공중에 띄워져야 한다는 점이다. 공중이란, 나와 남 사이의 어떤 공간.

그렇게 해서, 커뮤니케이션의 재려가 될 때에서야 바로소, ‘쓰임’이 발생한다.

먼지가 누렇게 묻는 생각도, 젯소냄새가 쿰쿰하게 뭉쳐진 그림도.

하드디스크에 들어앉아 언젠가 포맷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사진들도.

왜 그래야 하냐면. 무엇을 그래야 하냐면. 나는 누구인지 대답하기 위해서.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미래에 어느 위치와 연결될지도 그 뻗은 가지의 하위로서 시작하여 결국은 큰 줄기가 된다.

나는 누구이거나 누구일 수 있는지, 내 주변은 어떠하고 무엇을 취하고 내어놓는 사람인지. 그 모든 것들도 질문에 대한 답과 답을 반영한 선택들. 그것들이 만든다.

고상한 척 하는 것도, 어려운 생각을 비비 꼬는 것이나 단순한 답을 또한 복잡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다.

정말 단순하게, 그저 내 삶이나 생에 충실하고자 해서, 질문을 던져보는 시기이다.

언제까지 이 안녕이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이 안녕이, 멈추더라도 남긴 것들을 거기에 남아있고, 남길 수 있는 것들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발생한다. 결국은 발견하는 눈과, 발견하고자 했던 생각들, 타자를 치거나 노트에 적는 손과, 사진을 골라내고 정리하는 팔의 움직임. 걷고 또 걸어가면서 고민을 돕는 발, 더 보도록 돕는 다리.

나는 왜 이렇게 보는 일에 천착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정리하는 일 그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가. 정리하는 과정에서 선택하고 버리면서 ‘만약에’의 가능성에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가 나 외 다른 사람에게서도 ‘좋아’ 라고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재밌는 경험 중 하나는, 스크린에서 나와서 이미지를 종이에 올려 ‘그 이미지’만 보는 행위는 예전에도 오늘날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낯설다는 점이다. 그게 어떤 의미를 낳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특정한 의미일 것이다.

나는 그걸 즐길 수 있는 사람인가?

함의가 있다면, 이를테면 살가도의 사진처럼, 어느 생활자들의 사회적 맥락을 여실히 드러낸다면, 그 함의를 그들이 처하거나 생계를 꾸려나가는 맥락 속에서 읽을 수 있다면, 거기에 수많은 힌트가 놓여져 있어서 나의 눈을 굴릴 공간을 준다면 나는 그 이미지를 감사히 먹는다.

오늘의 사진.

12월 6일의 구름사진.

골라야 하는데, 그게 괴로워서 어쩌니.

목적이 있다면 고를 수 있지 않을까?

목적을 정하는 건 왜이렇게 어렵나?

쇼케이싱도 그의 한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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