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 지금 오슬로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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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트

오슬로에 도착

오슬로는 9시에 해가 뜨고 15시면 해가 진다고 한다. 사진을 찍을 시간이 직장인 근무시간과 비슷하다. 이 사실을 모르고 어젯밤 아홉시 경에 왔다가 한참을 자고 있는 도미토리의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쳤다. 큰 준비를 안하고 온 까닭이다. 어쩌다 여기로 왔나.

며칠 전 서울에서 출발해 대여섯시간 이동해 방콕에서 두 밤을 자고, 다시 열 세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여기로 왔다. 출장자 시절에 비행기 타는 나만의 방법은 꽤 많이 발전했어서, 지금은 능숙하게 무엇을 준비할지를 안다. 그러니까 길면 길수록, 노 인터넷 존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몇가지 준비한다. 그리고 바닥에 고무패드가 달린 컵 하나랑 (터뷸런스에도 안전하다), 몇가지 먹을 거리, 물은 많을수록 좋다. 저가항공을 탄다면 더욱이 이런 준비가 필요하고, 코스트가 높아질수록 남이 이런 준비를 해준다. 그 차이이다. 비용이 낮아지면 셀프이고, 비용이 높아지면 제공되는.

며칠 전까지 읽던 책 <자본주의자 선언>에서는 자본가는 나쁘고 노동자는 선하다는 이분법적 사고관으로 보는 시선이 안타깝다며, 자본주의의 강점 중 하나는 자본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자유로이 한다는 데 있댔다. 그러니까 자본이 없기 전에는 노예제에 준하는, 가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노동의 형태이다가 지금에서는 자본 덕분에 교환이 가능하다는. 나도 자라면서는 이런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자본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자유와 의지를 ‘쥐어짜서’ 그만큼 올라갔다고 말하는 주변의 문화가 있었다.

(..빨래 돌리느라 생각이 끊겼다..)

배낭여행을 통한 반추: 생각이 분절된 요즘.

중간 사이즈의 배낭을 가지고 나왔다. 등산용 배낭보다는 작고, 학교 가방보다는 좀 큰 거. 그 가방은 컴파트먼트 분리가 잘 되어있다. 마치 트렁크처럼 분리해서 쓸 수가 있다. 가방은 크렘쉘 형태로 지퍼를 다 열면 두쪽으로 분리된다. 소, 중, 대로 나뉠 법한 사이즈로 구분된 공간은 내가 그것을 쓰든 안쓰든 이미 모양이 잡혀있다. 그 공간에 무엇을 지정하고 넣을지 고민했다. 짐을 쌀 때에 꽤 여러차례 머리를 굴려 이렇게 저렇게 넣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기 직전이 되자, 그걸 흐트러트렸다. 열고 닫기를 여러번 하고 나서야 이 배낭여행객의 모드가 켜졌다.

나는 크기에 맞춰서 넣을 게 아니라, 접근성에 맞춰서 넣어야 했다. 접근성을 판단하려면 내가 어떤 환경에 놓일 것이고, 상황적 맥락에서 처음과 중간, 끝에 각각 무엇을 필요로 할지를 이미 알아야 했다. 그리고 넣을 물건의 크기와 용도와 어떤 집합성이 가방 안팎 어디에 놓일지를 결정했다.

또 모든 물건이 어디에 들어가있는지 기억하는 건 산만해지기 일쑤였다. 도미토리에 늦게 도착했는데, 모두가 자고 있을 때에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바로 꺼내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분산되어 있지 않고, 자기들끼리 묶여서 한곳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임시상황, 예를 들면 비행기 타기 전 등을 고려해서 요긴한 물건들만 빼어놓고 이동에 급급해 그것들을 제자리에 미처 돌려놓지 못했다면, 필요할 때에 꺼내온 그 가방에 그 물건이 없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두벌로 갖고 다니거나, 항상 약속된 곳에 있어야 했다. 두벌로 가지고 다니는 건 배낭여행이라는 제약조건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답은 어사인된 그룹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생각이 만약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앞으로의 상황을 상상하고, 준비를 그에 맞게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을까. 여행 나흘째에 접어들면서 나는 지금의 내가 좋게말하면 수더분하고, 안좋게 말하면 산만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배낭여행을 통한 반추: 조급한 마음의 요즘.

앤드류 솔로몬은 그의 책 <경험 수집가의 여행>의 도입부에 그의 엄마가 어린시절 가족여행 중에 알려준 여행을 잘하는 비법 하나를 소개한다. 한번에 다 보려고 하지 말고, 나중에 언제든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라고. 나도 같은 생각이라 그 말이 마음에 담겼다.

나는 하루만 머문다, 라는 제약 속에서 여행지에 있으면 어떤 계획을 갖기 보다는 우연에 내맡기게 되어 좋아한다. 시간이 약간 더 있으면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고 그걸 실행하지 못하면 아쉬운 마음이 더 커진다. 시간이 부족하면 부족하기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다 볼 수도 없다는 점을 쉽게 받아들인다.

대신 걸어서 볼 수 있는 생활을 좇는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출퇴근이나 이동패턴이나 가게들을 왔다갔다 한다. 서울에 있을 때처럼 먹던 빵을 사러 여기의 빵집에 간다. 시간이 좀더 되면 수영장도 들러볼 수 있겠지만 그 종목은 워낙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시간을 많이 잡아 먹어서 어렵다. (오슬로는 오늘 3시에 해가 진다고 하니 저녁수영도 방법이겠다.)

세상 어느 곳이든 거기는 누군가의 집과 지붕이고, 나는 거기를 스쳐가며 구경한다. 그들도 나의 도시에 온다.

그런데 지금은 조급한 마음이 둥둥 떠서, 뭘 해야할지 모르고 발을 동동댄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고, 걸어 다니면서도 생각이 정리되기를 바란다. 생각은 자꾸 이것과 저것, 아주 멀리있는 구름과 구름 둘이 연쇄적으로 거리에 상관 없이 번쩍이는 번개처럼 나를 깨운다. 그리고 나는 아주 멀리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좀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제약이 여기 있음에도, 내가 발로 갈 수 있는 거리는 내 보폭과 체력과 속도 안에서 결정되고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놓는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잘 보고 싶다면 눈을 굴리건 응시하건 이 ‘본다’ 라는 감각을 다뤄야 한다.

배낭여행을 통한 반추: 욕심껏 다 해낼 수 있길 바라는 요즘.

내가 한번에 이룰 수 있는 건 나의 몸의 영향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걸 자꾸 잊는다. 회사 안에 있을 때엔 회사가 영향력의 지근거리를 높혀줬고, 학교에 다니면 학식높은 사람들이 쌓아놓은 지식에 나를 태울 수가 있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누구도 크게 가까이 하지 않는 지금은 내가 가진 맨 알몸같은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 없는지를 깨닫는다. 내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도달하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일 수 있기를 항상 바랐는데, 나는 어쩐지 금방 소진되고, 매일이 엄청나게 길면서도 매우 짧다. 나의 집중은 여기서 저기로, 알고 싶은 게 많은 만큼, 혼자서 커버해야 할 게 많아진 만큼, 순간 순간 이동한다. 그리고 그 작은 지렁이 같은 생각들이 번개처럼 툭툭 튀어나올 때마다 나의 의식과 의지는 그에 사로잡힌다.

지금의 어려움은 그런 나의 제어 안되는 문제들이 나를 뒤흔드는 데에 있다.

나는 내가 사진을 잘 찍고 글도 꾸준히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더 솔직하게는, 이런 활동이 곧 내 직업적 전문성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걸 했을 때 ‘좋은 취미생활이네’라고 말을 들어도 지금은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다. 그런데 아주 어릴 적부터 이 둘은 내가 좋아하고, 시키지 않았도 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고 싶다’는 자체가 부담이 되는 듯, 나는 이런 생각을 할수록 더 하지 않고, 더 모른체를 한다. 그래서 나는 떠나오게 되었다. 할 일이 이 둘 뿐이 남지 않는 세계로. 내가 만들어놓은 여러 할 일이 상존하는 세계에 있지 않고, 그저 이 둘만이 나의 과업인 시간과 공간으로. 첫날에 24키로를 걸었다. 내가 볼 수 있는 사람인가, 어떻게 보는 사람인지를 까먹었어서.

배낭여행을 통한 반추: 여전한 자기의심.

그렇지만 내가 찍는 사진이 도대체 괜찮은 편인지 나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들여 그동안의 사진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한장 한장씩 낱장으로는 종종 괜찮은 이미지가 있는 듯 했다. 심미적으로 정돈이 되어있다거나, 그냥 내 마음에 드는. 그렇지만 ‘너무나 많은 사진’ 속에서 그들을 찾는 일은 진주를 발굴하는 듯도 하다. 두번째로 너무나 많은 사진이 ‘다 실용적인 영역에서라도 쓰이길 바라’는 나의 생각이 어떤 과용의 영역을 일깨워 아무것도 쓰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게 모두가 깨어있기를 바라여서 모두를 잠들게 하는 나의 능력 때문에 나는 내 사진적 역량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되었다.

바라볼수록 피곤해지는 건 최고만을 뽑아내고 싶어해서일지도 몰라. 그럼 실험을 하는 건 좋은 일일까?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려도 괜찮을까? 다리가 무거워, 손을 대면 진흙이야.

그런 생각들.

그렇게 진흙으로 파고 들 때에, 방콕의 어느 백화점 맨 윗층의 서점에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제네시스 사진집을 보았다. 제네시스 가장 큰 판형이, 전세계에 삼천부만이 나왔던 그 책을 내가 손에 쥐고 원하는대로 펼쳐보도록 전시가 되어 있었다. 앞부터 뒤까지 살피니, 그도 얼마나 헤매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물이 또 핑그르 돌았다. 살가도 선생님도 헤매였다, 그의 토픽을 찾을 때까지. 나는 사진가 내지 어떤 작가가 되고자 하는가? 아니면 정말 취미로, 고급기술의 취미로만 남고자 하는가?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은 무엇인가? 물었다.

결정을 해야해? 라고 내가 답한다.

나는 애매한 상태에서 아무런 대답도 안하면 그 일이 미뤄질 수 있는 줄로 착각하는 듯하다.

그걸 가만히 넘겨보는 내가 눈에 띄었는지 매니저가 와서 오션 사진 컴페티션의 우승작들 사진엽서가 잘 포장된 뭉텅이를 내게 준다. 어쨌든 선택하고 밀고가는 사람들이 남긴 발자취는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함께 담긴 프린트가 누군가를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일이다.

나는 누구가 되고자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나는 나를 믿는가.

오늘의 사진

방콕에서.

삼일째가 넘어섰는데도 아직 사진 눈이 깨이질 않았다. 다시 일어나 내 사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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