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고
- 살면서 이렇게 외로운 시기가 있었을까.
- 이 외로운 시기에 글을 써놓으면 좋겠다.
- 아이패드를 열어 쓰다보면 두가지. 파이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 그리고 인생 아주 초기의 기억들.
- 두 사이에서 나는 멈춰있는 걸까?
- 작년, 재작년보다 나는 더 멈춰있는 든다. 마음이 굳어있는 모양인 듯도 하다. 그것은 딱딱함은 아니다. 던지면 깨어질 듯이 연약하거나 바짝 날이 서있는 게 아니다. 무언가 다 익힌 감자를 식혀놓은 듯하다.
- 내가 지금 외로운 상태인 데엔, 주변에 사람이나 동물이 없는 이유도 있지만 나, 오늘의 나나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내가 연결이 잘 안되어있다.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기대보다 너무 대충 산 까닭일까?
- 도서관 이용권한이 끝났다. 학교 도서관에 유료등록을 할 것인지? 책이 없다면 나는 누구에게 비출 수 있을까? (희망도서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유료등록이 별로 매력이 없다. 그렇다고 동네 남산도서관, 용산도서관에 다니기엔 책의 상태나 신착도서의 경향이 내가 선호하는 것과 다르다. 선택지가 별로 없구나)
- 집에 오는 길에, 아주 핵심만 남기력 생각을 고르고 골랐다. 그러니까 사진에 에세이를 더하는 작업이 핵심인 게 아닌 이유는, 이 킨들 퍼블리싱 작업의 목적이 “사진을 밖으로 어서 꺼내놓는데”에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있어보이기 위해 차용되는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냥 아주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진과 찍은 지역, 시간 정도만 적어놓자. 시간은 내 인생의 단 한번뿌인 인덱싱 장치이기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오늘의 사진
어둠 가운데의 빛. 빛. 빛.
아메데오 발비의 책 진입로(?)에 우주의 암흑은 비어있어서 암흑인 게 아니라, 암흑물질이기에 암흑으로 보인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걸 마치 공기처럼 받아들였다. 지구 대기 중 공기의 질량이 있듯이, 우주의 대기(?라고 하면 안되겠지만) 중에 암흑이 규명되지 않은 어떤 종류의 물질로서 질량을 갖고있을 수 있지 않을까. 빛이 계속 뻗어나가지 않고, 암흑에 잡아먹히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지 않는가?
나는 어두운 가운데 인공빛이 자연에 스며들어 존재를 나타내는 게 요즘 좋은 듯하다.
여행사진 시리즈 낸 다음에는 도시의 자연 기준으로 큐레이션 한 것도 내놔야지.
그냥 해야지.
그래야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인생 중 가장 외로운 때이다. 외로움도 어떤 질량을 가진 건 아닐까? 안외로움과 안외로움 사이에 외로움은 그 존재를 드러낸다. 외로움이라는 느낌 그 자체로서. 그런데 이걸 마주하지 않는 방법은 엄청 간단하다. 시끄럽게 만들면 된다. 눈도, 귀도, 마음도, 머리도. 내가 파이를 보내고 한동안 그런 데에 천착했던 듯하다. 세상에 유튜브를 매일 보는 나라니. 하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머리의 능력이 퇴화된 듯하다. 혼자 낙서하거나, 나를 바라보거나, 무슨 생각하는지 글로 쓰는 게 다 어색하다. 그러지 않길 바라는데.
그러니 외로움을 알아챈 지금에, 이 걸 기회로 작업을 얼른 밖에 내놓고 툭툭 털고 싶다.
난 허기지듯 외로웠을 뿐이야.
내 60-85룰 기준으로 내놓기만 해도 60이고, 이것을 아주 잘해봐야 70일 듯하다. 그냥 얼른 내놓는 게 좋지 않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