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 사진작업 대신에 구글 notebookLM이랑 gemini 체험해봄 & messy logs: 과연 AI의 고도화는 인류멸종의 시나리오로 연결될까?

  1. 오늘의 글쓰기
    1. 사진관련
      1. 어제 글쓰기 못한, 결석사유
      2. 어제 촬영..
      3. 몇달 간 방어적인 태도의 반성
      4. 새벽 4시의 도심
    2. 오랜만에 AI (어플리케이션 단) 써보고 든 생각.
      1. 퇴사 후 AI든 다른 기술장르이든 혁신 레이블 붙으면 아예 보지도 않았다.
      2. 과연 AI의 고도화는 인류멸종의 시나리오로 연결될까?
      3. 인류가 아니라 인적자본<>임금교환의 법칙 안에서 가계가 유지되며 발전해온 자본주의의 형태가 달라지는 게 아닐까?
      4.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5.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면 크게 질겁할 필요가 없다.
  2. 마무리

오늘의 글쓰기

사진관련

어제 글쓰기 못한, 결석사유

어제 글쓰기를 뛰어넘었다. 오전에 한 가족이 방문해주셔서 4인 가족사진과 2인 모녀사진, 부부사진, 여권사진 한세트를 촬영하셨다.

2시간 낮수영을 하고 와서 집중하여 전체 리터치를 했다.

그 뒤 액자화 작업을 했고, 작업실에서 나선 시각이 새벽 3시 반이던가.

택시를 탈까 잠시 고민하다가 운에 맡기기로. 집까지는 야간버스와 걷기를 반복하며 한시간만에 도착했다.

새벽 5시 경에 집에 왔다.

자전거가 있었다면 좋았을지도. 매우 추워서 종종 걸음으로 걷고 있었고 하체가 잔뜩 부었다.

어제 촬영..

부녀든 모녀든, 주 양육자와 성인이 된 피 양육자의 두사람 사진 때에는, 특히 아이를 이미 낳은 경우엔, 더 자꾸 운다는 점을 또 확인했다, 자꾸 운다. 왜 이렇게 우리는 우는지. 거기엔 어떤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공명한다. 내 작은 스튜디오에서, 한껏 울고 싶다. 그러니까 그것이 싫은 게 아니라, 선을 넘지 않고도 무언가 어떤 식으로든 담고 싶은데 그 벽을 넘어가려고 마주하는 게, 아직 방법을 모르겠고 무섭다.

촬영을 오늘 아침에 복기하면서, 결국 나는 나의 행복했던 시절과 결핍 모두를 아우르는 주제와 방법론을 찾은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연결감은 내가 어려웠을 법한 때에 나를 향해 손을 계속 뻗고 다잡아준, 나에게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계속 해준 조부모들에 대한 사랑이며, 가족사진은 어린시절에 내가 항상 갖고 싶어했던 무엇이었다.

그리고 한발짝 더 나아가서, 가족사진의 촬영내용을 글과 사진으로 아우르고, 그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할 때, 쉽게하려면 책자를 인쇄한다이고 (인디자인 사용), 더 재밌게 하려면 앨범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옛날 가족앨범식으로 해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요즘 어린이들은 인화된 사진을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때에도 찍은 사진이 많아 앨범은 꽤 많이 있었다. 돌아가실 때 태워서 너무 안타까웠다.

정석적 가족사진에 대한 결핍이 반대편에는 풍성한 가족앨범이라는 나의 추억이 있구나 이해했다.

여튼 사진을 찍었으면 인화해야지! 라는 생각은, 프린트로 봐야지! 라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사진은 디지털로만 어딘가에서 쓰이는 건 내 세계에서는 (작고 치사한 나의 세계에서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은.. 뽑혀서 물성적으로 만져지고, 전기가 없이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엔 육필로 몇월며칠몇년도에 찍었다고 적혀있으며, 때론 누구가 함께 했는지도, 누가 찍었는지도 연필로, 꾸미지 않은 글씨로 남겨져있었다.

나는 그걸 다시 갖고, 주고 싶다.

아마도 그런 거 같다.

그걸 복기하고 답습하면서 내 과거와 연결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몇달 간 방어적인 태도의 반성

어제 촬영도 리터칭도 아쉬움 없이, 그저 몰입하고 집중하며 그분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다가갔을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재밌었어요’ 라는 얘기를 들었다. 슬프지만 오랜만이고 오랜만이지만 들어서 다행이다. 그건 일종의 북극성 지표일까, 어쩌면. 그게 만족의 키를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재밌었으면, 그걸로 가장 낮은 단계는 충족하였다.

역시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하고 작게 움직이는 건 맞지 않아. 그러면 더 안좋은 스파이럴을 탄다. 2월의 무서운 손님 이후로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벽을 크게 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그저 집중하고 몰입하고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더 낫다. 그게 항상 더 낫다. 그러지 못했던 지난 삼개월을 반성한다.

상처를 받는 게 다 뭐라고, 그냥 밀고가.

그리고 리터치.. 아 더 적게 하고 싶은데… 중도를 찾기가 어렵다. 아마 적게 했으면 더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너무 어렵다 이부분. 각자의 자연스럽게,를 더 잘 표현으로서 ‘내가 알기 쉽게’ 들으려면 난 뭘 더 물어야 할까.

새벽 4시의 도심

새벽퇴근 중에 도심을 보니 깨끗한 밤 가운데에 종종 공사장의 빛이나, 신호등 불빛들이 반짝였다. 정신없는 광고판도 그 시간에는 꺼져있었다. 아주 좋았다. 어두운 가운데에 인공광이 아주 조금만, 필요에 있는 시각. 깨끗한 공기의 질이 느껴졌다. 나는 야간의 불빛을, 지저분해서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시간에는 매우 달랐다.

그리고 오전 다섯시 반, 샤워를 하며 바깥의 울창한 숲에 스며드는 (무언가 단어를 잉여들다나, 이겨들다라든가, 우겨들다… 이런 적당히 무겁게 밀고 들어오는 걸 설명하는 단어가 있을법한데 정확하지 않는다, 영 생각나지 않는다) 빛이 아주 좋았다. 씻느라 사진을 못찍어서 아쉽다.

사진은 집에서 jpeg로 대강 만져서 (로파일이 아니라) 검은 쪽이 아주 어색하다. 올리는데에 의의를 둔다.

오랜만에 AI (어플리케이션 단) 써보고 든 생각.

새벽녘에 들어왔으니 체력이 꽤 안좋았던 상태라 사진관은 휴가로 처리했다.

본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떠나온 업계이지. 나의 본업은 여기다

구글에서 내놓은 notebooklm 이랑 코딩 돕는 gemini를 한번 써 보았다.

gemini는 앱을 다시 만든다면 다른 서비스랑 같이 붙여서 쉽게 뭘 해볼 수 있게 생겼다.

notebookLM 재밌었다. 특히 이 leejieun.net을 알려줬더니 분석을 해서 podcast처럼 대담을 하더라. 근데 깔끔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messy logs of creative process 라는 표현을 썼는데..

맞아.. 부끄러웠다. 일을 진행하는 것은 같지만, 사실 해낸 건 없기도 하고…

그렇지만 또 얘들이 내가 갖고 있는 ‘연결감’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과정 중간중간 중요한 피봇지점을 잘 짚어줘서, 제 3자적 입장에서의 회고에 도움이 되었다.

퇴사 후 AI든 다른 기술장르이든 혁신 레이블 붙으면 아예 보지도 않았다.

회사든 이런식의 노동이든 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게 2022년 10월, chatGPT를 써본 날이었다. 그 날 앞으로 지식(?)노동자로서의 미래전망은 아주 어두울 거라 직감했다. 지금은 이정도이지만, 내가 아는 기술적 발전의 특성에 따르면, 이정도 궤도에 올라온 이상, 여기에 자본이 투입되는 게 보장되어 있다면 그 변화가 아주 빠를 게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변화는 개인으로서 따르기 어렵고, 그 변화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면, 그 필드에 있어본 바, 점점 기술은 한 회사에 묶여 있는 채로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큰 그림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볼 수가 없다. 집중력의 문제거나 또 기술력의 문제일 수도 있고, 회사의 비전이나 매니지먼트 이슈가 내 미래를 좌지우지 할 수도 있었다. 매몰비용에 대한 감각도 무시할 수 없다. 회사는 기술인적자본이 못받아주거나 서비스의 도메인적 특성에 의해서, 직원들은 형성해놓은 판이나 세력, 프로젝트의 현황 등에 의해서 한계를 스스로 짓는다.

내가 가진 여러 무기 중에 가장 본캐적 성향에 가까우면서도, AI와 크게 겹치지 않는 게 사진이었다. 조금씩 방향을 틀어서 여기까지 왔다. 그 때에는 소나기를 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치기도 했고.

중간에 프롬프트로 어플리케이션 단의 톤을 잡는 일을 돕긴 했지만, 그 일을 하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변화가 이런 튜닝을 매우 사소한 수준으로 뭉개버릴 수 있겠다는 직감 역시 했다. 과거의 일의 패턴으로 인간 머리 여럿을 붙여놓는들, 시간과 돈을 얼마정도 들여서 향후에 공개될 AI는 이걸 그냥 해낼 것이다, 라는 생각.

그리고 오늘 써본 notebooklm은 그 생각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줬다. 그러니까, 이런 단기메모리에 기반한 고도의 분석이 가능한 모델들은, 자비스 그 자체이다. 모두 아이언맨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모두가 아이언맨이 될 수 있을 때에 중요한 건, ‘무엇’을 다루는 아이언맨이 되고자 하는지가 아닐까.

과연 AI의 고도화는 인류멸종의 시나리오로 연결될까?

AI의 고도화가 인간이 멸종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곧잘 들린다. 아닌 듯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르네상스 2기를 겪게 되는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자본주의가 낳은 르네상스 2기를 이미 겪고 그 다음 철학의 시대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손빨래 하인을 두다가 세탁기 한대로 모든 가정집에 큰 세이브를 줬던 것 처럼, 고도화된 AI는 그동안 인적자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 대신 뛰어난 몇 모델과 그 뛰어난 모델을 다룰 수 있는 몇사람 정도로 정리될 수도 있겠다.

AI를 두고 인간보다 지능이 좋은 뭐라고 하던데, 말하자면 운영의 내용이 [적당한 지능 * 많은 머리] ?= [고도화된 지능 * 1개 AI] 이런 시소싸움이 될 수 있겠고, 비용적인 측면에서 어느날 이게 더 저렴하다고 할 때 더 큰 레이오프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 그런 영역이 있을테고,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을테고.

지적능력의 위임이 마치 빨랫감 다루기를 세탁기에게 넘기는 것처럼 할 수 있다고해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못하거나 사회가 붕괴되거나 AI 에 의해 잡아먹힐 것처럼 생각하는 건 어쩌면, 인간의 능력을 머리/공부에만 한정하여 점수를 매기고 있던 사회 일부의 시선을 보여주는 거 아닐까 생각도 든다.

인류가 아니라 인적자본<>임금교환의 법칙 안에서 가계가 유지되며 발전해온 자본주의의 형태가 달라지는 게 아닐까?

자본주의로 넘어오고 그 뒤에 지식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머리를 (정치와 실무에) 갈아넣어 데스크잡을 하는 수많은 회사원을 양산했었다. 돈을 버는 방법 중 하나가 학교에서 트레인된 머리를 입증하는 학위나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를 활용해 지식노동을 하는 거였다. 그 외에도 여러 돈을 버는 방법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렇게 자신의 자녀가 노동하는 것에 대해서 부모들은 선망했고, 어쩐지 그게 세련되다고 믿었고, 그게 더 큰 기회를 준다고 여겼으며, 그게 더 레벨이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했고, 지위도 더 높고 나아가 더 큰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여겼다. 말하자면 학위나 지식수준의 비대칭성에 베팅을 했달까.

그런데 지적능력은 인간의 일부일 뿐이고, 인간은 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믿음은 현실과 상이할 수도 있다. 왜 그래야하지? 왜 그게 정답이라고 믿지? 일견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지구를 벗어난 어느 다른 땅에는 우리와 다른 사고체계를 가지고 더 현명한 다른 판단을 하는 종족도 있을 수 있다. AI가 인간종족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생각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그 고지능의 무엇이 인간과 다원적으로 살지 않고 절멸시킬 거라는 시나리오는, 자극적이지만 설득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고지능이라서 터전인 지구를 파괴한 게 아니라, 우리는 지금 우리가 수행하는 일의 consequences 에 대해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지금의 파괴로 온 것이다. 몇수 앞을 더 내다볼 수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거기에 파괴적 감정에 의한 잘못된 의사결정(예: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했던)의 노이즈 간섭이 낮다면, 더 손해가 적으면서도 더 오래 보존이 가능한 무언가를 찾을테고 (그것이 안녕함을 보장하기에) 거기서 평화롭지 않은 방법이, 특히 멸종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라는 게 가능할까?

다시 돌아와서, 세탁기에게 빨래를 위임했을 때 빨래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또 변화가 없었다면 그 일을 했겠지만 변화가 생긴 후에 나타난 다음세대는 어떻게 되었는가?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자신이 할만한 일을 찾아 자리를 찾았다. 그럼 우리도 그러겠지. 지식산업을 움직이는 지적능력의 발현을 위임한다면, 지식노동자 계층은 어디로 이동할까? 자신이 인간으로서 가진 다른 역량에 포커스를 두겠지.

그리고 그것은 지식산업이 이렇게까지 발전하기 전에 살던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모두가 지식산업의 최정점의 능력자에 해당하는 에이전트 하나씩을 휴대폰에 담고 다니는 게 다를 뿐이다. 즉, 세탁기처럼 지식전문가가 상시 대기중인 생활상일 뿐이다.

네이버나 구글 시대와 다른 점은 걔들한테는 묻기만 하고 정보를 찾고 벨리티디를 매기고 문제와 합을 보아 분석을 하여 앞으로 어떻게 사용응용 할지에 대해 검색자인 내가 수행했다면 (즉 빨래를 직접하거나 각 단위에 대해 위임할 사람을 찾았어야 했다면), 고지능 에이전트 모델이 (세탁기가 빨래를 대신하고 건조까지 마쳐서 다 말린 걸 내놓듯) 그걸 다 하고 나에게는 옵션을 제공하는 형태일 뿐이다. 너 어떻게 할래? 라고 묻는.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1.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인간성에 대한 이해, 인간의 지적능력 외 다양한 감각과 능력에 대한 인지. 인류 자체에 대한 관심.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에 대한 조명. 즉 더 고도화된 인본주의와 철학적 마인드셋.
  2. 문제의식의 발굴과 의사결정 능력 그 자체. 즉 비판적 사고와 기획적 프레임워크가 내재화되어 있지 않다면, 세탁기를 잘 쓸 수 없다. 이게 AI 보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AI라는 어떤 기술, 그러니까 똑똑한 계산기, 사람말을 알아듣는 계산기가 하나 나온건데, 걔한데 뭘 묻고, 답을 내놓고, 그걸 쓰려고 내가 응용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때에 좀더 잘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자신의 지적능력을 갈고 닦긴 해야한다는 얘기. 일을 위임하는 대상이 기존의 인간여럿에서, 말귀 잘 알아듣고 연산능력이 빠르며 정치적 소통이라는 브레이크 없이 통합적으로 운용되는 어떤 기술집약체 하나로 바뀌었을 뿐이다.
  3. 그렇다면 인간은 무슨 일을 해야하는가? 라는 지점에서 나는 한가지 생각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지적능력’으로 줄세우기를 하던 시스템의 다음 단계를 상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왜 ‘지적능력’으로 줄을 세웠으며 그 줄에 내가 몇번째인지를 쳐다보고 거기서 만족이나 불만족을 느꼈다면, 그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솔져처럼, 자본주의 세계를 구성하는 에이전시들, 즉 자본으로 세워졌으며 자본을 낳는 회사에서 일을 위임받고 노동을 제공하여 임금으로 바꾸는 그 매커니즘, 그 시장논리에 응한 것이다. 우리의 혼란은 바로 그 지점, 그 시장논리가 더이상 안통할 때에 “그럼 앞으로 그 시장이 아닌 다른 세계는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닌가. 혹은, 지적능력과 학위를 들고 뛰어들어 한자리를 얻었을 때 명함이 함의하는 나의 하이라키 속 위치, 임금의 고저의 예측… 시장에서 통용되던 이런 비언어적 정보들이 더이상 나의 무기가 될 수 없는 시대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면 크게 질겁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지식수준이나 지적능력으로 사람을 줄세우기 하고 그를 기반으로 등용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고만고만하게 좋은 머리 * 사람수 = 인적자원이기 때문인데, 그 인적자원 = 아주 좋은 머리 * 모델수 로 바뀌었다. 자원구성의 형태가 바뀌었다. 더 적은 수의 사람만으로 하나의 회사가 운영될 것이다. 만약 회사의 수나 비즈니스 체계가 지금과 그렇게 다르게 있지 않다면, 총 고용된 사람들은 적을 것이다. 총 고용된 사람 외에는 사람들이 어디서 노동하는가? 가 아니라, 우리는 그들이 노동을 한다고 상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고용되지 않는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하고, 가계에 돈이 없다면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금융혈맥(?)이 굳고 이에 시스템적 에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지금의 ‘자본주의적 사고패턴’이다. 나는 어쩌면 이 자본주의적 사고 패턴이 이 ‘인적자원과 기술자원’의 일부 통합화에 의해서 다음 단계의 규칙으로 나아가거나 혹은 다른 형태로의 진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고용’의 체계에서 벗어났다면, 임금은 불안정하지만 그만큼 다르게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 시간을 엔터테인에, 말초적인 데에 쓸 것이다, 우리는 불확실함 앞에서 손쉬운 위로와 그에 따른 중독에 빠지는 연약한 인간이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다루어서 무언가를 그 AI와 함께 생산하는 데에도 쓸 것이다. 즉 우리는 각자가 무언가를 생산하는 형태로 나아갈 수도 있다. 마치 농사지을 땅이 있는 농부처럼, 우리는 개인적으로 창작하고 생산할 농기구와 시간이라는 땅이 있는 농부가 된다. 게다가 디스트리뷰션 채널도 이미 디지털적으로나 물리적 세계에서나 갖춰져있다. 인프라는 고도화되어 생산자와 향유자의 직거래도 가능하고, 국가는 이미 국경초월적 형태를 갖고 있다.

문제는, ‘(회사가 고용하지 않으므로 임금생활자는) 노동을 할 수 없어 돈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 향유해’ 라는 질문이다. 그러니까 지적수준으로 줄을 세우고, 그 레이블링된 수준에 맞추어 시간단위의 고용노동으로 임금을 받던 그 사고체계를 깨고, 다른 접근을 해야한다.


마무리

오늘은 사진 얘기가 아니다. 음.. 그럼에도 내 삶의 큰 부분인 혁신기술과 인간 삶에서의 어덥테이션 관련되었으니 작업고민은 맞다. 나는 인류학이나 사회학의 렌즈를 갖고 싶은 걸까?

나는 나를 알면서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시스템이나 매커니즘이나 패턴을 바라보는 그 과정에는 과거와 현실과 미래에 대한 상상이 얽혀있어 재밌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고, 다만 주변의 환경이 진화된다.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틈새]에 사람들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욕망하며 좋고 나쁜 의사결정을 반복한다.

오늘 기술관련 정보들을 찾아보고 쓰면서, 어느정도 기술의 방향성이 잡혀가는 느낌을 받았다. LLM은 틈새의 예고편격인 매직쇼였을 뿐이다. 나는 어떤 파도에 탈 것인가. 혹은 몇개의 배로 파도를 탈 것인가. 파도를 타긴 할 것인가.

지적능력을 위임할 수 있다면, 나의 고민은 어쩌면 일부 해결된(될) 것이 아닌가.

문제의식이 더 중요하다, 나의 기본 트라이어드 ‘무엇’, ‘왜’, ‘어떻게’는 여기서도 적용된다.

내가 탐닉할 ‘무엇’이 있고, 탐색의 이유인 ‘왜’가 깊고 짙고 구체적이라면, 탐구방법인 ‘어떻게’에 대해선 AI와 함께 하면 된다.

여튼 매우 땡큐.

그런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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