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고
A. 연결감과 유대감에 대하여
들어가며: 연결감에 대해
우리는 연결감을 쫓는다. 연결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듯 어딘가에 모인다. 인터벌, 빈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연결이 없다면 촉촉하던 마음은 메마르고 생기가 공기로 흡수되어 껍데기만 남은 미이라이다.
우리는 연결감을 따른다. 모여살았고, 편지와 전화를 주고 받고, 교류하고, 타인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만든 음악을 듣고, 살갗을 만지고, 껴안고, 악수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낳은 글을 읽고, 영화를 보고, 누군가가 재잘대는 유튜브나 틱톡 영상이며, 누군가가 뭘 하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선택했고 만났다는 얘기가 흐르는 인스타와 트위터와 쓰레드 안에서 만난다. 정보와 의견이 물이라면 우리는 거대한 온천탕에 몸 하나를 들여놓고 앉아있는 듯하다.
…왜지?
#1: 내면에서 나와 연결되거나, 외부에서 가짜 연결을 탐하거나.
나는 종종 아무도 만나지 않는 반나절을 보낼 때가 있다. 그 때에 뭔갈 집중해서 한 게 아니라면, 에너지가 좀 남아있다. 그리고 그 때에 나는, 이 느슨한 몸을 일으켜, 도시의 광경이 보이는 산길을 뛰면서 앞서 많은 사람들이 공을들여 만든 이 도시의 빛나는 밤을 보거나, 그게 아니라면 소파에 누워서 뭐라도 듣거나 읽거나 틀려고 한다.
누구를 딱히 만나지 않고, 영상도 별달리 보지 않는, 이 기간이 길어지거나 정도가 심해지면 다음 두 현상 중 하나가 나타난다. 둘은 한 레인지에서 극단의 관계같다.
먼저는 시각적 자극에 예민해진다. 인공적인 무언가들이 부담스럽다. 사람 얼굴이 크게 프린트된 지하철의 빛나는 광고판을 보는 것이, 과장된 편집이 많은 TV쇼의 흔적마저 버겁다. 그래서 나는 눈을 슬며시 감고 거대한 광고판들을 스쳐간다. 여기저기 보이는 영상 디스플레이에서는 고개를 돌린다. 대신 사고의 품질이 좋은 때라 머리 속 흐르는 생각을 관찰하며 그 냇물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건져올린다. 즉 외부보다는 내면에서의 나와 자아(?)와의 연결을 고요하게 유지하고 청량하거나 쾌적한 상태에서 ‘전개’하고 싶어한다.
두번째의 경우는, 도망친다. 그런 생각의 흐름이 부담스럽다. 쉴 새 없이 전개되는 릴스를 틀어놓고 멍하게 그걸 보고 있다, 심지어 몸은 쪼그라든다. 아니면 누가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영상이 내 집의 한 공간에서 흘러가도록 틀어놓는다. 정말 시끄러워서, 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이 때에는 온갖 인풋으로 실상 피로가 급증하지만, 이를 멈추기 위한 무슨 행동도 귀찮다. 나를 낭비하듯, 아니 시간을 수채구멍에 버리듯, 내일의 건강을 반기지 않듯 한다. 나는 이 때에 가상으로라도 연결감을 원하는 듯 하다. 말하자면 가짜 허기처럼? 아니다. 이 어떤 공백적 허기는 진짜인데 취하는 음식이 가짜인 상황이다.
#2: 진짜 연결감과 가짜 연결감의 차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직관적으로는 아마도 적절한 수준의 즐거움(도파민)과 만족감(세로토닌)의 밸런스?
그러니까, 내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먼저 상황(자극에 예민하여 고요를 유지하고 대신 생각의 품질을 높이는)에 대해.
이 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지만 ‘집중해서 무언가를 했을 때’에 이런 상황이 은은하게 이어지는 것 같다. 스스로를 방해하는 자극을 피해서 자아를 보호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이 때의 나는 스스로와 일련의 유대를 쌓는다. 연결감이 강력해진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걱정은 무엇이고, 어느 방향으로 풀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들여다 본 뒤에, 그것이 또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는 중간산출물의 형태로 잘 나왔을 때에 나는 이 플로우 안에 있다. 즉 나의 질문을 마치 기차표처럼 갖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며 ‘시간과 기회비용을 들인 게 아쉽지 않을, 조심스럽게라도 나아가는 상황’에서 나는 코가 뻥 뚫리는 듯한 만족감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나와의 연결활동으로 그 날의 자극은 충분하여, 더 이상의 연결감을 찾지 않는다. 그것은 과식이며, 또한 과도한 자극이다.
한편으로 ‘아쉬운 편’이라고 생각한 두번째 공백적 허기에 자극적인 걸 찾는 때에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않고 영상 스트림이 흐르도록 놔두는 편에 가깝다. 잠의 세계로도 가지 않고, 움직이러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이 때엔 즐거움 보다는, 무언가 내 눈앞에서 자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멍’하게 관조하듯 하지만 끌려가며 [내]가 사라진다. 걱정은 아마 한구석에 있겠지만. 허기를 채우는 활동이 가짜 음식이었기 때문에, 배부름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만족도 없고, 과식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욕망에 굶주린 아귀인 마냥, 홀쭉해져서 흘러다니듯 영상 위를 훑는 듯, 영상의 표면만을 더듬는다. 내가 시간을 써서 틀어놓은 게 (보고있다고 할 수 없다) 무엇인지 잘 모른다. 틀어놓은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과 나는 별달리 관계는 없지만, 그 시끄러움 속에 있는 나는 거기에 앉아 내 말을 안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시끄러움 속에 ‘나’와 그들의 유대는 없지만, ‘가짜 연결감’은 있다.
#3: 유대감과 연결감의 차이
어라 위에서는 나는 [유대감]와 [연결감]을 구분하고 선택하여 사용했다. 의식한 적 없는 일이다, 특이하다.
유대를 검색해본다. 유대는 끈과 띠 라는 뜻으로, 둘 이상이 이어지거나 결합되도록 하는 것이나 그런 관계를 가리킨단다. 그리고 유대감은 그런 관계 내에서 ‘통하는 느낌’을 말한단다. 이것은 영어로 bond;tie;links;rapport;fellowship라고 쓰는 듯하다. sciencedirect.com에서 찾다보니 ‘bonding relationship’정도가 학술적으로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링크)로 보인다.
한편 연결감은, 영어로는 relatedness로 쓴다, 자연연결감은 nature-relatedness. 한국어 사전에서 적당한 정의를 못찾아서 sciencedirect.com의 링크를 걸어놓는다. 연결감은 심리학적으로는 사랑받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더 넓은 사회 세계에 의미 있게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리킨다고 한다. 종종 self-relatedness라고 쓰는 경우도 보는데, 자아연결감을 말한다. 내가 위에서 나를 상대로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내 생각을 관찰하며 사고를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 자아연결감의 영역에서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다.
B. 햇빛의 가족사진에 대해 글을 쓰다.
두가지 버전이다. 인스타에는 작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글을 썼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가게 앞에 프린트해서 붙인 버전.
여기 햇빛사진관에서 우리가 함께 찍어낼 사진이 무엇이든, 꾸며냄보다는 과하지 않고 적당하기를 원합니다. 덜 정제하고, 더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하는 작업이 세상을 관념적으로 보고 관성적인 틀 안에 넣어서 찍어내는 건 아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한사람의 모습이라면, 대화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사진을 구축해가고 싶습니다. 한편 그룹/식구/가족사진이라면 관계에 좀더 집중을 합니다. 서로 좋아하고 아끼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고민을 요즘 많이 합니다.
가만보니 저는 [비정형 가족사진]을 추구합니다. 전형적인 가족관계가 아니더라도, 라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사진으로서 '비정형'이기를 바랍니다. 가족사진 하면 떠오르는, 공영방송 드라마에 걸려있을 법한 그 예측가능한 이미지를 벗어나서, 더 진하게, 우리가족 애착이, 애정이, 애증이 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속에서 우리는 더 달라붙고, 더 친밀하고, 더 살아있었으면 합니다. 서로 의지하는 그게 눈으로 보였으면, 그걸 보이게 하기 위해서 사진기 앞에서는 어떻게 서야할까요? 저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사람들마다 사실은 어떻게 담기고 싶은지,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다 다릅니다. 그걸 모든 촬영 전에 물어 보고 싶어요.
왜 가족사진을 가지고 싶으세요? 어떤 의미인가요, 가족사진이란. 가족이란. 우리란. 식구란. 누가 나의 식구인가요? 우리 가족의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미안함은 어떤가요? 나와 저이와 다른 기억을 알고, 듣고, 함께 상상하는 시간.
자연스러움을 만드는 몸짓과 표정은, 우리가 함께 여기 이 날에 앉아있기까지 거쳐온 그 일들이 나의 기억을 훑으며 나타납니다.
그래서 말과 이해 없이 사진만 찍는 것은 정말 재미가 없습니다. 마치 포즈 교정 전문가가 된듯한 느낌입니다. 팔꿈치를 꺾으세요, 허리를 넣으세요. 머리를 돌리세요.
어떤 때에는 그저 ‘지나온 시간만큼 꽉 껴안아주세요’, ‘진심으로 아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세요’, ‘고마움을 담아 이마를, 코를, 입을 천천히 맞추어주세요’ 그게 더 나은 이미지를 줍니다.
요즘은 사진찍기 전에, 며칠전에 대화를 나누려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보다 더 한계가 없고 싶습니다. 더 이해하고 싶습니다. 더 마주하고 싶습니다.
촬영자로서의 저는 잠깐 가족의 삶에 끼어드는 사람이지만, 제가 만든 사진은 그 집에 그 가족의 이미지로서 계속 걸려있을 겁니다. 그래서 입체적으로 대하고 싶습니다.
언젠간 스튜디오를 벗어나서도 찍고 싶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유대를 갖고 있다는 그 주제를 표현하기에 그것이 적합하다면요.
이런 고민을 합니다. 이걸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참 어렵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 것이냐.
당신의 마음 속 가족사진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네이버 예약창에 올린 버전
우리가 함께 찍어낼 사진이 무엇이든, 그 과정은 감각적으로 편안하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꾸며냄보다는 과하지 않고 적당하기를, 덜 정제하면 좋겠고, 그 덕분에 더 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사람의 모습이라면, 대화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사진을 구축해가고 싶습니다.
그룹/식구/가족사진이라면 서로 좋아하고 아끼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고민을 요즘 많이 합니다.
저는 [비정형 가족사진]을 추구합니다. 전형적인 가족관계가 아니더라도, 라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사진으로서 '비정형'이기를 바랍니다. 가족사진 하면 떠오르는, 공영방송 드라마에 걸려있을 법한 그 예측가능한 이미지를 벗어나서, 더 진하게, 애착이, 애정이, 애증이 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속에서 우리는 더 달라붙고, 더 친밀하고, 더 살아있었으면 합니다. 서로 의지하는 그게 눈으로 보였으면.
그러려면 사람들은 사진기 앞에 어떻게 서야할까요? 저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자연스러움을 만드는 몸짓과 표정은, 우리가 함께 여기 이 날에 앉아있기까지 거쳐온 그 일들이 나의 기억을 훑으며 나타납니다.
- 지나온 시간만큼 꽉 껴안아주세요
- 잠깐 집중하여 상대를 진정으로 아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세요
- 고맙다고 속으로 말하며 이마를, 코를, 입을 하나씩 천천히 맞추어주세요.
요즘은 이런 요청을 합니다. 포즈를 요구하는 것보다, 이게 더 낫더라구요.
사실은 이보다 더 한계가 없고 싶습니다. 더 질문하고, 좀더 대화하며, 제가 담을 분들을 더 이해하고 싶습니다. 사진기 안팎으로 마주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유대를 갖고 있다는 그 주제를 표현하기에 그것이 적합하다면요.
저는 잠깐 스쳐가지만, 사진은 남아 가족의 이미지가 될테니까요. 그래서 입체적으로 대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 가족사진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낮의 생각이 저녁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다.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올라와서 이런 글을 썼을까.
오늘 들은 내년에도 봐요, 라는 말 한마디에? 과거에 쓴 글을 읽으면서? 혹은 작업 궤도에 오르려고 지난 3주정도를 노력한 덕에? 이제는 때가 되어서?
아니 오늘 낮에, 낮에 위의 글을 쓰면서 (유대감, 연결감) 뭔가 그 행위 자체에 만족했다. 그 두가지를 정리하며 머릿속에 어떤 의문, 질문, 형체, 의견의 형체, 어떤 문제의식 같은 게 자리를 잡았다. 낮의 빛 아래에서 생각을 발전시키면 그런 기쁨이 종종 찾아온다. 밤과는 다른.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 내내 함께 흐른다. 마치 파이가 나와 내 생의 10년을 함께했고, 그 뒤로 주욱 그 아이가 내 속에 있는 것처럼. 하루가 그렇게, 그 생각과 함께하며, 저녁나절에, 글을 쓰게 되었다.
미로 속에서 헤매다 이렇게 정신이 든 날에는 의외로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생각을 한다.
남들처럼, 혹은 남들이 원할 것이므로, OO을 해야해, 가 아니라, 왜 해야하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없다면, 하고 싶고 좇고 싶은 것을 향해 몸을 틀어, 에너지를 모아, 해내는 편이 더 낫다. 분명히 거기에, 그 길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연결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종종 어떤 비슷함은 중력처럼 알아보고, 그래서 한번쯤은 스치게 된다.
그렇게 되리라 믿고, 나는 내가 지금 가진 것 중, 생각 중, 환경 중, 능력 중… 내 최고 좋은 것들을 긁어 모아서, 생각과 고민을 담은 ‘오늘 우리의’ 결과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자. 아침에 생각을 정리하면, 저녁나절까지 활동하는 데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나를 다룰 장비 하나를 찾은 느낌.
엽서도 그냥 만들지 뭐, 라고 생각했다.
하나씩, 하나씩.
오늘의 음악
희망 (Esperanz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