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고
질문
어제에 이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연결감’은 무엇인가? ‘연결감’이 왜 중요한가? 연결되는 대상은 누구들인가?
답1. 내가 말하고자 하는 연결감: 사회적 차원에서.
- 먼저 개인(개별 구성원)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랑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 나는 혼자 살고 일하면서 종종 고립되어 고집스럽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 이렇게 작업의 궤도로 들어가는 중에는 주변 지인이나 친구도 잘 안 만나고 있다.
- 회사를 다닐 때엔 매일 만나는 ‘아는 얼굴’이 어깨를 걸친 동지이며 때로는 협조성을 이끌어내야 하는 회사동료와 연결감을 가졌다.
- 지금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매일 온몸의 땀과 물을 공유하는 수영장 사람들로 일상의 연결감을 유지한다.
- 혼자 작업하는 동안 매일을 공유하는 일정한 ‘주변환경’이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 나만이 나를 알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 뿐이라면, 그 개별적 ‘나’는 사실 무엇인가? 어디에도 반사되지 않는 무형, 투명인간이다.
- 외로움은 사람을 병들게하고, 사회적 고립은 사람을 고달프게 한다.
답2. 자연환경적 차원에서
- 다른 자연의 일부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경험. 다양성과 공생의 감각. 인간 뿐만이 아닌 다채로운 자연종이나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
- 이게 왜 중요하지? 직관적으로는 이게 없으면 안된다, 인데 이게 왜 중요한지 설명이 어렵다.
- 풍요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 감성적 풍요? 감정적? 어떤 풍성함, 안정감.. 뭔가 기이한 종교적 간증같은 단어들이 (그런 걸 싫어함) 나올까봐, 너무 연성적이거나 영성적인 탐구일까봐 글을 잘 못꺼내겠다.
- 그보다는 자연환경에 노출되므로서 얻는 편안함, 위안, 위로적 얘기를 하고 싶은데.
- 큰 환경 가운데에서의 나를 발견할 때라든가, 콘크리트를 벗어나서 물과 자연물을 보고, ‘진짜’인 그것들에 둘러 쌓였을 때의 기분이라든가.
- 그것들이 주는 감각적 환기를 온몸으로 느꼈을 때의, 환경에 대한 소속감..
- 흠..
- 빌딩생활을 너무 오래하면 고갈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바캉스를 좋아하는 자연환경이 주어지는 곳으로 떠나곤 하지..
- 나는 남산에 사는 이유가 아침저녁이면 가득한 나무를 곁에 두고 천천히 걸을 수 있기 때문에
- 그런게 왜 중요하지?
질문 계속: 내가 생각하는 연결감 (사회환경, 자연환경)이 인간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려면 무엇을 찾아봐야 하나?
- 실제로 인간에게 중요할까?
- 왜 중요한가? 어떤 기재로?
- 없으면 어떻게되지?
- 연결감은 어떻게 묘사될 수 있는가?
- 그것을 더 잘 느끼거나 인지적으로 포착하려면 어떤 장치들이 필요한가?
- 그것을 사진으로 연결한다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
사진이 연결감의 해법이 되는 사례 중 하나는,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파이.. 나를 먼저 떠난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나와 그들의 기억을 되살릴 때.
추억어린 사진들이 나를 기억의, 보물상자와도 같은 그 맛있는 캔디박스와도 같은 그곳으로 이끌 때에.
나는 감정적 안락함에 잠시 나 자신을 뉘인다.
인상사진에서도 그룹사진, 또는 촬영경험을 공유하는, 내가 직접 찍거나 함께 있는동안 찍었던, 공동의 기억을 만들면서 동시에 산출물이 발생하는 그 상황이 장기적으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최고의 장치.. 아닌가. 여기에 육필 편지… 그사람의 힘과 생각이 담긴 증거물.. 떠난 사람이 내게 남긴 그것을 보면, 그사람이 준 용돈봉투에 눌러쓴 내 이름만 보아도 나는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늘 그 사랑의 기운이 그 글씨에서, 사진속의 미소에서 흘러나와, 내 속을 따뜻하게 한다.
내 삶의 형태는 외로울 수 있는데, 내가 그런데에서 크게 고립되었다고 느끼지 않으며 그저 순순하게 내 길을 밟는 데에는 그런, 장치들이 한몫을 하지 않는가 생각하기도.
나는 너무 연성적인가.
감성적인가.
오늘의 사진
사진관에서 자연광 포트레이트를 위한 스팟 연구.. 오후 5시 내외.
캐논 모바일앱으로 리모트 촬영을 하는데, 잘 끊긴다. 예전앱이 좋았는데.
카메라와 눈높이가 안맞아서, 어정쩡하게 무릎을 굽혀 섰더니 바지 엉덩이춤이 이상하게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