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노트
며칠 전 처음으로 어려운 손님을 겪었다.
하나하나 나를 향해 던져오는 말이 너무 아파서, 동시에 내가 그사람을 화나게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 곤혹스럽고 또 그 촉발제가 나의 행동과 말이라는 점에서,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복합적인 방향에서 나는 크게 당황했다.
분노하여 나가려는 그 사람 앞에 양손을 모아쥐고 비듯 말했다. 지금 그런 반응의 이유를 알고싶다고, 배울 기회를 달라고. 소파에 앉히고 눈을 마주보며 둔탁한 돌을 갈아 만든 석기시대의 칼침과 같은 말을 피하지 않고 받았다.
온 신경을 기울여 그의 얘기를 신중하게 귀기울여 듣고, 실시간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제가 이런 이런 잘못을 했군요 이제야 알았습니다 라고 하자 그는 ‘나는 그 이해했다는 반응이 필요하지 않다’ 라고 했다.
나는 받아들였다. 이해 대신 운영에 반영할 포인트들을 속으로 짚어냈다.
핵심은 나의 무심한 말실수, 부족한 환대와 서비스, 내가 그를 잘못 대접한 행동,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 모두가 다녔다는 그곳보다 허접하고 협소한 스튜디오, 다른 곳들은 다 있는데 나는 마련해놓지 않은 공유용 양복과 같은 어매니티들, 그게 그의 경험과 기분을 망쳤다.
반성하고 개선할 부분들이 있다. 운영적으로는 손님들의 예약시간 정시입장을 강조해 팀 간 겹침을 최소화 하고, 어매니티는 제공가능한 것은 더 챙기고, 양복 등은 이곳의 작은 규모에서 대응할 수 없기에 그런 니즈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나은 곳으로 가시라는 고지를 상품 설명에 강조하면 된다. 그의 신경을 건드린 나의 말실수나 행동거지가 거칠게 발생한 원인도 직전 손님의 강한 에너지에 내가 영향을 받은 까닭이 큰데, 이것은 정시입장을 강화해 세션 간에 잠깐 끊고 가므로서 보완이 가능하다. 좁은 가게가 엉망인 상태도 정비해야 하고.
그렇게 취업용 이력서에 쓸 증명사진을 원한다고 온 그 사람을 제대로 찍어보지도 못했다. 그는 사진 대신 26,900원의 기본형 증명사진의 예약금을 온전히 환불해달라 했다.
여러번 미안하다고, 나와 이 가게의 존재가 당신의 오후를 망치려고 의도한 게 아니라며, 진심으로 마음 저 아래에서부터 꺼내어 빌다보니, 스스로 모멸감이 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사람을 보낸 뒤에 한참을 한시간 반 여 가까이, 가게 돌바닥에 엎어져 울었다. 서있을 수 없어 쪼그려 앉았다, 쪼그려 앉은 몸을 버틸 힘이 없어 엎어졌다, 엎어진 뒤로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옆사람이 없었다. 또한 울려고 우는 게 아니라, 애가 끓고 끊어질 것 같이 위태로워서 울어서 꺼내는 것 뿐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그 사람에게 화나서가 아니었다. 내가 우는 이유는 내 마음이 크게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직접적으로 상처받은 게 아니라, 그의 분노가 갖는 에너지가 내게 영향을 주었다. 그 에너지는 너무 셌다. 고기용 나무 망치 같았다. 그걸로 영혼이 얻어맞았고, 나는 뭉개졌다. 마음이 멍든 과일처럼 변했다. 손으로 망고를 짜서 주스를 만드는 것처럼, 육체적 외상에 따르는 철철 넘치는 피처럼, 정신적 내상에는 콸콸 쏟아지는 눈물이 따랐다. 생애 이런 적이 없었다. 나는 손바닥 대신 말로 아주 크게 몇대를 후드려 맞았고, 칼로 깊이 또 길게 베어져 저 배 아래에서부터 애가 끊겼기 때문에 나오는 울음소리도 있었다.
아마 옆집 부동산 할아버지는 내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긴 울음 끝에 몸을 바닥에서 떼고 네 발로 기어다니 듯 엎드려서 겨우 일어났다.
토요일 오후운영을 마치면 나는 늘 수영장을 간다. 수영장은 안전하다, 변화가 없고 모두 각자의 연습을 한다. 흰색 타일에 푸른 물이 만들어내는 물소리가 반사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저녁에 너무 늦지 않게 수영장을 가면,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내가 오리라 생각하고 있다, 늘 그랬듯이. 지난번에 끊긴 얘기도 있었다. 거기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서는 지금 엎어져 울음에 취한 이 상태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 사실 하나를 꽉 붙잡고 쪼그려 앉았다가, 양 무릎에 양 손을 하나씩 얹고 기계처럼 일어났다.
이제 막 설비가 끝난 고물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주저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비척이는 몸을 의자에 앉혔다. 컴퓨터의 커서를 겨우 움직이고, 클릭을 몇번 하여 예약상품의 안내 페이지 수정까지 도달했다.
고심하다 적었다.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첫 취업용 사진은 인근의 전문 사진관을 이용해주세요” 라고. 그곳에는 나와 이곳이 갖추지 못한, 당신들이 기대하는 많은 것들이 아쉬움 없이 준비되어 있을테니까요.
그렇게 그 사건이 남긴 첫번째 교훈을 반추해 즉각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엉엉 우는 얼굴을 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명동에 도착했다. 냉동고에 들어온 듯 칼바람은 평소보다 더 세찼고, 내가 한번 더 타기를 바랐던 버스는 시위로 운행이 취소되었다. 고개를 푹 숙인채 20분을 더 걸었다. 체온이 뚝 떨어졌는지 발목이 너무나도 시렸다. 이렇게 발목이 시린 건 처음이다. 온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간듯하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수영장의 안녕한 모습이 더 가까워졌다. 수영장은 안전하다. 수영장은 늘 같다. 나는 지금 엉망이지만, 가서 옷을 홀딱 벗고, 온기있는 공중목욕탕에 들어가면 언제나와 같이 할머니들이 계실 것이다. 따뜻한 물에 머리를 감고 몸을 닦은 뒤 수영복을 입고 내려가면 파란 물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수영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상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언덕을 올랐다. 뼈와 피와 살이 그득한 몸을 옮기기 위해 힘줄과 근육은 자동화 모드를 가동했다. 힘은 없지만 그렇다고 멈추지는 않는다. 내가 살았던 방식처럼 걸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복기할 여력은 없었다. 그저 푸른 그곳을 상상하며 달랠 뿐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성실히 걸음을 옮겼으니 자연히 도착했다. 인과관계, 인과응보. 체육관의 카운터 선생님들과는 눈을 못 마주친 채 퉁퉁 부어버린 눈을 감고 목례하며 안녕하세요, 라는 표시를 했다. 이내 상상한대로 나는 옷을 벗으며 울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면서도 울었다. 그렇게 마음의 멍을 눈물로서 흘려내며, 언제나 안녕을 유지하는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차가운 타일계단을 지나, 첨벙대는 소리가 울리는 공간에 도착했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10분 뒤면 곧 쉬는 시간인 푸르른 물에 몸을 담갔다. 차갑지만 잘 알고 다정한 이 물이 반가웠다. 온 몸에 물이 닿는다는 자체가 위로였다. 언제나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 푸르고 희고 투명한 수영장의 물이 넘실댔다. 나를 어지럽게 한다. 나는 어지러워졌다. 편하지만 다시 울고 싶어졌다. 정신을 잠깐 놓았다가 다시 차리니, 요즘 친해지기 시작한 사람이 다정한 얼굴로 다가와서 옆에 서있었다.
그 때 준 수경은 어떤가요? 잘 맞나요? 라고 묻는다.
나는 부끄러워서, 너무 많이 울어 부어버린 눈으로 새로운 수경을 쓰면 개구리 왕눈이처럼 툭 튀어나올까 두려워서, 천천히 썼다. 부어있는 눈을 누르자, 남은 눈물이 또 나왔다. 수경 안에서 눈물이 샘솟았다. 그래도 수영장에서는 우는 게 티가 안나니까, 수경을 벗었다.
“빨갛네요 눈이, 수경이 안맞나봐 다른 걸 갖다줄까요?”
라고 하였다. 나는 약간 물이 새어 들어오고, 또 어쩐지 약간은 작은 듯한 수경을 쓰고 팔이 없는 조개가 수영하듯 대강대강 물을 휘젓는다. 힘도 피도 다 빠져나간듯 하다. 눈물샘이 튀어나올 것 같다. 한두바퀴를 돌고 오면 그 사람이 물어본다. 괜찮나요? 네, 아뇨 물이 새네요. 아 콧대가 아프지는 않나요? 브릿지가 작을지도 몰라요. 글쎄요, 한번 더 돌아볼게요. 이번엔 좀더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본다. 동체에 무게를 싣자 저항이 생겨서 눈을 누른다. 눈과 안맞는 수경 때문에 수영장 물이 들어오고, 눈물도 나온다. 다시 그 사람을 보고 사실대로 얘기한다.
울어서 눈이 부어갖구, 수경이 잘 맞는지 모르겠어요.
쉬는 시간 호루라기가 불리고, 풀 밖으로 나가서 한두바퀴를 걸으면서 얘기를 한다. 퉁퉁 부어버린 뻘건 눈에는 팬더자국이 확연할 것이다. 콱 막혀버린 콧소리. 감기는 아니에요. 수영복을 입고 나란히 걸으며 얘기를 하는 게 웃기다. 앉아서 디테일을 빼고 손님을 보내고 놀라 울었다는 얘기만 한다. 디테일이 엉성한만큼 그사람도 어떤 반응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영장에서는 수영얘기를 해야지, 나는 내 생각에서 빠져나와 다시 돌아가려고 나는 노력한다.
그렇게 내 마음에서 떠나 현실의 다른 얘기를 하는 동안, 헤지고 뭉개어진 마음은 어쩐지 제 형체로 슬슬 돌아갔다. 오동통하고 다시 부풀어 오른다. 마음은 어떤 재질로, 소재로, 매터리얼로 되어 있는 걸까. 젤리일까, 굳힌 한천일까. 채워진다는 표현이 맞을까. 온몸과 마음의 붓기는 여전하지만 이내 온전한 모습을 되찾는다. 이렇게 툭툭 일어날 수가 있다니?
그 날의 안녕은 그걸로 되찾을 수 있었다.
삶을 구성하는 내 주변의 일상성과 사람의 다정함, 스스로의 현재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모여, 현실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중립을 찾도록, 도왔다. 정말 마치 물에 떠있는 오뚜기 같았다, 쾅 하고 쳤는데, 넘어지는 듯 했지만 곧 중력과 저항을 이용해 제자리를 빙글빙글 휘적휘적 찾았다.
그렇게 이 사건은 두번째 교훈까지 남겼다. 일상성의 유지와 다정하고 배려있는 상호작용, 회피 대신 현실을 보려는 태도. 그것들은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키이다.
나도 스스로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그 셋 중 하나 정도는 늘 베풀 수 있도록 준비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체면을 위해 모른 척 하는 대신,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고 부담스럽지 않게 궁금해하고, 상대에게 필요한 걸 고민하고, 베풀고,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상호작용으로 각자의 세계가 엮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의 조심할 점과 운영 상에 참고할 점, 태도의 지향점을 배울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손님과, 타고난 친절과 다정함을 발휘해 길을 이탈하지 않도록 이끌어주신 분에게도 감사하다.
잘 지나가서 다행이었다.
오늘의 사진
ㅎㄹ님의 초대로 어제 그제 강릉에 다녀왔다.
강아지 김마리
숙소에서 다섯살 난 강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을 주워오기 보다는 공을 방어하며 뺏고 뺏기기 사이에서 균형잡기를 좋아했다.














불멍




아침 햇빛 조각


홀로 선 아이들





나무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