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나의 오늘에 대한 소개와, 내가 되고 싶은 무언가와의 간극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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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살 땐가 다큐팀 PA 일을 할 때에 촬영팀 전체가 어떤 높은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 나를 스킵하지 않고 ‘우리 팀에서 oo을 하는 PA, Ji 입니다’ 라고 하나의 인간으로 콕 찝어서 인사를 시켰을 때 나는 눈을 떴다. 담백하더라도 중도를 지킨 크레딧은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준다. 그리고 매우 고마웠어서, 나는 그 뒤로 촬영감독을 볼 때마다 “Jin, 그 때 정말 고마웠어요” 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 경험 덕에 나도 최선을 다해 참여한 사람들을 크레딧하고, 크레딧에서 만큼은 공평하고, 감정을 담지 않고, 우열을 나누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편 시간을 10여년 뛰어넘은 오늘, 어느 자리에서 나는 [개발업자 출신으로 동네 사진관 하는 사람] 으로 소개되었다.

내 배경이 개발업은 아니라서 데이터 분석과 마케팅 잡이라고 나중에 말씀드렸다. 잘 모르셨다고 하신다, 맞아 그건 내부자가 아니면 어려운 구분일 수 있다.

곱씹다 보니 ‘개발업자’라는 단어에서 나는 불편했다. 그건 꽤 복합적인 층위이기 때문이다. 먼저 “업자+동네사진관”의 합성은 내가 했던 일과 현재 하는 일 모두 어느정도로 축소하여 인식하시는지 추정하는 단서로 쓰였다. 단어의 조합으로 말미암아 내게는 영세함의 인상이 남는다. 한편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갯말은 해외 어디에서 일하고 누구를 찍고 처럼 화려한 단어가 사용되며 옆사람을 빛낸다. 그 자리의 상석에게 옆사람이 마음에 들도록 나는 바닥으로서 이용된다.

그럴 수 있지 뭐. 자리마다의 주인공이 있고 거기서 나는 영세하게 살아가는 업자로서 프레이밍되면서 그 위치로 말미암아 옆사람을 빛내는 데에 소비될 수 있다. 그를 위해 휴무를 걸고 길을 나선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발돋움이 되는과정이 썩 유쾌할 수는 없을 것 이다. 그러니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나도 이런 형태로 누군가를 가리고 어느 덕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분이 오묘하게 안좋은 이 경험을 사실만 남기고 추정은 잊자.

한편 “개발업자”라는 표현을 나의 동료들을 떠올려본다면 다른 의미로 마음이 아프다. 내 개발자 동료들은 단순히 업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들을 통해서 상호 존중하며 협력하는 팀워크, 산출물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일하는 자로서의 좋은 태도를 보고 배웠다. 그 분들의 끈기와 성실함을 마음속 깊이 존경한다. 그들은 작업을 매일 하고, 무엇을 결국에는 만들어낸다. 종종 예술의 경지이기도 하다.

어제의 일을 통해 누군가의 소개에는 인식과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배어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우열 혹은 평등의 관점, 누군가를 치하하거나 축소하는 언어의 포장기술. 나는 Jin으로부터 좋은 소개를 경험한 이후로, 그 점이 신경쓰였다. 복잡한 메시지와 인식상황의 신호가 소개에 선택된 단어를 통해 대낮 아래의 물건처럼 드러난다.

나를 이 문구를 통해 소개하신 분에게는 의도한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날의 취급에 자존심이 상하는 건 나의 자아가 현실보다 비대하기 때문이다. 즉 그 분이 쓴 단어는 현실에서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한 최선의 표현이나, 그것이 나의 자기인식과 차이가 있기에 언짢을 뿐이다. 따라서 반성할 사람은 아무것도 산출하지 못한 나이겠지.

저 단어와 문구는 내게 아프다. 하지만 내가 대외적으로는 (또는 나를 언급한 그들에게) 현재 어느 위치인지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지점을 찍기 위한 단서로 삼는다면 그 말을 듣는 시점에 잠시 참고, 대신 나중에 ‘제 직업의 이름은 그것이 아닙니다’ 라는 수준에서 말한 감내의 보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해석으로는, 내가 발표한 게 없으니 주변인들은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모른다. 크레딧할 게 없었을 뿐이다. 작업은 내노트와 머릿속과 하드에만 있지 않은가? 크레딧 되기 위해서는 계속 밖으로 뽑아내야 한다. 계기로 삼자, 감정을 걷어내자,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그저 내 작업의 연료로 소화하자. 우선은 이렇게 넘어가자.

숨을 쉬고, 내 생각의 테이블에 다시 앉는다.

내 고등학교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나를 계속하여 찾아온 이유를 언젠가 생각하다가, 매일 사진이 좋아서 그것만 해도 시간이 정말 아깝고 잘가고 혹은 잘 안가서, 매일매일 그것만 하던 그 시절의 내가 다시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이 기특해서가 아닌가 추측했다.

반면 성인이 된 후의 나만을 아는 사람들은 그저 취미로 하던 일을 도피처 삼아 일로 삼아보겠다는 그저그런 사람으로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충분히.

이런 사고의 흐름을 통해 배경적 맥락이 귀인에 끼치는 영향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기인식과 실제/실재 현실 사이의 간극을 파악하고 메울 방법을 찾는다. 호리존탈과 버티칼 모두 고민할 대상이다.

자 이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연구와 작업물을 정기적으로 내놓는 사진/글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그 꿈이 나의 소개멘트에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게 문제이다.

왜냐하면 내 작업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알 턱이 없어서 당연하다.

그래서 아.. 작업을 다시 집중해서 하고, 작더라도 짧게 자주 발표해서 ‘내가 무엇을 한다’는 걸 잘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느날 OO 작업하는 사람이라는 칭호가 붙을 수도 있겠지. 담백하게라도.

좋았어 목표는 내 사진의 정기적 발표이다. 그럼 뭐부터 해야할까?

전달(배포) 방식과 인터벌을 고민해야겠지. 즉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왜 소구될 수 있는지도.

오래 미뤘던 사진은 이미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함께 보았으므로, 에셋은 확보가 되어 있다.

사진은 ‘어떻게 꿰는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부분도 (듀안마이클의 시퀀스를 생각해보라) 잊지 말자.

(+ 그냥 오늘은 계기일 뿐.. 잊으려고 노력해본다. 감정에서.. 하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스스로 ‘업자’라고 정의할 수가 없다. 함께 일한 적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10년을 불태우며 쨌든 모든 시간을 들이 부어서 해냈던 그 시간동안 나는, 그정도의 가벼움 또는 영혼없으므로 쳐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 내게는 ‘업자’라는 단어에는 업력은 많고 습관화는 되어있지만 새로운 일을 창의적으로 연구하기보다는 관성적으로 관행적으로 적당주의로 남을 등쳐먹을 수도 있는 사업자라는 인식이 있나보다. 아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행하므로서 나를 잠시라도 레이블링했던 저 단어가 지닌 나쁜 기운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저 수행하므로서 해내자. 그래서 어느날 더 나은 소개문구를, 나의 작업을 관심을 갖고 보며, 그 과정에서의 노력을 인정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걸 기대해보자.

그러니 하자, 해내자. 남기자. 밖으로 꺼내자. 아픈 말들, 가까운 사람들이 나와 대화하며 분별없이 남겼던 ‘아이고 사진? 의미 없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망할 거야’, ‘죽을 때까지 할 거 아니잖아? 언젠간 문 닫을 거잖아?’ 라는 귓전에 울리는 그 말들. 무시하고, 대신 나는 진심을 다해서 매일 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포워딩하여 이곳에 잘 넣고, 꼭 해내야지. 그래서 아니야 내 사진도 어느 사람들에게는 이런 의미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 망했어, 죽을 때까지 했네. 이렇게 볼 수 있게 그저 즐거이 내 몫의 작업을 시간과 공을 들여 충실하게 하자. 그게 결국 내 전략의 근간이 될 [무엇]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나의 일부이며 곧 나의 생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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