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구나. + 10년 전 지도교수님의 사진관 깜짝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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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14년 태어난지 3개월째의 파이 모습. 오늘 글에는 2014년도에 신세를 졌던 교수님 얘기가 나와서 꺼내봄.)

  1. 생각이 정리되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다보면 정리가 되고 큰 그림이든 단계화된 할 일이든 나온다.
  2. 그러니 겁이 난다고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아무생각도 안하는 채로 그냥 살아있는 유기체 수준에서 존재의 의의를 찾는다. 먹고, 활동하고, 돈을 쓰며 경제가 돌아가는데에 일조하고, 좀 피곤하네 라며 하루의 토큰을 유기한다.
  3. 이번주 특이한 일이 있었다면…
  4. 10년도 더 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나의 첫 지도교수님 유쌤이 들러주셨다. 유리문 앞에 선생님이 도톰한 짙은 빨간색의 상의를 입고 서계셨다. 10년 전과 같은 옷은 아닌 것 같은데 또 저런 옷은 어디서 계속 사시는 걸까.
  5. 유쌤은 첫 석사생 시절, 앞뒤도 모르고 공부도 그닥 잘 못하고 머리도 그냥 그렇고 매사에는 느긋하고 나사하나 빠진 듯 대충 그러나 열심히 살고있던 나에게.. 논문을 읽고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매일 연구진행을 해내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선생님은 중간고사 기간을 즈음하여 수강생들에게 논문을 직업인처럼 읽는 비법을 전수하셨다. 쓰는 법은 프로젝트로 배웠어야 했는데, 나는 당시에도 생활비 벌이를 병행하고 있어 종종 바빴고, 글쓰기는 미루기 일쑤라 영 별로였다. 대신 그래픽 이미지 형성 쪽을 맡았었다. 광화문에 있는 모 광고회사를 오갔고, 또 일반인 실험 설계와 처치물 제작.. 서베이.. 여러가지를 했다.
  6. 왜인지 유쌤은 내가 당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에셋을 만드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고 기억하고 계셨다. 선생님, 기억은 왜곡되는 게 맞네요. 다른 두 명의 석사생과 함께 결성된 프로젝트 팀 네명은 봄에서 겨울이 되는 동안 선행연구 자료조사와 민간인 실험과 전문가 서베이에 매달렸다. 그 때의 노력은 결실이 꽤 인상적이었다. 다음 해 국회본회의를 통해 13년 간 계류되었던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가 마침내 이뤄졌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경고문구와 경고이미지 모두 반영되었다. 그게 정말 (단일로서) 효과가 있니?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효 흥미로운 연구주제네요. 라고 답할 수 있겠다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지 않습니까? 다만 캠페인은 전방위적이고, 하나가 완전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하나가 이미지의 어떤 면을 강화하며 어느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전체적 흐름이 이어지도록 추진력은 줄 수 있다. 사람의 인식은 전염력이 높고, 우리의 목표는 애연가의 금연이 아니라 비흡연자가 앞으로도 비흡연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있었다.
  7. 작은 작업실에 우리 둘이 앉아서 “뭐 힘든 일이 있었지” 라고 시작하여 어떻게 사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나대로 “뭘 하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둘이 다른 얘기를 하지만 대충 어떻게 살았구나 짐작할만한 정보는 교환한다.
  8. “야 지은아 너는 10년이 지나도 똑같구나. 아직도 꿈을 꾸는구나.” 라고 하셨다. 그런데 선생님도 꿈이라면 나 못지 않다. 유쌤은 개인사를 디딤돌 삼아 헬스컴이라는 사명과 할 일을 찾았고, 마치 수영하는 비버처럼 느긋하고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가셨다. 무거운 인생의 물결을 묵묵하게 뚫고가는 선생님의 낭만은, 정해진 루트를 별다른 의사결정의 피로감 없이 달려가는 버스에 있다. 10년 전 선생님 수업을 듣던 시절, 사회초년생 카피라이터 시절에도 일이 안풀리면 ‘저 버스타고 올게요’ 라며 회사 건물을 나섰다고 말씀하셨던 걸 기억한다. 여전히 버스가 좋아서 노후계획은 버스기사라고 하신다. 일관적인 버스사랑은 이메일 주소로도 이어진다. 그의 이메일은 도메인이 바뀔지언정 아이디는 bus로 시작한다. 버스는 그에게 사색하는 공간이고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선생님은 영화 <패터슨>을 꼭 보셔야한다.
  9. 2014년 어느 초여름 날의 오후였다. 선생님과 버스를 같이 타고 가며 각자의 낭만을 확인할 일이 있었다. 보건복지부와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회의차 학교에서 선생님과 출발했다. 서강대에서 여의도를 오가는 길은 한낮이라면 마포대교이든 서강대교이든 거의 언제나 여러의미로 한적하다. 빌딩은 저 멀리에 있고, 양옆으로는 나무나 강이 있으니까. 그 길을 지나면 발표를 해야한다는 사실이 압박적이지만 그게 길이 가진 아름다움을 죽이진 못했다. 우리는 그 날도 초록버스 뒷자리에 타고 여의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며칠 째 빅데이터 감성어 분석을 어떻게 해야하나, 그래픽이랑 서베이 문구는 또 어쩌나 하며 축 늘어져있었다. (빅데이터는 결국 코난에 신세를 졌고, 서베이 문구는 내가 헤매는 만큼 ㅇㅎㄴ양과 ㅈㅎㄹ 오빠가 고생을 많이 했다) 오른편 창문에 머리를 콕 기대었던가. 창문 밖으로 해사하게 웃는 꽃나무에서 눈을 못떼었다. 선생님은 연구중간결과를 공유하러 가는 길인만큼 ‘아 이걸 어쩌지’ 고민하시는 게 묻어났다. 나는 눈치보기 보다는 환기를 하고 싶었다. “선생님 저 나무 좀 보세요 이렇게 핀 꽃에 빛이 닿으니까 반짝반짝 너무 이뻐요” 그러자 내 옆이었는지 바로 뒷자리에 앉으셨던 건지,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그 특유의 가벼운데 피곤함이 묻었으나 설득력있는 말투로 “지은아 넌 아직 어리구나, 저게 보이는구나, 낭만적이다.” 라고 하셨다. 맞아요 저는 그 때 스물 일곱이었나, 여섯이었나. 어렸죠. 그런데 선생님도 그 길을 택시가 아니라 버스로 가고 계셨잖아요. 각자의 낭만이 살아있던 시기였다.
  10. 그리고 나는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서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게 선생님의 피드백 루프를 깨웠다. “예전에도 그랬는데, 네가 언젠가 열심히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 중요한 얘기인 거 같은데, 오늘도 하나도 못알아듣겠다”
  11. 아이고 엉망이구나, 사실 나도 내가 얘기를 꺼낼 때에 엉망인 것을 알아요. 실타래는 엉키곤 합니다.
  12. 선생님은 여전히 숙제를 내주시는 분이었고, “AI 헬스컴을 주제로 사진이 뭔가 할 게 있나? 사진을 하는 사람은 자살을 안한다든가, 할 가능성이 낮다든가 말이야. 사진은 내일 보는 거니까 (그게 희망이지 않은가 하고)” 라고 숙제를 한마디 주고 가셨다. 나는 곧 AI시대의 헬스컴을 위한 사진교육을 주제로 하는 기업(그룹)워크샵 아이디어를 몇개 정리하여 선생님께 메일로 보냈다. 이번에도 ‘얘는 또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라고 하시겠지만, 그래도 전하는 게 아닌 것보단 낫지 않을까..
  13. 그러다 세스고딘의 책을 읽었다 <This is strategy> 라는 최신작인데, 그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비즈니스든 프로젝트이든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취해야할 전략화에 대한 소고를 틈틈이 모아 낸 듯 하다. 기대감이 없이 들었는데… 이런, 내 생각과 큰 다름이 없어서, 그리고 그걸 정말 정리된 글로는 지독히도 못풀어내고 있어서 반가웠다. 아마 유쌤이 읽으셨다면 ‘이사람은 뭔얘기를 하는 거야’라고 하실 내용이었다.
  14. 그리고 그 책이 나의 책임감을 깨웠다. 나라는 배를 밀고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시간을 들여 쌓아갈 시스템, 노드에 대한 이해, 이해관계와 상호작용, 인센티브와 트레이드오프.. 어떤 친교와 교류로 말미암아 형성될 나의 옆집들.. 가격이 주는 신호, 시간이라는 자산의 유한성, 전략없이 매일 업무하는 건 그저 매일의 작은 전투를 지기 위해서 혹은 이겼으나 아무런 기여도 못하는 흘러간 토큰이라는 점.. 내가 열심히 일하던 시절과 한참 내 생각과만 놀던 시절을 통해 발견했던 많은 배움을 그의 글들에서 재발견했다. 내 일기장인가?
  15. 전략적으로 생각해보자, 나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페이즈는 무엇인가? 누구와 구조를 쌓아서 얽힌 상태로서 위로 띄워질 것인가.
  16. 동시에 하고 싶은 걸 무시하고 뒤로 보내지 말자, 위시 리스트와 같은 오래된 소망을 실현하고, 목록을 비우는 동안 전략화를 하자…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이제 집중해서 판을 어떻게 짤지, 혹은 어떤 판을 발굴하고 창출하고 싶은지, 그 판을 짜내기 위한 방법이나 단계적 액션은 무엇일지, 누구와 관계를 맺고 무엇을 제공할지.. 그런 생각을 해야겠지.
    • 회사가 아니라 나라는 에셋을 위해서.
    • 나는 누구이고 싶은지를 정의하지 않더라도, 아직은.
    •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에는 (사실 글로 명시되지는 않으나) 직관적으로 아직 발굴되지 않은 기회를 향하는 자세가 묻어있다. 어쩌면 모두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을 밖으로 꺼내어 써서 남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 이제는 다시 시작해야지.

우선은 여기까지.

제발 내일도 다시 쓰자.

아래는 작년 7월 중순, 파이가 세상을 떠난 뒤로 내가 글쓰기를 놓은 흔적이다.

나는 뮤트된 세계에서 충실히 애도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전혀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로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

이제 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할 수 있을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새로운 공간을 작업실이라는 정체성에서 자꾸 장사로 나아가려고 해서.. 그게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해낼지가 숙제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적은지 나도 헷갈린다.

정리가 안되어 있다.

안되어 있는 걸 해결하기 위해 꺼낸 카드는 수영이다.

매일 아침 수영을 가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적당한 관심과 훈련용 드릴을 듬뿍 받는다 (뺑뺑이 안시키고 드릴 중심으로 해주셔서 감사한 분. 연습할 거리를 주신다)

그리고 그 아침 수영을 가기 전에 글 쓸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걸 지금 하고 있다. 노트 세개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 아침, 낮, 밤의 노트. 그리고 그 습관을 다시 찾으면, 이 작업용 글을 계속 쓸 수 있겠지 희망하며.

도무지 쓰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나에게.. 수영을 시작으로 시간을 구획하고, 장소를 설정한다. 이 작업실을 진작에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집에서만 하고 그 집에서만 파이의 부재를 견뎌내야 했다면 나는 정말 어디까지 떨어졌을지 모르겠다. 시간을 버티는 과정에 여러 사람과의 얽힘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배의 굵은 밧줄처럼 나를 과히 흐트러지지는 않도록 붙잡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마침내 내가 ‘화났고’, ‘조급한 마음’을 가졌다.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가진 시간 등의 자산을 전혀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었나? 그 길을 위해서 단 하나의 말이라도 제대로 놓고 있는가?

그저 그렇게 살아있는 시늉이나 하려고 오늘까지 스스로를 데려온 게 아니다.

시늉하며 살바에는 종료가 낫다.

살거면 제대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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