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 연지 만 3개월이 되어간다.
매상/매출 고민을 어제오늘 사이에 진지하게 했다.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고 쓰니 무슨 결론이 난 듯 들린다.
전혀 아니고, 그 전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 고민을 하였냐면, 그동안 지출이 컸던 부분이 보였기 때문도 있고, 처음 시작할 때 3개월 가운영이라고 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운영시간 고민
- 제약:
- 하루종일 열기 싫었다. 오전이든 오후든 개인시간을 갖고 싶었다.
- 예전에 주 4회 근무할 때 건강이 괜찮았다. 즉 주 32-40시간 정도로 한정해보자.
- 정해놓고 3일을 쉬거나, 쪼개서 매일 운영시간을 작게 하는 것도 있을 듯.
- 한동안은 학교 일정 때문에 어차피 나올 생각이라, 매일 오전 시간을 내 몫으로 떼어놓기로 생각
- 그럼 몇시에 운영을 시작하는 게 좋을까? 수영을 오전에 가기 때문에 아주 일찍은 무리이다
- 가벼운 분석… 전혀 분석적이지 않은 분석. 질문은 “무슨요일, 몇시대에는 가게문을 열어놓는 게 좋을까?” 또는 “언제 쉬는 게 상대적으로 손해가 적을까?”

- 아오 데이터 너무 대충봐서 결론내기 힘들지만 일단 결정하자.
- 월목금토 11시 열어놓기
- 월 11 → 18
- 화 14 → 18 (왜인지 11-13 적음..)
- 수 13 → 20 (11-12시 사람 적음 그런데 13시는 또 많이 있음.. 아 혹시 내가 11-13을 닫아놓았던 건 아닌가?… 모르게따~)
- 목 11 → 20 (왜인지 11 많음… 하지만 낮중에는 미미~ 하네.. 그러나 어차피 저녁에 학교가야함.. 얼른와서 열어놓자)
- 금 11 → 17
- 토 11 → 17
- 일 14 → 17
분석적이고 싶었는데, 전혀.. 분석적일 수 없었다
사실 오전 수영 끝내구 집에 들러서 밥을 먹고 가는 걸 하고 싶었다..
집 냄새가 좋아서…
그런데 자꾸 시간당 1개 전환만 가능하다는 관점을 갖게 되고, 오전에 몰리는 걸 생각하면 집에 들리지 않고 바로 수영장에서 여기로 오는 걸 생각하게 된다. 근데 이렇게 하면 집의 낮을 느끼는 게 너무 짧아지고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집에서 시간을 여유있게 쉬는 게 내게 너무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여기에 오면 대강 먹게 되고, 자꾸 국수 같은 거나 대강 끓여먹는다.. 내 속에 내가 뭘 넣는건지.
집에서 요리를 하고, 잘 차려 먹고 나와보고 싶다. (근데 그러면 예약이 적을라나.. 적을 수도..)
운영시간 12월.. 안
- 일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상정하고 수요에 맞춰서 ‘욕심껏’ 운영시간을 잡는 관점이 하나 있고.. (11.5 시에 시작은 하지만 그 앞에 운동을 가고, 그 뒤로는 학교를 간다) — 주간 총 영업시간 49시간

2. 일하는 사람이 나이고, 나는 한번에 한 곳에 밖에 존재할 수 없고, ‘나’의 생활적 만족감을 극대화하거나 어느정도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운영시간을 잡는 관점이 하나 있다. (저녁에 학교에 오래 가는 날에는 오후에 영업을 시작하는 안) — 주간 총 영업시간 42시간

그리고 이 두가지 사이의 절충안이 있을 것이다….
둘 다 운영시간이 주당 40시간을 넘긴다. (위에서 32-40시간을 목표로 하고 싶었다..)
지금 이 생각들 사이에서 결론을 못잡는 것은 지금 몸살이 와서 생각이 잘 전개되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고…
음… 생각하기 싫고 그냥 집에가서 누워있고 싶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일단 쉬고 싶어서..
학교 다니는 동안은 집에 도착하면 23시가 넘기기 일쑤라서 (수업이 있거나 작업실에서 과제를 마저 하고 가므로) 실제로 잠에 드는 시간이 자꾸 늦어지는데.. 이게 반복되고 피곤이 누적되면서 지금 좀 힘든 상태일까?
지금은 무슨 결정을 하기에 좋지는 않다. 숨이 막혀서.. 생각이 길지 못해.. 일단 집에가서 좀 눕자…
이제 겨울바람에 자전거 타는 거 하지 말자.. 어제 자전거타고 왔더니 온몸이 아프다..
(+과연 어제 자전거를 타서 일지, 또는 최근에 과거의 업을 상기하도록 하는 대화가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돈을 벌어 기쁘고 돈을 잃어 슬픈 그 감정, 돈을 벌 그 기대로 부풀어있고 그것을 목적으로 사람을 수단으로 드라이브하는.. 그런 현상이 당연시되는 환경에 살던 때가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던 시절의 내가 생각이 났어서가 아닌가, 이 글을 모두 다 쓴 다음에 추정하여 여기에 덧붙여놔본다. 나는 사람에 질렸던 게 아니라 실체없음, 그 부의 탐욕, 사람을 수단으로 보고 자신이 일굴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활동에 질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글이 엉망이다.
학기가 정리되어야 뭐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겠다.
학교 다니는 동안은 건강 조심하자.
그리고 돈, 특히 투기적 투자얘기에서는 되도록 발을 빼고 끼지 않도록 조심하자.
나는 돈이나 숫자가 커지면 커지는대로 생각을 확장하는 경향이 있다. 바운더리를 두지 않고 거기에 대해 잘 따라가준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필요에 의해 사고방식을 쉽게 바꾸고, 거기에 맞춰서 내 생각의 규모를 확장하여 논리를 구축해가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현재는 아직까지는 내 실험에 집중하고 싶고, 이 프로젝트 안에서 운신하고 싶다. 예전 일하던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내 생각이 너무 작은 규모를 좇기 때문에 하찮아 보일 수 있다.
규모의 논리와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게 내 핵심이다.
확장성을 중시하는 생각이 있을 수 있고, 그게 맞는 비즈니스가 있다.
숫자로 환산해서 그것의 레버리지를 말하는 게 맞는 비즈니스가 있다. 그 비즈니스 충분히 경험했고, 나는 그 논리에서 한동안은 빠져있고 싶다. 지금의 나는 내실을 생각하고, 실제로 그 활동 안에서 얻는 사람들의 결을 들여다보고 싶다. 이 시간단위당 형성될 소통의 밀도에 더 집중하고 싶다. 상호작용의 밀도.
규모와 부피의 거대함을 크게 평가하는 경우에 지금 나의 이 생각은 쓸데없는, 아주 작은 (일본어로 치이사이한.. 정말 치이사이한) 거의 벌레 수준의 작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보여도 된다. 그렇게 보여도 상관 없다.
지금의 나는 이게 중요하다. 이 결이, 사람들 간의 다른 결이 만나서 그 시간에 아주 가까워지는.. 그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특정시간동안은 서로에게 집중하여 그 차이를 밀대로 밀어서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그 경험을 제공하는 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이다.
자꾸 아주 큰 돈의 액수가 들어가는 사업을 얘기하거나, 투자가 아니라 투기성의 대화를 하는 경우엔 그 직후부터 한동안 몸이 아프다. 개인이 가진 시간의 가치보다 돈의 얘기를 하는 경우, 그리고 돈, 규모의 돈, 돈의 규모, 큰 돈, 큰 규모의 돈. 그것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그것만이 최고의 가치를 이루는 것처럼, 그런 비즈니스가 최선인 것처럼 여기는 그 대화가 나를 아프게한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아프다.
아프고 슬프고 열이나고 속이 뒤집어진다. 속이 불편하다. 어딘가 불안하다. 도망갈데도 딱히 없고 도망칠 위협이나 대상도 없는데 자꾸 뭔가를 ‘그만하고’ 싶어진다. 누군가들의 거대한, 탐욕과 물욕, 상대를 욕망실현의 수단으로 보는 경우, 욕망을 목격하거나 그 돈과 성공에 대한 간절함과 조급함에 가까이 있다보면 내가 거기서 얼른 도망쳐야 한다는 신호를 속에서 느낀다.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속이 인생이 가치가 빈곤한 것처럼 여기도록, 빈 강정 상태로 만들었던 그동안의 경험들.. 내 시간을 속이 빈 강정처럼 만든 그동안의 업무들. 회사들, 그 회사를 만드는 논리들.. 돈을 좇던 사람들. 돈의 환상을 좇던 사람들. 그것을 좇아 투기하고 싶어하던 그 욕망들. 욕심들. 투자가 아니라 투기하며 근거없이 1이 100이 되기를 바라던 그 욕망들. 그 욕망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 욕망, 돈을 벌고는 싶은데 어떻게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갑자기 로켓이 쏘아올려지길 바라며 돈을 태우는 그 행동들, 그런 욕망을 담은 돈이 탄 배가 향하는 곳은 정체없는 혹은 정체모를 어딘가였다. 그리고 그 돈이 비슷하게 정체모를 바위에 부딪혀 엎어지자 사람들은 울부짖고 남탓을 하였다. 그것은 투기가 남기는 아픔이다. 투기.. 투기가 만드는 절망.
직전 회사는 그리고 그 인더스트리는 투기를 먹고 자라는 블랙홀.
욕망, 그냥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그 밑도 끝도 없는 욕망.
항상 반쯤은 좌절되고 있는, 충족되기 어려운 욕망.
그 검은 석유같은 그것들.
나는 그것에 질렸다.
그 욕망을 가득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들, 아니 마음이 욕망과 그를 빨리 달서왜야 한다는 압박에 눌린 사람의 삶은 보기에 매우 조급하다. 자신의 행불행을 중심으로 행동한다, 넓게 멀리 보는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에 대한 예의, 너른 폭의 배려, 친절함,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같은 건 점차 사라진다. 자기 중심의 시각… 그 방식이 어떻든 내가 버는 돈이 큰 게 더 중요한 사람들. 숙주처럼 욕망이 그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세상을 보는 시각을 조종하고, 더 강렬하게 사람들의 층위를 산술적인 팩터 중심으로 나누는 걸 목격한다. 숫자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근데 그 돈은 사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한다, 마치 확실할 것처럼 보이도록, 약간씩의 거짓부렁을, 잘못된 분석의 결과를, 어떤 진실 주변으로 둘둘 말아서 나온 얘기이곤 했다. 정보, 망할 정보. 정보가 이동되는 채널, 채널을 가진 사람들, 채널의 파이프 굵기, 퍼진 정도…. 신뢰라고 말은 하지만 신뢰가 아니라 확신을 줄 수 있는 몇가지의 언어체계들, 문법들, 확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겁박하는 수준의 논리가 빠진 두려움을 자극하는 말들. 그것들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고통받는 어떤 자아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그 자아들은 그런 망할 뉴스들 정보들 부풀려진 공포들 안에서 빠르게 어떤 의사결정을 한다. 눈가린채 한다. 눈가린채 한 그 의사결정은, 블랙홀이 된다. 되었다.
그래서 나는 돈 얘기, 비트코인 얘기가 싫고, 투기성 얘기, 디파이 얘기가 싫다.
아직까지는 좀더 내실을 가지는 내 사업, 내 사진 프로젝트를 더 중시하고 싶다. 돈을 얘기하더라도 실질적 분석이 가능하고 투기성이 아닌 것을 바라보고 싶다. 이건 경제학을 배우는 현재의 상황과 좀더 맞기 때문도 있다. 있겠지만, 실은 잘못해도 내몫의 잘못이고, 망해도 나만 망하지 그 옆에 있는 누군가를 쓸어가지 않는다. 슬픔의 규모는 나의 그릇 안에서 벌어지지만 혹시라도 잘될 경우,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거나, 그런 기억을 형성하는 데에 이바지 하거나… 한다면 나의 그릇 이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게 오늘의 내 계산법인 것 같다. 숏을 친다고 해도 리밋이 걸려있다는 거지. 나라는 리밋. 근데 롱으로 가면 무한같은 뭐 그런.. 그렇게 무한이 되려면 내가 하는 일은 1:1의 시간과 시간이 얽히는 일이면 안된다, 어떤 책이나 활동이나 교보재 형태거나 무언가 복제가능하거나 복제된 것이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활용해 그것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사진관 일은 1:1의 형태이다, 이게 시작점이다.)
그래서 고민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지금의 시간을 활용해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왜, 어떻게 그것이 사람들의 생의 한 중간의 시간을 활용해 한번쯤은 접하고, 접한 뒤에 또 시간을 써서 응용할만한 가치를 지니는가? 그 설계와 수행.. 수행을 위한 단계적 접근안, 실제의 실행. 그것이 지금 해야할 일이다.
스타트업 등에서 사업화 하면서 큰 규모의 성장을 바라고, 그런 돈을 얘기하는 게 일반적인 문법이지만 지금의 나, 오늘의 나는 그런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런 규모를 바라는 사람들의 논리였으면 한다. 적어도 오늘의 나는 그렇다. 내실, 내 몫의 콘텐츠, 내가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에 좀더 초점을 맞춰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책으로 인풋과 아웃풋을 지금은 한정해서 밀도있게 시간을 꾸려가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자.
다시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는, 시간에 대해 구두쇠같이 구는 내가 머리를 들었다. 내가 갖는 이 시간은, 이 시간에 대해 최대 기대수익을 기회비용으로 한다. 그리고 그 기대수익- 즉 돈으로 환산한 내 시간의 가치-은 이 사진관에서 시간당 버는 돈이 아니라 그 전 근로구조에서의 업사이드를 업고 있을 때의 값이다. 접근 가능했던 기회를 희생하여, 즉 기회비용으로 삼아서 선택한 지금의 삶과 환경. 이렇게 하찮을 정도의 돈의 규모를 가지는 사업을 시작했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나는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보고 한 사람에 대해 집중할 수 있고 그와 밀도있는 소통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원한다면, 의도한다면, 노력한다면, 설계한다면, 의지를 갖는다면, 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그 이상을 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절대적으로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여야 한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그 외에 것에 신경을 쓰기 싫다. 그래서 지금은 내 주변을 단정하게, 지금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얼라인된 사람들, 생각들, 프로젝트들.. 거기에 되도록 한정한다.
이런 내가 나타나면, 종종 마음이 급할 때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내 생산성은 갑자기 배가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조심하자. 하지만 이런 상태를 잘 이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