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고
환대하기 위한 사전정돈에 대해.
다시 내 삶의 시간을 쪼개어 쓸 때가 되었다.
다시 30분 단위의 해냄 체크차트를 만들었다.
다시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할일의 목록을 썼다.
다시 나아갈 수 있으려면 정돈을 해야.
왔다 갔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새 일과 새 사람들이 들어와 앉을 자리가 깨끗하길 바란다.
여기 들어가도 될까요 똑똑 했을 때 네, 준비해두었어요.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상관 없다.
그 시간대가 언제이든 나와 엮였으며 엮여있고 엮일 사람들이 내 섬세함을 넣어 작게라도 준비해놓은 그 환대의 결을 느끼고 그로부터 자신의 온전함과 귀중함, 그리고 오늘의 안위를 확인하길 바란다.
사진관에 대해.
나의 사진관을 내가 그렇게 작게 준비할 때엔 상황이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정도도 괜찮다 그리고 그 편이 나은 기회를 만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작고, 좁아서 사람들이 긴장하지 않고 마치 구옥에 사는 낡은 친구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그들의 피부와 온 얼굴과 몸, 그 주변의 공기를 따라 마음까지 일으키길 바랐다.
이 곳에 와서 이 하찮음을 통해 딛고 일어나세요. 그리고 제가 당신에게 관심을 들이고 눈을 집중할테니,스스로 ‘보이는 상태’인 그 존재를 확인하고, 어딘가 차오른 상태 그대로 밖으로 나아가세요.
그러고 싶었다.
우리는 눈길을, 네가 너로써 괜찮다는 눈길을, 아마 성장한 어느 시점 이후로는 제대로 받은 적이 드물다. 사랑을 잘 했다면 거기서 찾겠지만, 그 사랑이 당연해진 다음에는 또 새로운 눈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여러 인지에 뛰어난 사람이라면 매일 매일 가족의 사랑 안에서 그로 충분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린 익숙해지면 그 존재를 페이드아웃 시키므로, 순식간에 인지하려면 좀 새로운 사람으로부터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 관심이 생활에 닿은 사랑을 눌러내고 이기는 대형의 무엇은 아니다.)
눈길이 닿는 건 식물에게 물을 대는 것처럼, 마치 내 사진관의 자귀 식물에 관수를 하고나면 그가 얼마나 푸릇한지, 생생하다. 좋아하는 게 보인다.
내가 눈길을 정성들여 주고, 충실하게 내어주는 일은 반기는 부분이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당신들의 관계에서 오는 그 생기를 내가 붙잡아 여기에 담아두고, 전달할 수 있다니, 이런 기회가 내게 왔다니.
충실하게 해내겠다. 시간이 주어졌다는 부분에서 감격한다.
사람들은 사진관이 작고 허름한 부분에서 아마 꽤 실망할 수 있다. 이런 데에서 사진을 찍는다구?
하지만 사진은 프레임화의 결과이고, 내 눈에서 지금 내 공간의 가능성은 그 프레임을 자르는 부분이 하나, 작고 하얘서 되려 빛의 확신이 쉬운 그 구조가 또 하나, 마지막으로 하찮음이 주는 편안함 그게 하나.
마음의 빗장을 해제시켜놓는 공간.
이런데라서 오히려 편안하네, 뭐…
그렇게.
그런 설계.
그런 기대.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좋은 일들은, 이 설계의 진심을 느낀 사람들로부터 올테다.
또 다른 설계의 기회: 세련된 공간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
많은 말을 아직은 아끼되, 지금껏 ‘가족사진’과 ‘모녀사진’에 대한, 통상적 시장이 원하는 그 이상의 환경, 다른 형태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제안과 논의를 시작했다.
불씨가 꺼지기 전에 호호 입김을 불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자.
아이디어가 발아할 수 있도록 들여다보자.
좀 다른 맥락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내게 문을 열었다는 그 점에 대해 감사합니다.
나 바깥의 사람들과 만나길 바랐던 건, 전혀 연고가 없는 자들이 만나 일으키는 다양성의 믹스, 그 상호작용이 낳는 생동감이 결국 나의 생을 (즐거이 그리고 의미있게) 밀고가며 지속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연료가 될 것 같아서.
나의 일생을 꿰뚫는 사진활동, 그 작업은 사람들과 만나는 통로로서 내 삶에 바람을 밀어 넣어준다. 구멍 사이로 나드는 바람에는 스쳐든 이야기와 향이 함께한다.
같은 방향성이나 결이 다른 일을 차근히 그리고 섬세하게 도모해보자.
오늘의 사진
ㅇㅈ언니가 사진관에 방문하여 프리셋 만드는 걸 배웠다. 그리고 바로 이웃에 있는 ㅇㅈ언니의 친구가 하는 식물집엘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