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2024년 중반-늦여름의 회고 시도. 힘들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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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이 글을 통해 저나 햇빛사진관을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배경을 설명을 하자면 이 공간을 혼자 준비하던 2024년도 6월말-8월말 사이, 그 중간께인 7월에 10년을 함께했던 고양이가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각과 아픔, 생활의 변화를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고 글로도 쓰지 못한 채 10월 초까지 체한 듯 있다가, 이제 날씨가 좀 나아지고 공간에도 어느정도 적응을 하고, 또 내 사업도 이제 본격적으로 해야하겠고, 작업도 다시 시작해야 하겠어서 여기 이 글에 그간 못했던 말을 마구 적어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루 이틀 며칠을 그러고 나면 다시 제 트랙을 찾아서 사진작업과 사업, 읽기와 공부, 쓰기를 할 수 있을텐덴데, 지금은 그 전단계, 쓰레기 분리수거라고 봐주세요.

내가 뭘 하고 싶고, 하고자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예전처럼 명료하게 보고 나아가려면, 아픔을 마주하고 약간은 엉망인 상태이지만 백주 아래에 부끄러움과 함께 쏟아내고 처리하는 앞의 이 단계가 제게는 필요합니다.

내 작업을 다시 해야하므로. 내 생활의 아픔이 내 작업을 막을 수 없도록, 오히려 그 과정이 작업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므로.


오랜만에 글을 쓰는 만큼 고민을 빠르게 포착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냥 줄글을 쓰면서 정리하는 수밖에.. 따라 읽어낼 사람들에게 미리 미안하다. 아래의 내용은 대체로 뭘 잘못했고, 안했고, 건강이 뭐가 안좋고, 뭐가 힘들고, 어렵고.. 이런 어두운 얘기이기 때문에 안읽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매일 쓰는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중물을 넣는 목적으로 글을 우선 뽑아낸다. 되도록 지우지 않고 그저 쓴 다음에 약간씩의 위치를 바꿀 수는 있겠지만..

이 워크샵이랄까 활동이랄까.. 방법은 간단하게도 시간을 정하거나 정하지 않은채 집중할 수 있는만큼 긴 시간동안 키보드 타이핑을 한다. 그렇게 쓰는 말들은 어쨌든 내 머릿속에서 나온다. 머릿속에 떠다니거나 어딘가에 오래 있었고 박혀서 아말감 뭉터기처럼 변해버린 어떤 생각을 머리 밖으로 끄집어내며 머리를 비우는 효과가 있다. 특히 지난 네달은 10년 간의 동거묘를 병으로 잃었던 그 상실의 사건과 부재한 현재 생활을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새로 공간을 만들고 설치하며 생산성을 가늠하는 시간이었다. 또 주변에서 위협하듯 으름장을 놓듯 던졌던 불안한 미래의 시나리오 등과 내 속의 긍정적인 면이 전쟁을 벌이며 엎치락 뒤치락 대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혹은 내가 휩쓸리더라도 나로서 계속 살아야 하는 그 숙제를 의식하며 지금을 지나가기 위해 애를 쓴 건지 기를 쓴건지 또는 공을 들인 건지. 그래도 그 시간의 기록이 있었음 좀 나았을까. 물론 노력하여 매일 무엇을 했고 어땠고, 이런 기록이야 집의 일기장에 있지만, 그마저도 9월 말이 되면서는 정말 힘들어했다. 그래서 매우 오랜만에 며칠씩 안 쓰면서 빈칸이 점점 많아졌다. 더불어 발생한 변화라면 인스타그램 앱으로 쇼츠를 보거나, 밤에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잠을 잘 자지 않는 선택을 했단 점이랄까.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리고 질문은 점차 뭉툭해졌다. 질문을 하지 않는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땡깡을 부리는 게 편할 수도 있는걸까? 앞으로 일어날 많은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 뿐이라서, 바위가 거기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도, 어떻게 부셔서 옮길지 찾는 것도 전부 내 몫이라서, 그게 부담스러웠던 걸까? 오늘 아침에 반년 만에 가스점검 담당자분이 집에 들르셨다. 아마 파이와 내가 같이 사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많이 본 사람이 있다면 이 분이 아닐까 싶은데, 고양이를기대하고 오신 그 분이 나 혼자 우두커니 서서 안녕하세요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양이가 죽었어요, 라고 부러 맨살에 닿았을 때에 더 텁텁한 단어를 쓰는 나 스스로도, 건조하다고 생각했다. 내 집에서 고양이 죽었어요, 라고 말하는 건 아마 처음이었겠지. 어쩌면 내 집에서 누군가와 대화한 것도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파이가 간 뒤로 몇 달만의 일이었다. 십수주 만의 일이었지. 그리고 눈물은 또 몇 주만에 나기 시작했다. 병이었는데요, 사람이랑 비슷하게 몇달 간 투병하다가 가기 직전 한달 간은 꽤 괜찮았고 특히 직전의 일주일은 이것저것 잘먹다가, 떠나기 하루 전 이틀 전에는 밥을 먹기 싫다고 저리 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런 말을 했다. 점검 담당자분은 종이컵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는데 따뜻한 물을 좀 마시고 싶다고. 그래서 마침 내가 차를 끓이려고 물을 뎁혀놓은 걸 작은 머그컵에 찬물을 적당히 섞어 마시기 좋은 상태로 드렸다. 어울리는 짙은 색의 루즈를 바른 50대의 여성은 덩그러니 서서 힘들어하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하며, 파이가 그렇게 즐겨보던 우리집 부엌 바깥의 소나무와 전나무 풍경을 구경했다. 우리는 조용하게 물을 마셨다. 따뜻한 물, 그 몇모금을 그 집에서 어떤 사람과 마시며 그야말로 조용히 추억했다. 몇달만의 일이었을까. 그 집에서 누군가와 파이를 추억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앞으로 아마 없을 일이다.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내가 클 때에 나의 조부모는 베란다 통창을 통해 건너편 큰 산을 지켜볼 수 있는 평촌의 한 아파트 20층의 집에서 조용하게 살았다. 바깥과 교류를 그리 활동적으로 하지 않은채 고요하게 생활을 했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조부모가 이사간 다음 아파트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전까지 모든 간병을 해내던, 스스로도 80대의 노인이었던 할머니는 애증으로 돌보던 대상이 사라지자 어떻게 해야할지 아마 몰랐던 것 같다. 고요하게 둘만이 지켜내던 삶에서, 그것이 대단한 다정함은 아니었지만, 그 관계가 만들어낸 애착과 유대감은 한쪽이 죽자 다른 한쪽에만 끈이 떨어진 채 남았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도 속도 단단하고 누군가에게 크게 의지하지 않는 편인 할머니는 어느정도 잘 갈무리 했던 것 같지만, 허망한 속이 뭐 그렇게 잘 채워졌을까? 평소에 주변과 교류가 많았다면 모를까, 아마 그 자리에는 외로움이 공기 중 질소의 부피만큼이나 더 많이 더 심하게 더 짙은 농도로 들어갔을 것이다. 점차 짙어지는 외로움의 옆에는 그리움이 따라오고, 그리움은 속을 상하게 한다, 지치게 한다, 흩어지게 하고 스러지게 한다. 그것을 견뎌내는 과정에는 삶의 배움이 있기라도 한 걸까.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80대 후반, 90대 초반의 노인이었고, 배워서 써먹기에는 이미 지친 몸, 배우다 앓고 곯아 스스로도 병자가 되었다.

나는 젊다, 아직은. 하지만 나 스스로도 이 보냄을 겪으며 마음도 몸도 좀처럼 그 전의 좋은 상태를 찾는 것이 어렵다. 어쨌든 지난 4개월동안 나는 점차 나쁜 컨디션으로 향했다. 염증이 다시 나타났고, 체력도 떨어졌으며, 유들한 다정함은 걍팍한 마음의 건조함으로 종종 나타났고, 산책은 더 적게, 햇빛을 받는 일도 더 적게, 집을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론가 숨고, 어디 가있을 곳은 이제 집이 아니었다. 집이 갈 곳이 아니라니. 그렇게 나는 여름을 보냈다. 징글징글한 2024년의 여름이었다. 그래도 이 때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있기도 했다. 왜냐하면 바빠서, 그리고 변화의 시기라서, 집에서 도망치듯 나오더라도 갈 곳이 있게 되었을 그 때라서. 한편으로는, 어떤 후회를 하더라도 시간을 메꿔서 생각을 멈출, 그런 숙제가 있어서.

만약 아무런 활동도 변화도 준비하고 있지 않은 때에 파이를 보냈다면,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웠을까? 아마 비행기를 타고 어디 다른 나라로 가서 그냥 숨듯 거기서 숨을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더 나았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있는 나든, 여기 작업실에 앉아 가을 햇빛과 바람이 채우는 공간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오도도 두드리는 나든, 어쨌든 겪어내야만 하는 건 다르지 않다. 상실을 뚫어내는 데에는 좌절이 계기이고 사랑이 동력이다. 사랑, 누구에 대한 사랑? 나를 떠난 그들에 대한, 또 그리고 나라는 내 이 생각과 움직임 삶의 주체, 내가 아니고서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면, 그저 이걸 수동적으로 흘려보내서는 경각심. 하지만 도무지 어떻게 갈무리를 해내야할지 혼란스러운 이 상태.

그래서 나는 울며 쓴다. 쓰며 울고, 글을 뽑아내며 눈물을 분출한다. 밖으로, 밖으로. 외피를 통해 흐르는 많은 것들은 내 머릿속의 쓰레기장의 규모를 축소한다. 짐을 빼고 나면 복잡한 마음의 멍과 그 염증을 빛 아래에 드러내놓는다. 그리고 상처가 흉이 되어서, 흉이 되더라도, 흉이었나 싶게 흐려질까 모르겠지만, 쨌든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 사고의 결과를.. 나와 분리하여, 어느정도 저 허공에 띄운채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지금이라고 그걸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날에는 이런 슬픔이 나를 덮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배가 고픈지도 모른다. 애정을 주고 받을 대상이 사라진 생활이 길어지며 이런 일이 생긴지도 모른다.

6월 이후를 반성하자면, 수영 / 자전거 / 책읽기 / 일기쓰기 / 사진작업 / 피아노 같은 내 생활을 조절해주는 쉴거리를 좋은 품질에서 수행하지 않았다. 요리도 더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공사가 진행될수록 어느시점이 되자 점심을 집에서 키운 발효종으로 반죽해 직접 만드는 빵과 요거트로 먹고 저녁을 대강 먹는둥 마는둥 하던 기존의 내 선호 대신 바깥의 짠음식을 사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분기가 지나자 머리가 쓰레기장이라도 된듯, 뭉터기의 어떤 생각들은 있지만 그것에서 견고하거나 바늘 같은 질문, 혹은 생각을 잘 정돈한 명주실 같은 무언가를 뽑아내려 생각하니 부담스럽다. 스튜디오 공사를 시작하면서 인스타 앱을 다시 핸드폰에 설치했고,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하루에 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4시간까지 치솟았다. 이 때 몸무게가 약 59-60키로 였는데, 이 이후로 매달 1키로씩 늘었다. 생활이 엉망이 되면서 몸도 함께 부었다. 9월에는 염증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도 위도 헐었다. 9월 말에 압축적이고 짧은 시간동안 집요하게 촬영해야 하는 3일 간의 포트레이트 부트캠프 또는 고난의 시기(..) 중에는 퇴사 이후로는 처음으로 강렬한 수준의 실신 전조증상을 느꼈다.

7월에 고양이가 떠난 이후로 일기장도 집도 비었다. 일기장에 적을 생각, 단상이 없었다. 고찰하기 싫었을까? 시간을 낼 수가 없었을까? 이 때의 나는 빠르게 소진되어 가는 잔고에 살짝 부담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건 큰 일은 아니었고, 다만 체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더위가 심한 환경에서 대체로 혼자 작업실 공사 작업을 하며 스트레스를 꽤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걸 오늘 하면 내일은 나아질까?와 더불어 언제 내가 만족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멈추면 되는데, 지금이 멈출 때인지를 몰랐다. 무엇을 멈추는가? 퍼티와 페인트질, 어느정도의 하얀 벽을 필요로 하는지, 또 얼마나 해야 그 벽이 하얘지는지 모르니까. 게다가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골방을 그리 바꾸면서, 나는 고양이를 추억했다. 돌아봤다, 우리의 투병생활을. 도대체 내가 잃은 게 무엇인지, 그 땐 알 수가 없었고, 주변의 말 하나하나에 툭 눈물이 났다. 점차 집은 청소를 대강하고 아무데나 아무 물건을 놓았다, 집에서 음악을 뺐다. 버렸다, 비웠다, 건조했다. 소리도, 고양이가 쓰던 정수기를 없애면서 습기마저도 낮아졌다. 모니터도, 책도 없앴다.

8월에 스튜디오를 열면서 짐을 이쪽으로 많이 가져왔다. 집과 작업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집에선 잠을 자고 작업실에서는 생각 개발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걸까? 오늘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집에서는 요리와 생활거리를 관리하고 작업실에서는 사진이나 공부를 하는 게 용도로서 적당한 배분이 아닌가. 여튼 밤에 집에 갔을 때에 프로젝터로 무언가를 본다. 생각을 방해하고 대체로 시끄러우며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의 얘기를 하는, 그런 유튜브 영상, 그래서 그 영상을 소비하는 나에게 좋은 정보가 남을리 없어서 결국은 건강에 나쁜 영상들이다. 이 때, 꽤 떼어내고 싶은, 어쩌면 거머리 같다고 부를만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새벽 2-3시까지 밤을 새며 단호박 껍질을 까먹었다. 기이한 습관이었는데, 바짝 구운 채소의 껍질을 까먹는 것은 속도 부대끼지 않으면서 저작활동을 할 수 있어 밤을 새는 장치로 괜찮았다. 그럼 나는 왜 밤을 샜는가? 잠들기가 싫었던 것 같다. 왜 잠들기가 싫었을까? 아마 수영도 자전거도 하지 않고 스튜디오의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운동량이 부족한 것, 고양이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할 수 없이 헛헛한 것 두가지가 합쳐진 게 아닐까? 이시점에는 스튜디오의 가구(?) 배치 실험을 마구 할 때였는데, 바닥수평이 좋지 않은 위치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자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하게 나타나서 꽤 힘들어했다.

9월에는 동네 손님들과 친구들이 들러주면서 어느정도 공간에 활기가 돌았다.

배가 고프다 그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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