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진
zf로 작업실 근처에서 금요일, 토요일 중에 찍은 사진. 최근 잠 스케쥴이 엉망이 되어서 시차적응을 하듯 날짜 감각이 뭉그러졌다. 맞는지 두어번 생각한다, 헷갈린다.




오늘의 글
진지하지 않으려고.
‘사진 이야기를 써야지’ 라고 생각하면 부담이다.
일기를 적듯 하더라도 내 얘기를 남긴다고 생각하면 낫다.
안남기면 사라지는 생각, 남겨야지.
작업일지도, 일기도 작성하지 않을 때면 어제 뭐했는지 모르기에 마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에 있는 듯하다. 종종 스스로의 무딘 면에 곤혹스럽다.
최근 단상 몇가지를 적어놓는다.
- 어쩌면 일상 대체로는 좋은 일과 덜 좋은 일, 이 둘은 랜덤하게 나타나지만 결국은 그 둘의 관계란 평균에 수렴한다. 평균라인의 우상향을 바란다면 좋은 일의 빈도나 그 수준을 끌어올리는 쪽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라고 질문한다. 또 덜 좋은 일 앞에 충격을 크게 받지 않는다, 부드럽게 스쳐가도록 놔둔다. 혹은 덜 좋은 일인듯한 이벤트에서 기회를 찾는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 좋은 일로 혹은 개선사항이 될 수 있는 면을 포착하여 그 형태로 저장한다. 좋은 일로 삼는다.
- 사진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한 뒤, 회사생활을 시작하기 전의 사람들과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얘기한다. 인생으로부터 환대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 마음이 밖에 들리는 것만 같다. 도무지 숨기질 못하나. 그러니 마음으로라도 투덜대지도 흉을 보지도 말고 불평하지 말고 불편해하지 않으려 조금은 의식적으로 애를 써본다.
- 누구든 눈 앞에 찾아오면 그 상대에게 집중하자. 다시 오지 않는 시간. 대강 하지 말자고. 동일한 두번의 기회란 없었다.
- 마찬가지로 쓸 말이 생각나는 말이 많았어도, 오늘 기억할 때 쓰지 않으면 다 날아가버린다.
제목에 대해
엊그제부터 울 수 있게 되었다. 파이가 죽은 뒤로 운 적이 여러번 있지만, 파이 하나에 대한 애도라기 보다는, 어그러져버린 마음, 멍들고 허한 그 마음에 일이 잘 안풀릴 때라든가 주변에서 한두마디 하는 그게 아파서 나오는 울음이었다.
엊그제부터는 그저 자려고 누웠다가 파이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파이가 쓰던 쿠션 목베개, 내 베개 옆에 둔 그 도넛쿠션을 양손으로 잡고 꾸욱 쥔 채 눈물이 올라오고 코끝에 몰리는 피. 그 둘을 버텨내지 않고 흘러가게 두었다. 그래봐야 수 초 뒤면 나는 잠든다.
버티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가 내 잠을 방해하도록 크게 틀어놓는 일도 그만두려고 했다. 적막한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 그냥 자라.
쉽지는 않다, 습관이 된듯, 집에 들어가면 프로젝터 리모콘을 찾아서 아무 영상이나 틀어놓는다.
그 앞에 앉아서 새벽까지 버틴다.
내가 뭘 보고 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 고장났느냐고?
머리에 상이 안맺히는지도 모른다.
버티는 걸 멈추는 장치가 고장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파이 헛것을 본다
그러다 부러지나 싶을 때에 나에게 자라고 몇번을 울고 에휴 아직도 안자네 하며 먼저 내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잡던 그 뒷모습이 스쳐간다.
몇시야 시계를 본다.
세시, 네시.
곧 해가 뜨면 저 헛거가 보인 노고가 없네.
그 헛거를 위해 잠을 자러 간다.
없는 아이가 오늘도 나를 잠자리로 보냈다.
집에 있던 스피커를 떼서 작업실에 가져다 뒀다.
그래서 집에서 보는 영상은 그렇게 재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소리에 밀도라고는 하나 없어 말라빠진 나뭇가지끼리 부딪히는 소리도 이보다 낫겠다.
그 소리는 소파아래에 쭈구리고 앉아 거대한 프로젝터의 영상에 짓눌려 새벽을 지나는 내 마음이랑 비슷하다.
마음에 가뭄이 오는걸까.
그다지 버석이지는 않는데.
낮에 반짝이는 햇빛을 볼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나서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밤인지도, 집인지도 모른다.
파이는 밤에 만나는 가족이었고
집은 파이를 만나는 공간이었다
공기가 빠져나간 공간.
물기가 쪼그라든 삶.
마음이 질식하고 갈증날 수도 있나요
굳이 아니라고만은 할 수 없겠죠.
평균적으로 나는 괜찮다, 그리고 이제서야 파이가 없는 것에 방황하는 나의 상태를 알아채게 되었으니 더 나아진 상태, 더 나아지는 과정이다.
제 때 자고 제 때 일어나자. 거기서부터.
그리고 매일 글을 쓰자. 매일 사진을 찍자.
나아질 때까지.
압정에 찔렸을 때 아퍼, 라고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약 발라.
호 해.
기다려.
자꾸 청소할 때마다 파이의 흰 털이 걸리적댄다.
복제에 실패하다 시간에 잡아먹힌 손오공의 흔적 같아 버릴 수가 없다.
두번 다시 생성되지 않는 중단된 생명살이의 증거.
호호 먼지를 불어서 안쓰는 검은색 신용카드에 붙인다.
으걱거리며 우는 마음이 아니다.
매우 아무렇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한다.
지나가는 중이다.
사진관 운영에 대해
포토샵으로 머리카락 처리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지금까지 단순한 remover 툴 외에도 liquify, puppet warp, stamp 등을 복합적으로 응용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날아다니는 잔머리를 밀어넣거나 삭제하거나 모양을 바꾸거나 뽕을 넣거나 이런 건 이제.. 곧잘 한다. 그로도 안되면 카피한 다음에 마스킹 씌워서 대강 붙이는 것도.. 툴의 기본 세팅을 반복하여 익혀서 응용 끝판으로 가는 건 언제나 해냈던 일이다.
그보다는 왜, 가 훨씬 중요하다.
지금 하는 건 왜 다음에 어떻게, 단계에서 헤매지 않기 위한 연습이다.
‘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니, 월요일에는 다시 무엇을 왜, 어떻게 할지 숨을 고르며 작업일지를 써보자.
글이 너무 혼잡했다면 내 마음이 그러해서다.
파이가 떠난 뒤로 어떤 식으로든 글쓰기를 미뤘다. 여기 블로그 글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 일기도 소홀히 했다. 그 결과는 무참하게도 ‘기억이 명확하지 않음’ 단 하나로 이어질 뿐이다. 그러니 다시 쓰기로 했다.
기억하기 위해서.
한 일, 할 일, 못 한 일, 만난 사람 만나야 할 사람 못만난 사람.
좋은 일 나쁜일 더 나은 선택 중간에 접은 선택.
고민, 번복. 교훈, 그럼 다음엔 어떻게 할지의 고민.
내 시간이 어디에 쓰였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한 듯 오해한다.
나를 시간 속에서 흐트린채 버리고 오지 않기 위해서.
다시 써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