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 파이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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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파이 사진을 달라고 했는데, 나는 단번에 미묘하게 웃는 것 같은 이 사진을 떠올렸다.

내게 이 사진은 파이 심성이 두드러지는 사진. 다만 파이 눈이 파란색인데, 그게 잘 표현이 안되어서 여러번 보정했다. 검은자 눈이 두드러지면서도 파란빛깔이 어느정도 살아있고, 눈에 하이라이트가 유지되도록. 파이의 귀 핑크빛깔이 살도록. 미묘한 차이이고, 그쪽에서 띄워주는 모니터에서 표현 못할 수도 있고.

엄마는 이 사진보다 파이가 깜찍하고 발랄하고 예쁘게 나온 사진을 자꾸 선택하려고 하는데, 나는 부드럽게 파이가 웃는듯한 이 모습이 좋아서.

한참 울면서 정리하다가 사진을 달라는 말에 급히 본 것이라.. 완전히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아침에 화장터에서 보내며 알 수 있겠지.

그래도 사진을 찾으며 엄마와 얘기하며 잠시 쉴 수 있었다, 조급하지도 울적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파이를 보낸 경위는 인스타그램 @jipics 계정에 쓴 글을 옮겨 놓는다. 그 계정은 파이를 데려올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쓰다가 회사일을 내려놓은 작년 봄을 기점으로 업데이트를 멈췄다. 나와 파이의 생활이 주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파이의 떠남을 적게 되었다. 파이가 나를 통해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상호)작용하던 창구. 파이가 마지막 숨을 쉰 뒤 엄마가 오기 전까지 작성했다.


우리집 파이가 오늘 떠났어요.
평생 산 집에서 제 책상 위에서, 제 눈 앞에서, 저를 마주 보며 헤어졌어요. 너무 더워지기 전에, 노을 빛을 좀 보다가 해가 저물기 전에 갔어요.

파이는 2014년 6월 7일에 태어나 그 해 8월에 우리집으로 왔어요.
그리고 2024년 7월 12일 18시 07분에.

병원에서 집에 돌아와서 파이와 마주보며 누워 이런저런 말을 했어요. 그리고 파이의 몸을 오후께에 즐겨 눕던 위치로 옮겨 노을빛을 맞도록 했어요. 다음으로 잘 쓰던 침대에 도톰한 수건을 깔아주고 몸을 뉘었어요. 평소 파이는 제 책상 한켠에 누워 공부하고 일하는 저를 은근슬쩍 감시하거나 지켜보길 잘했어요. 그 책상의 위치에 침대를 올려놓고 제가 걸상에 앉자, 파이는 갈 준비를 하였어요. 제가 파이의 온몸을 마사지 하며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말하는 동안 파이는 십수번 숨을 몰아쉬었고 몇번의 경련 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을 마무리 하였어요.

파이는 올 2월에 림프종 진단과 수술을 했지만 전이가 심해져 5월 말부터 호스피스 차원의 처치를 받았어요. 집에서 잘 보낼 수 있도록 병원에서 많이 도와 주었어요. 마지막 한달 반동안은 두세시간에 한번씩 밥을 먹느라 서로 잠을 깨우는 사이가 되었어요. 파이는 조금씩 쇠약해졌지만, 간병인으로서의 저를 잘 받아주었어요. 그렇지만 헤어지는 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흐릿 하네요. 밥, 약, 밥, 밥, 밥, 약, 밥. 또는 그 가운데에 병원 수액 몇번.

그래도 회사를 다니지 않는 가운데 무리없이 현재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아낌없이 파이에게 처치를 해줄 수 있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쓸 수 있으려고 돈을 벌어놨는지도요. 또 회사를 그만둔 뒤로 둘이 집에서 공유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도 저는 좋았는데, 파이가 좋아했을지는 궁금하네요. 싫어했을 것 같아요, 제가 치대서.

사실 파이가 아프고 난 뒤로 떠나기 전에 한강을, 제가 좋아하는 풀밭을 한번은 보여주고 싶었는데. 혹시 싫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데려가진 못했습니다. 오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그게 마음에 떠올랐어요.

10년 동안 파이가 없었다면 저는 어떤 기억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요. 파이의 삶이 제 삶으로 제한되어서 미안합니다. 파이는 내 가족이었고,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집의 구성원이었네요. 맞이하는 역할을 맡겨서 그것도 미안합니다.

요즘 저는 서강대 근처에서 사진관 오픈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공간이 완성돠면 파이랑 처음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제가 영 손이 느렸어서. 그걸 못했어요. 다음주면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서 사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서 어젯밤에 7월은 가기에 좀 이르니 8월까지만 버텨달라고 했는데 파이는 역시나 귀가 들리지 않는 고양이라 몰랐나봐요.

파이에 대해 갈무리를 이렇게 하는 게 너무 얕지만. 오늘이 지나고 내일 화장한 뒤로 미루면 더 어떤 말도 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우선은 이렇게 남겨 놓아요.

제가 파이를 참 의지했어요. 공기와 지붕이 없어진 집에 남겨진 느낌이에요. 파이 잘 가라고 한 생각씩 모아주시면, 만약 아이에게 영혼이 있다면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 한번 생각해주세요.

조금 우스운 일일지 모르겠는데, 파이랑 마지막 인사하면서 파이야 내가 이름을 말했니? 언니 이름은 이지은이야. 나중에 봐. 라고, 첫인사를 하듯 마무리를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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