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가기 전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머릿속으로 하던 게임이 있다.
벽지, 천장, 벽돌, 보도블럭이 깨지고, 쪼개지고, 얼룩졌을 때 생기는 우연한 선을 이어가며 임의의 패턴이나 연상 그림을 머릿속으로 만드는 놀이.
초등학생 내 방 천장 코너엔 장마 누수로 생긴 얼룩이 남아있었다. 거기서 나는 비스듬하게 묘사된 여우의 얼굴을 보았다. 오랜만에 놀러온 사촌언니에게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화책 여우같아. 언니도 내가 보는 그림을 발견했다, 놀랐다. 재밌었다.
이 작업도 그의 연장선 같다.
오늘은 봄 꽃 숲의 아이들 놀이터.

만약 이 사진을 내 신체만한 사이즈로 전시공간에서 본다면, 가까이서 보면 한장의 식물과 초록이겠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개별적 사진이 숲을 이루게 된다. 왼쪽엔 그네가 오른쪽엔 노는 아이들이, 그 사이에는 정체모를 어떤 나무와 또 소나무와 벚나무, 매그놀리아의 숲이 있다.
내가 느끼기에, 눈은 한번에 다 못본다, 어디에서 어디론가 움직이며 머릿속에서 임시적으로 전체 그림을 구축한다. 뭉테기로 보고 선의 연속으로 어떤 이어짐을 따라 주욱 주욱 뻗어나간다. 이 때 전체 그림 내에서 방향성이 일관적이라면 더 연관성이 짙어진다. 빛의 방향 (즉 그림자가 유사한 방향으로 배치)이나 원근감이 살려지는 선이라든가.
작업이 매우 크기에 사람들의 눈은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움직이며, 한번에 전체 작업의 일부를 보지만 머릿속에서는 이 정보들이 모여 어떤 가상의 숲이나 이야기가 구축되고 전개된다.
조선시대 후기의 십장생도(링크0)(링크1)(링크2)나 한궁도(링크)의 병풍을 읽는 일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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