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업송
고등학생 때에 운영하던 웹사이트에는 항상 조빔의 Insensatez가 1번 배경음악으로 나오도록 설정해놨다. 그 기억이 나서. 대신 스탠 겟츠 버전으로.
잠이 부족할 때엔 물건 간수도 어렵지만 친절도 잃기 쉽다.
스스로에게 다정하고 세상에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오늘의 사진









수영시간을 9시로 바꾸면서 센터에 새로 오신 강사님을 만났고, 적응에 그분도 나도 애를 먹어서 아침마다 수영하는 게 스트레스다. 요즘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준비하며 누군가에게 무언갈 알려주는 게 얼마나 섬세하며 어려운 일인지 점차 알아가고 있어 별말은 안하고 버티듯 있다.
한편, 지난달까지 지도해주신 선생님과도 동선이 비슷해 자주 마주친다. 며칠 전 봄이 막 피어나려는지 해는 밝은데 얼굴이 시렸던 아침에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우편물 함을 살펴보는 선생님 뒷모습을 봤다.
“아홉시 수업 싫어요!”라며 볼멘소리로 우편물을 거둬 등을 돌리는 선생님에게 외쳤다. 애 같기는. 근데 선생님이 “왜 왜 왜”라며 물으셨다. 꼭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 같다. 그래서 5학년 같아진 나는 뭐가 답답한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그저 빠르게 좌우로 고개를 휘저었다. 선생님이 던진 왜의 갯수만큼 세 번.
그렇게 스쳐갔는데, 그 다음날에는 계단에서, 오늘은 수영장 옆 복도에서 양손을 꽉 쥐고 ‘화이팅화이팅화이팅’을 외쳐주신다. 틱틱대는 만큼 친절한 사람임을 이제는 안다.
…
어젯밤에 기초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Composing functions부터 Precalculus 진도 빼고, 그 다음 Calculus를 열흘동안 커버할 생각이다.
이 공부를 20년 전에 회피했던 게 기억난다. 고등학교 첫학기가 지나고 학교 연못가에서 수학선생님랑 어깨를 나란히하고 쭈그려 앉아 물고기를 보면서 얘기했다. 수학 잘 모르겠고 계속 하기 싫다고. 대학 생각이 없다고 했던가. 아무말도 안했을 수 있다. 설득해야 했겠지만 나는 싫은 마음이 먼저 들고, 이유는 나중에 알게되니까. 그냥 시간이 아깝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16살 이후로 나는 수학 공부를 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 때에 정확히 나는 수학이 싫은 게 아니었다. 그냥 익숙하지 않고 그 사고방식과 표현이 외국어보다도 낯설 뿐이었다.
나는 수학에서 다루는 여러 방식 중에, 평면 위에서 문자를 빌려 흐름이 전개될 때, 특히 param 값으로 다룰 때에는 알파벳들에 사전정의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그 함의를 알 수 없어서 매우 힘들어한다.
내게는 col x의 0:-1까지 aggregate하는 function을 정의할 때 t(s(x))보다는 total(sum(rev))이 이해가 쉽고 직관적이다. 또 머릿 속 입체공간을 하나 만들고 그 안에서 다루는 것이나 좌표위치를 찍어가며 하는 활동은 꽤 좋아한다. 공간 내외를 파악하고 ‘현재’의 구체적 상황을 여러 감각을 활용해 탐색할 때는 빠르게 머리가 휙휙 돌아간다.
그러나 수학은 대체 무슨 감각을 써서 다뤄야 할지 몰랐다. 십대 후반 그 시절엔 수학의 정체나 그 학문의 목적이나 문법의 간결성이 갖는 유니버셜한 소통의 아름다움 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생활과 마음과 머리 통틀어서 나의 어디에 그 과목의 자리를 만들고 넣어야할지 모호했다. 게다가 수학이 요구하는 정의와 식의 전개와 증명은 고통이었다. 그 일련의 행위가 무슨 의미인지, 또 누구와 무엇을 위한 증명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수행 그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즉, 수학은 그 존재의 의의부터가 내게는 블랙박스였다.
그래서 나는 이 ‘모르는 상태’를 다루는 요령이나 습관이나 전략을 모색하기 보다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제대로 묻지 않은 채 그냥 도망쳤다.
그러나 인생의 가르침에 따르면 회피는 결국 부채가 된다. (잠부족도 그렇다) 그래서 돌고 돌아 다 처리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 그 때다.
영국에서 자연주의 교육으로 유명한 썸머힐 스쿨에서는 애들을 산에 풀어놓는다. 그리고 궁금증을 찾으면(생기면) 아이가 교실로 와서 선생님에게 질문하고, 자신의 조사연구와 공부를 진행한다.
나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아직까지 내게 경제학(영역의 책)은 대체로 사회 공동체의 안녕을 추구하는 듯 읽힌다. 어떤 어벤저스 활동에 준하는 사명감이 있는지도. 그래서 사회의 상호작용과 매개의 움직임을 반발짝 떨어져 관찰하고 구조화하고 패턴을 찾고 변화방향성을 예측하고 우리 안에서의 의미를 논한다.
그런데 종종 이 화자들의 글을 대하다보면… 마음은 선하며 머리는 똑똑하고 시선은 다정한데, 막상 그들의 메시지가 글의 옷을 입자 그 소통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나는 말한다, 우리의 안녕을 위해, 나의 언어로.” 상태이다. 그래서 경제학의 연구를 볼 때면 약간의 귀여움과 애정 같은 무언가를 느낀다. 그들의 노력으로 얻은 관찰기를 읽기 위해, (내 언어로 말해주지는 않을테니) 그들의 프레임워크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공부하는 중이다. 앞서 공부한 사람들이 전개한 생각과 발견을 걸거침 없이 전달 받아 흡수하고 알고 싶다. 무슨 생각을 했어? 뭘 느꼈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어? 이는 그들이 사용한 언어를 알고,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있어야 더 쉬워질 작업이다.
영화 콘텍트(arrival)에서 외계생명체가 구사하는 언어의 철학을 이해하자 인간은 그들의 생각을 포착하고 나아가 그들의 시각을 사용해 다시 자신의 삶을 해석할 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수학을 통해 경제학을 이루는 수많은 시각을 배우고자 한다. 목적과 기능에 소망이 담기자 수학은 자기 자리를 클레임 했다. 수학은 머릿속 [언어]와 [상호작용] 카테고리에 자리를 얻었다.
아무래도 수영쌤이 외쳐주신 화이팅화이팅화이팅은 수영대신 수학에 써먹고, 왜 지금의 아홉시 수업이 싫은 지는 이 시기가 지나서 알게되면 이해해보자.
그러니 우선은 화이팅화이팅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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