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식물과 초록 (32): 23년 가을 빛 닿은 서울 / 제목 짓기나 이름 붙이기의 어려움과 의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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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업송

줄리앙 레이지의 새 앨범 스픽 투 미에 수록되어 있는 티뷰론. 스페인어로 상어를 뜻한단다, 그러나 그의 연주에 어흥(?) 상어는 없다. 그는 미국인이니 캘리포니아 도시 티뷰론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역시 제목 짓는 것은 아주 어렵구나, 듣는 나는 이 제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10분정도 고민했다. 음악가들이 코드명에 기대거나 무제로 남겨놓는 일은 이제 드물다. 시인은 심상을 제목부터 본문까지 하나의 몸체로 여겨 연출한다. 영화가 무제로 개봉하는 일도, 책이 챕터마다의 제목 없이 편집을 완료하는 일도 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한편 시각예술가들은 좀더 무제를 선택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사진가 브레송도 제목 붙이기를 힘들어 했는지 그의 사진은 주로 촬영지와 촬영시기를 제목으로 붙이는 데에서 그쳤다.

나는? 나는 시리즈 이름 짓기나 매일 포스팅 이름 적는 것에도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나의 글 제목은 본문의 내용을 요약한 정도에 그친다. 거꾸로 본문이 아직 쓰여지기 전이라면 제목의 빈칸은 거대하다. ChatGPT나 Bard도 나와 비슷하다. 본문을 다 적고 나서야 그 쓰레드에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모든 제목은 콘텐츠의 목적이나 결론을 반영한다. 내용이 없다면 제목도 없다.

나아가 글에 제목을 쓸 수는 있어도 사진 마다 이름을 붙이기가 영 어렵다. 이미지의 제목이 보는 사람의 의도 해석을 제약할까봐 저어된다. 이미 사진으로 내가 보여주는 세상도 시각도 프레임 되었는데, 굳이 제목으로 더 길을 뾰족하게 지어줘야 할까. 소화와 해석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기도.

한편으로 드는 다른 생각 — 세상에 내보낼 이미지마다 이름을 정해줄 수 있다면, 그제서야 준비과정이 끝나고 내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장소와 시간 정보 대신 내 생각을 길어내어 “제목을 붙여주는” 일은 내 사진에게 고유성을 부여하는 작업, 책상에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마지막 단계일 수도 있겠다. 제목은 내 고유의 SKU 바코드 일지도.

+ 요즘 “OO은 XX의 함수다” 라는 명제의 의미를 머리에 넣으려고 노력 중이라, 그럼 이럴 경우 제목은 내용의 함수인가? title(content) 처럼. 한자조어가 한국어 문장에 들어오면 순수 영어문장을 이해하는 일보다 시간이 몇배로 걸린다. 정수를 인식하는 데까지 도달하려면 몇겹을 더 뚫어야 한다.

좋은 음악 하나 더 듣고 사진으로 넘어가자.


오늘의 사진: 2023년 가을 빛 닿은 남산길과 한강길에서.

얼마 전 나무를 주인공으로 대하는 마음을 발견한 뒤에, 사진을 후보정할 때의 기조가 그 전에서 살짝 달라졌다.

나무가 잘 보이도록 강조하면서도 주변과 대조나 조화를 이루게끔 조정한다.

또 나무 곳곳에 빛이 닿은 부분이 빛나도록, 잎의 투명감이 사실 잎의 몸체를 통과하는 빛과 표면에 반사되는 빛 사이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사실을, 사진 매 장을 만질 때마다 느낀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빛의 상호작용으로 특유의 모습을 보여낸다는 데까지 생각이 다다른다. 또 감탄한다. 이럴 때면 자꾸 생각도 마음도 말랑여서 눈물이 찬다.

당시의 내 눈이 그 나무를 주목한 이유를 상기하며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과하지 않게, 너무 튀지 않게, 나무라는 존재가 내 삶에서 그렇듯. 계속 고민한다.

빛이 있는 한, 혼자이더라도 물리적 상호작용의 상태는 항상 0 이상이다. 나의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내 생각과 마음 안에서 계시듯, 내 몸 밖으로는 햇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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