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식물과 초록 (30): 23년 봄 간사이. 만약 나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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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업음악

엉망인 상태의 피아노로부터 음악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담긴 키스자렛의 쾰른 콘서트 (1975)

사진작업: 반발짝 나아간 질문, 그리고 반성.

오늘 작업을 시작하면서 바로 아래 사진을 만지게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만약 나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면 (나는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

앞서 여러차례 이 간사이(2023) 세트를 리뷰할 때에도 나는 위 사진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시엔 뭘 보여주고 싶은지 메세지를 발굴하지 못했다.

지금은 ‘식물’이나 ‘나무’처럼 초록을 중심으로 사진을 고르고 있다보니, 이 이미지가 새로이 보였다.

이 사진 중앙에는 나무가 있다. 그리고 인조의 건물과 물건들, 옷가지를 색색으로 걸친 사람들은 배경으로 빠졌다.

말하자면 나무가 주인공이고 사람이나 인공물은 나무의 세상 주변을 일궈 살고 있는 환경일 뿐이었다.

나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거나, 또는 나무를 내 시야의 중앙에서 다루는 프레임으로 방향을 발전시키며 남은 사진을 보았다.

존중을 담아 초록의 삶을 다룬다면 응당 이미 그 생각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제서야 생각이 반발짝 나아갔다.

이 사진에 담긴 나무에게는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좀더 아름다워보일까, 이 나무는 무슨 색을 보여주고 있나? 수형은 어떻지? 이 나무와 주변의 상호작용도 파악한다. 특히 명암의 흐름을 본다. 햇빛에 닿아 빛나는 부분의 디테일이나 바짝 마르거나 약간은 습한 공기의 수분감이 또다른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무의 주변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부조화에서 오는 흥미로운 내러티브는 있지 않을지를 살핀다.

이제야 각 나무가 가진 우아함과 역동성이 그 몸체의 곳곳으로부터 느껴진다. 움직일 수 없이 뿌리를 내린 그 위치에서 위로 올라가며 겪어낸 사건들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대충했다. 성의가 없었다.

지금 이 시리즈의 방향성이 또 보강했다. 더 밀고갈 방법을 발견했다.

아마도 이 생각은 어젯밤에 읽은 <루이지 기리의 사진수업>의 영향일 수 있다. 기리는 이탈리아의 사진가이다. 이 책은 89년-90년에 프로제토 대학에서 진행된 그의 수업 교보재와 기록과 녹음본을 토대로 그의 아내와 편집자가 만들어 출간한 책이다.

어제 읽은 내용 중에서도 사진가는 창문을 걸치는 크로핑 등을 통해 시선을 특정한 방향으로 안내하는 장치를 심는다는 부분, 사진의 입구로서의 프레임의 역할을 지적하는 바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글로 프레이밍 효과를 배우기 전에 사진으로 먼저 몸에 익혔다. 무엇을 취하고 배제할 것인지, 그를 직접이거나 에둘러 표현할지는, 내 의사와 판단에 달려있다.

나는 오늘, 나무를 외부에 걸친 배경이나 프레임 형성을 위해 주변부로 빼기보다는, 중앙으로 들여와 주인공으로서 보여주기를 선택했다.

pp 115-116

  • 사진 내-외부세계의 균형점은 프레임과 동일합니다.
  • 지금 제 앞에는 사십 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한 사람의 얼굴을 담아야 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이 입은 셔츠의 펜 같은 특정 부분이나 전체적인 풍경을 담아야 할까요?
  •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와 이미지로 소통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공간은 무한하기에, 이를 잘라내는 데에 사진의 근본적 함의가 있습니다. 촬영하는 순간에 나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음을 발견하고, 나의 내부 세계가 외부로 확장될 가능성을 느낍니다. 그 후에 ‘제외’와 ‘포함’을 판단합니다.
  • 따라서 프레임의 [입구]라는 개념은 여러 유형의 해석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그러므로 다른 작가들의 사진– 하나의 이미지에서 무한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겠죠.

사진을 경유하는 생각나누기 세션에 대한 영감과 고민

  1. 어제 정리해서 올린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 에서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가 잠깐 언급되었는데, 다른 책에서도 인용되었다. 한번 읽어야 하는지도..
  2. <아티스트 웨이>는 예전 창의성 자기계발서로 베스트셀러라는 것 같은데 쉬이 읽기에 망설여지는 까닭은, 좌뇌-우뇌로 뇌의 역할을 나눈 뒤 거기에 선악의 느낌을 레이블링하여 자신의 주장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좌뇌의 완벽주의자, 고약한 비평가, 검열관의 희생자이다. 그 검열관은 사악한 말을 뱉는 만화 속 뱀이다. 논리 담당 뇌가 우리의 검열관이다. 예술가 뇌는 발명가이고 어린아이다. 창의적이고 총체적인 뇌는 논리적 뇌가 옆으로 물러서게 가르치고 예술가의 뇌를 놀게 한다”
    • 편측화는 잘못된 통념이며 도시전설인데, 그에 기반한 창의력 책을 읽다가 내가 잘못된 지식을 쌓아가면 어쩌지? 이런 고민이 있다.
    • 아직 지식이 연약하게 쌓일 때에는 좋은 것만 챙겨 읽어도 부족하지 않나. 나는 아직 리즈닝과 설득에 약하다. 대학 때에 비판적 사고를 연습했어야 하는데, ‘비판 받기’만 연습했다. 사진학과는 크리틱 세션이 4년 내내 거의 모든 실기수업 매 회 진행된다.
    • 그 때문에 나는 비판을 들으면 취약한 마음은 취약한대로 놔두고, 상대의 평가 중 나와 상대의 경험차이에서 비롯되어 내가 몰랐거나 놓친 부분 — 즉, [나의 확장]이 될 것을 빠르게 선별한다. 마음과 이성이 별도로 움직인다고 오해할정도로, 민망하고 민구스러운 기분의 확산과 의견을 주워담는 사고의 흐름은 같은 속도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 (좌뇌 우뇌의 편측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내 경험을 잘못된 근거로 삼겠지..)
  3. 3월 초중순의 일기를 정리하다 좋은 기억 하나를 상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대화자리에서는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을 읽기 전이었으나, 그 책에서 저자가 주장한 것과 같이 [응시 몇 분 & 서로 생각 나누기]가 발생했다.
    • 함께한 분들께 사진엽서 테스트 출력을 나눠드릴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세션이 10여분 정도 진행되었다. 마음 먹고 한 것은 아니다
    • 처음에는 평가가 나왔다.
      • 예: ‘이건 구도가 불안정하므로 못찍은 사진이다’ 또는 ‘무슨 의도인지 정확하지 않다’ 또는 ‘프레임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
      • + 이상하게도, 그림이나 다른 설치 작업물 등을 보여드릴 때랑 다르게, 사진에 대해서는 첫번에 감상이나 해석이 발생하기 보다는, 평가- 즉 수우미양가, A~F처럼 정량화를 하려면 할 수 있을 법한 수준의 ‘잘했어, 못했어’로 가르는 경우를 자주 겪는다. 우리는 모두 사진을 잘 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또는 사진이 현실의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손쉬운 매체란 더 얇은 양날의 검이다.
      • 현실세계의 옷을 입고 있기에, 이미지 언어로부터 배경과 의도를 읽고 흡수하고 자신의 경험이 담긴 해석을 입말로서 즉흥적으로 내놓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일 수도. 이것은 연습의 영역이기도 하다.
    • 그 다음엔 ‘무슨 의미야’ 라는 질문을 누군가 했다. 직접적으로 내 의도를 답하지 않았다.
    • 대신에 ‘어떤 인상을 받으셨어요? 무슨 느낌인가요?’ 로 이어지는 질문을 했다
      • (‘어떤 인상이에요?’ → ‘불안한 것 같아 좀’ → ‘왜 그렇게 느끼셨어요?’ → ‘이러이러해서’ → ‘그럼 옆에 있는 이 사진은 어때요?’ → ‘내가 보기엔 OOO 같고, OOO 처럼 느껴지네. 아마 OOO 때문인가? 그래서 나는 이게 더 마음에 와닿네, OOO 하다는 인상이 들어, 지금의 내 상황이 연상되네.’)
    • 각자의 고유한 생각을 말씀해주셨고 서로 의견이 교환되었다.
    •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 십여년 전 첫직장 장기 인도 출장 중 큰 노력을 투입했던 중요 업무가 사업개발을 위한 1:1의 유저인터뷰였다. 생각이 입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질문법을,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연습한 셈이다.
      • 나의 질문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생각의 빗장과 기억의 근육을 풀어낸다. 조금 더 기다리면 해석이 발생한다. 훈련되면 더 즉각적이고, 덜 훈련되면 조금 시차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그의 내면으로부터 자아내진’ 답변은 그 사람의 평생의 정수가 내 귀에 들어오는 것만 같다. 고유하며 반짝거린다. 하나하나가 가치있다. 그게 그의 보석이다.
  4. 즉, 손쉬운 평가로 시작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상태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자신의 경험과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만나서 상호 해석되며 공중에서 각기 다른 자아가 대치되지 않고 교류되며 흐른다, 랑데뷰한다. 그것은 순식간에 진행되는 내면의 작업이며 몸 밖으로 나온 말이 생각의 씨앗으로 바뀌는 과정.
    • 그렇게 흘러나온 말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보석?)
  5. 사람 하나가 낸 의견 하나는 리본 한 줄 같다. 리본에는 맞고 틀림이 없다, 각기 다른 색과 문양, 광택, 길이와 좁고 넓음이 있다. 여러 사람이 테이블 위로 꺼낸 리본은 댕기머리를 땋는 듯 서로에게 얽혀 들어간다.
  6. 또는 내가 제시한 작업물은 날실이되고, 그들의 말은 씨실이 되어 한편의 직물로 짜인다. 듬성하거나 촘촘한 것은 그 자리의 분위기나 관계의 특수성이 완성한다. 그 자체가 작품이다.
  7. 그게 “사실(또는 논거)에 기반한 지식을 다룰 때와, 예술을 매개로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자리일 때”의 차이가 아닐까. 마찬가지로 지금의 대화는 “지식(학식, 학문, 남의 말, 가십, 떠도는 정보들, 직업, 직장, 주체가 여기 있지 않은 사건들)이 주인공인가, 나나 당신(나나 당신의 삶이) 주인공인가”라는 질문도 해볼 수 있겠다.
  8. 같은 맥락의 궤에서, 나는 오늘 나의 눈 앞에 있는 나무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작업했다. 아하 그래서 마음이 편했구나. 눈 앞에 놓인 대상에 전면적인 주의를 기울였던 셈이다.
  9. 이런 세션을 계속 하고 싶다. 그게 나와 작품의 관계이든, 작품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자리이든. 계속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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