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생일 전전날의 황매산.
1. 삶의 전환 계기에 대해
남쪽으로 떠났던 하룻밤 사이에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은 일이 있었고, 새벽에 잠깐 눈을 떠보니 미국사는 전 남자친구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이 괜찮냐며 남긴 메시지로 핸드폰 노티리스트가 가득 차있었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위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했다. 이를테면 ‘그런 날 그런데에 놀러간 아이들이 잘못이지. 누가 놀러 다니래냐?’ 같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자에게 비수를 꽂을 잔혹한 말들, 빨간 확성기와 뉴스 댓글창을 통해 지우기 힘든 오물의 냄새처럼 세상의 귀와 눈을 더럽힐 언사들. 확인하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귀가해보니 저 멀리 이태원 방향에서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 없이 울려 퍼졌다.
그 사건으로 상권이 번성한 그 지역 일대와, 그곳과 이웃한 우리동네도 몇 달 간 찬바람이 불었다. 돈이 돌기는 커녕 누가 숨쉬는지 모르게 동네는 조용했다. 이건 누가하는 무슨 위로인지 20% 할인된 지역상품권도 발행했다. (그 때 산 상품권으로 올 초에 파이 종양 응급 수술을 했다, 이해는 안되는 정책이나 감사합니다. 잘 썼습니다..) 나마저도 도무지 이태원역 사거리에는 한동안 갈 수가 없었다.
일부 조악한 정치를 일삼는 자들은 원색적이며 자극적인 플랜카드를 지역 곳곳에 걸었고 확성기를 들고 다니며 말을 칼처럼 휘두르기를 일삼았다. 분향소는 처음엔 이태원역 사거리에 있었다가 blacklist랑 cakeshop 앞에 다시 차려졌는데, 설날을 채 못넘기고 사라졌다. 반면 악심과 폭언을 품은 플랜카드는 분향소가 물러나고 스케이트 보드 무리가 그 자리를 차지한 여름까지도 내 눈을 더렵혔다. 저정도로 저열하고 양심 없는 사람들이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나는 그 일로 지금의 전환기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 일은 충격이었고, 나도 모르게 한동안 멍하게 살았다. 왜 사는지를 묻게 되었다. 내가 살아있는 지금은 순전히 어떤 선택에 의한 운좋은 결과라는 인상처럼 회의감도 들었다. 나는 사건 때문에 놀랐고, 한동안 그 상태로 살았다. 그리고 나는 새해가 되며 약간 염세적인 태도를 가졌고, 회사를 쉬기로 결정했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을 제 3자적 관점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나는 하루를 어떻게 살았지? 그 아이들이 못가진 오늘 하루인데, 도무지 내가 산 하루가 내 몫의 하루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약간의 유체이탈 같은 상태로 진입했다.
마치 한움큼 누군가 잡초를 뽑아내어 내동댕이라도 친 것처럼, 생떼같은 젊은 목숨들이 그 자리에서 순간 사라졌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었지만 다시금 이 세상을 게임공간에 대비하여 보게 만들었다. 삶은 게임과 달리 저장한 자리로 돌아가 재시작할 수가 없다.
2. 삶의 유한성에 대해
게임공간.. 내가 여기에 쓴 적이 있던가? 나는 11세 때 슈퍼마리오를 통해 삶의 유한성을 깨우쳤다.
9살 즈음엔가, 그러니 아마 IMF가 터지기 전이었나, 엄마가 닌텐도 슈퍼 패미컴과 슈퍼마리오 게임팩을 사다주었다. 뜬금 없는 일이었다. 아마 유아 때에 쓰던 대우 코보 컴퓨터(내 첫 컴퓨터)와 아버지가 조립한 286 컴퓨터(내 세번째 컴퓨터)를 돌려가며 게임을 하는 게 못내 불쌍해 보였을 수도 있다. 내 항렬의 친척 모두가 PC이든 콘솔이든 게임을 했으니, 아마 언니네가 갖고 있는 소니 게임기를 써보고 와서 졸랐을지도 모른다.
게임을 하며 나는 내가 간이 쫄리는 위기를 그렇게 즐기지 않고, 쉽게 게임화면이 조성한 상황에 빠져들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하며, 데이터 관리에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보통 슈퍼마리오에서 한 판을 깨는 데에는 세번인가의 분기점이 있다. 나는 이 분기점을 넘길 때마다 저장을 일삼았다. 또 게임을 나갈 때에도 EXIT은 누르지 않는다, 반드시 SAVE & EXIT을 눌렀다. 아마 SAVE, EXIT은 내가 인생 두번째로 배운 영단어일 수 있다. (첫단어는 8살 때 알게 된 단어 GUEST 였다. PC통신 단말기 트라이얼 ID.)
게임 몇개를 속속 발라먹듯 한 뒤니까 아마 10살은 아니었던 것 같고, 11살이던가? 하루는 내가 순조롭게 못 깨는 어느 판에 오랫동안 덤비고 있었는데, 그 장해물을 넘으려고 직전 분기에 세이브해놓고 죽으면 돌아가기를 며칠과 몇끼니에 걸쳐 반복하는 중이었다. 마침내 그 판을 깨고 세이브를 누를 때에 나는 어떤 진리를 깨달았다.
- 삶에는 세이브가 없다.
- 삶에는 중간 저장이나 돌아가기, 나갔다 다시 들어오기 기능이 없다.
- 삶에서는 선택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는 있지만, 직전 선택을 했던 그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 그러므로 삶은 두 번 이상 사는 게 아니다. 삶은 한번의 기회 일체이다. (그 때엔 ‘부식 일체’ 같은 단어를 좋아했다.)
- 동시에 일체인 삶은 주욱 이어지는 선형적인 활동이다. 이 단회인 삶에서는 잠깐 ‘사는 일을 멈추고 삶을 쉬는’ 일은 없다. 실패는 할 수 있지만 시간을 돌아가 하트를 추가로 받는 일도 없다.
- 즉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시간을 멈출 수도 없으며, 시간이 완료되면 삶이 끝나고, 거기서 진짜 끝이다.
- 살아 있는 동안 기회는 계속 있지만, 동일 반복되는 기회는 없다.
- 마찬가지로 지금 나이가 지나면 이 나이로 절대 다시 못돌아온다.
- 아 그렇구나 삶은 무서울정도로 유한하다. 게임에 비하면 야박할 정도로 매정하고 얄짤없다.
이 때 가요무대인가 뮤직뱅크인가에서 원타임의 어느 무대를 봤는데, 그 중 ‘한번 사는 인생’이라는 표현이 나와서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삶이 게임처럼 다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재인식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 11살은 삶의 유한성을 알게되는 그런 나이었구나..
3. 유한적인 시간이나마 밀도있게 잘 살기 위해
오늘 웹사이트에 변화를 주었다.
- 웹사이트 제목을 ‘이지은 매일사진작업’ → ‘이지은 작업공간’ 으로 변경.
- 사진 외에도 내 주요 프로젝트를 담는 그릇으로 쓴다
- [Progress Check] 버튼 삽입. 링크는 프로젝트 운영 관리하는 Trello로 연결된다.
- 혼자 일하지만 여럿이 하듯 진행과 전개를 과거의 나와 오늘-미래의 내가 주고 받는 구조로.
- 현재까지 Trello에는 5개의 프로젝트를 올려놨고 (학과공부, 학위연구, 창업, 작업, 문예사) 금요일에는 ASAP으로 끝낼 일을 완료한 뒤엔 프로젝트 개요를 짠다.
- 카테고리_현재 = [‘사진과 글’, ‘misc.’] 인데, 프로젝트 전개하면서 다른 유형의 글(예: 연구/책/그림 읽고 정리 해석.. 공부?) 들도 담기 위해 categories 섹션을 글 아래에서 글 위로 빼왔다.
4. 기타
+ 5세 때에 내가 기거하던 친척할머니네 집에서 그 할머니가 제일 즐겨하던 말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였고, 그 다음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였다. 그 할머니는 그 ‘진리’ 라는 말을 좋아했다. 내가 그 말을 자주 듣다가 어느날 “이모 할머니, 진리가 무슨 뜻이야?” 라고 묻자 그 친척할머니는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 이라고 했다. “할머니 그게 절대 변하지 않는지, 그게 진실인지 어떻게 알아? 사실이랑 진실은 어떻게 달라?” 라고 이어 물었지만 그 답은 기억이 안난다.
+ 한편 내가 배운 첫 영어단어는 “Guest” 였는데, 아버지가 내 PC통신 단말기 ID 필드에 적었던 단어다. 그 때가 국민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 앞에서 영업하던 유니텔 단말기를 혼자 계약하고 받아왔다.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는데, 조부모를 포함해 나를 아무도 혼내지 않았던 점이 참 웃기다. 대신 아버지는 내 방 전화선을 뽑고 인터넷 선을 연결해 PC 통신을 처음으로 시켜줬다. ‘아버지는 천재야? 어떻게 영어를 알아?’ 라고 물었다. 지금 돌아보니 8살이란 그런 나이다. 상대 모두가 자기랑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그러니 8살과 11살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같은 애인줄 알았는데… 그러네 숫자로 봐도 11살은 8살대비 35%는 더 산 셈이다. 한편 14살에는 우주의 무한성에 가까운 규모와 그에 대비해 상대적으로 내가 얼마나 작은지를 인식하고 내 물리적 위치를 중심으로 머리의 뎁스를 넘는 우주의 규모와 확장성을 내 머리 안에서 상상하려 노력하다 압도되어서 거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우주는 이렇게 넓다는데 그리고 계속 팽창한다는데 그럼 물리적으로 어느 공간 안에서 그 팽창을 지속하는 거지? 즉, 우주는 어디 안에 있는 것인가? 그럼 그 어디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나는 대체 어디에 존재하고 있지? 공간이란 무엇이지? 이건 현실이 맞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 우주라는 나 밖의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나를 정확히 인식하기에는 실패했다 (상대의 실체가 몇겹인지 정의할 수 없어서.. 말하자면 좌표값이 어느 순간 무한으로 넘어가면서 루프문 돌리다가 뻑이 남). 그러다 죽음(나라는 생이 없음) 상태의 영속성을 깨닫고 내가 나를 인식하기 시점의 ‘이전’이 있다는 것, 또한 지금 이후의 어느날엔 입을 쩌억 벌린 죽음의 문이 여튼 어느날에는 나를 맞이하게 되어있다는 사실로 생각이 이어졌고, 이제 막 잠에 들었던 엄마에게로 뛰어가서 ‘엄마 죽는 게 무서워 우주는 뭐야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거야’ 하며 울어재꼈다.
뇌 성장은 3년 단위 인가?
오늘 말이 많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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