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 작업시간은 외할머니 장례식 사진을 정리하는 데에 썼다.
- 외할머니 장례식 사진은 가족들 얼굴이 나오므로 웹사이트에 올리기엔 적합치 않다.
- 금요일부터 꼬박 나흘. 일주일 여행을 다녀온듯한 피곤함.
- 앞서 다른 조부모의 장례를 포함해 이번까지, 나는 친구들을 부르지 않았다. 왜지?
- 아직 답을 솔직한 마음으로 할 수 없다.
- 이성적으로는, 장례는 직계의 이벤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 이번 장례에서 나는 노동자였다.
- 다른 사람이 임종 전에 쉴 수 있게 그 사이 간극을 메우는, 할머니의 몸을 로션을 닦고, 눈이 떠지도록 유도하고, 직계들의 미처 정리되지 않은 안녕의 말을 대신 해주는.
- 그리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다녀오는.
- 조문을 받을 수 있게 식음료 홀에 나가서 서빙하고 먹은 자리를 치우는, 입관을 갈 수 있게 빈소를 지키고, 방문객의 신발을 정리하는.
- 그리고 새벽에 집에가서 과제를 하는.
- 아침 장례미사의 사진을 찍고, 버스에서 화장터에서 장지에서 이벤트마다 연도와 창을 하는. 저녁 외갓집에 모여앉아 다른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돈계산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계란 몇개와 고구마를 먹는.
- 다시 저녁 수업을 가는.
- 친척이 손님과 떠들고 먹은 자리를 뒷정리도 않고 다른 테이블로 가서 또 떠드는 걸 보면 나는 왜 불공평하다고 느끼는가. 친척이 손님을 데려와서 내게 일방적인 말투로 밥 좀 차려 여기 밥 좀 챙겨, 라고 하면 나는 왜 무례하다고 느끼는가. 친척이 데려온 손님이 상복입은 나를 하대하며 서비스 노동자 취급을 할 때 나는 왜 화 나는가.
- 불공평하고 무례하며 화날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치담론을 식탁 위로 갖고 와, 여야의 민주성이며 어느 불평등이 심한 나라의 시스템의 미래와 개선을 떠들어댈 때, 그것이 내 귀에 꽂혀 그들의 행동이 일으킨 내 부정적 감정의 층위를 가로지를 때, 나는 그들의 대화가 위선적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저 계획은 실패할 거라 생각한다. 실천 없이 말 만으로 쌓은 성에는 실체가 없다.
- 그렇지만 이 모든 활동을 하는 내게 (우스개인지) ‘알바’와 ‘용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내해야할 일이 된다. 알바와 용돈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감내한다.
- 그게 더 짜증난다.
- 짜증나서 장례가 끝나고, 외갓집에서 나와 저녁수업에 가는 길, 지하철, 거리, 엘레베이터에서 울었다.
- 끅끅대며 서럽게 울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멈출 수 없이 울었다. 이유를 댈 수 없다. 외할머니가 나를 두고 우지, 수도꼭지라고 놀리던 일이 생각났다.
- 사실은 대강의 이유를 댈 수 있다.
- 외롭기 때문이다. 어느 집엘 가도, 나는 내 몫의 가족이 없는 깍두기이다. 우산이 없이 비를 다 맞으며 컸다. 그럴 때면 그 집의 어른들, 즉 나의 친외조부모에게 기댔는데 이제 내가 걸터앉아 부스럭댈 나의 잉걸이 없다.
- 스물 둘, 나의 가장 큰 정신적 지원자였던 친할아버지로 시작해 10년 남짓한 시간동안 네 분 모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떠나셨다. 그러니 오늘 내 인생에 쉼표를 한번 찍은 셈이다. 또는 줄바꿈.
- 내 책임은 아니나 내게 주어진 환경이 이끌어낸 비참함과 개인이 갖는 자존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나를 너무 일찍 애어른으로 만들었다.
- 서투른 시절 여러 실수들을 통해 나는 어떤 적당함의 범주로 수렴되었다. 환경탓을 하며 자존심을 부려 스스로나 다른 사람이나 여기저기 찔러대는 창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무던히 애썼다. 하지만 정말 힘들었다. 너무 어려웠다.
- 그래도 시간이 지나 컸다고 생각했는데, 겪어내며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해였는지.
- 나는 아직도 다섯살, 열두살일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 그렇게 자리를 찾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 이는 모두 잠깐의 인상일 수 있다. 슬픔에 빠져 울다보면 눈이 붓는 만큼이나 비통함에 머리가 절여지는 듯 사고능력이 일을 멈추는 느낌이다. 운동 후 피로로 종아리가 붓듯, 뇌도 마음도 물로 가득찬다.
- 자기연민을 멈춰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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