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식물과 초록 (8): 나침반 뱅글뱅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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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간 바쁘면서 작년부터 오래 고민했던 내가 취하고자 했던 삶의 형태를 잠시 잊었던 것 같다.

고민이 아무리 길고 깊었고 스스로에게 설득적이었더라도, 당장에 육신이 피곤하고 여유없이 휘몰아치듯 살다보면 다 남이 고민했던 것처럼 오늘의 내게는 ‘없는 얘기’가 되곤 한다.

정말이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

휩쓸리고 끌려가는 삶에 익숙해지면 매번 쉽게 우선순위를 타협하고, 지금보다는 가까운 미래나 과거에 초점이 가고, 관찰할 기운이 없고, 덜 친절해진다. 보이는 성취와 외부의 인정에서 보상을 찾으면 자꾸 나를 잃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그사람이 사라졌든 그 정리가 흩어졌든 ‘이해’를 잊었다. 삶의 속도감이 높아지자 코는 무겁고, 숨은 가빠진다. 하루는 길어졌는데, 돌아보면 기억은 듬성듬성하고, 감정도 감성도 말랑이지 않는다. 하루를 쪼개어 살기로는 1.4일인데, 지나간 내용을 돌아볼라치면 이건 하루가 아니라 0.6일 같다. 이 속도에 휘말리자 이것이 빠른지 모르겠다. 느린 숨을 쉬듯 살며 낮의 볕을 제대로 보고싶었던 것 같은데, 나의 바로 몇주 전 몽상가적 날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어쩜 이렇게 쉽게 잊히는가.

피곤할수록 충실함이나 주의집중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성의없이 책을 빠르게 읽고, 조심성 없이 시간을 흘려 보낸다. 적당한 불만족 상태에 익숙해지고, 내 목표가 뭐였는지 스스로 묻지도 않는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게 더 달고 짜야 한다. 피로감은 쌓이고 분출되지 않는다. 답답한 하루 사이사이, 대강 대강, 어느정도 하기야 하지만 그게 진정한 해냄인지 모르겠다. 무위 빼고 다 해낼 수 있다. 머리가 아프지만 그게 어디서 발로한 것인지 묻지 않는다. 눈을 반짝 떠서 지긋이 볼 때면 감탄했던 현실의 아름다운 모습들은 어디로가고, 하루는 엇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날이 바뀌어 전에 없이 몰아치는 눈보라를 본다.

어디선가 불어온 강렬한 바람이 남산 소월길에 쳐진 펜스 위로 눈 부스러기들을 넘겨버린다. 신기하다.

빠르게 내 얼굴쪽으로 밀려오는 눈의 커튼에 뺨과 이마와 코를 내어준다. 저 횡단보도까지 얼른 가야해. 우산을 양손으로 꼭 쥐고 허벅지 뒷면의 근육으로 무릎으로 밀어대며 걷는 동안 나보다 힘이 세어 아프게 부딪히는 맞바람과 그에 실려온 눈에 혼쭐이 난다. 차가워, 따가워, 시려워, 거슬려. 지금이 몇월인지 생각한다.

길이 굽어지며 바람이 옆으로 스쳐간다.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다. 앞으로 겨눴던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굽혔던 허리를 피며 시선을 땅에서 거둬 하늘로 향한다. 밤이니 하늘은 어둡지만 이 소월로의 가로등이 눈마다에 떨어지며 빈 곳 드물게 눈 앞은 새하얗다. 대단한 힘이 얹힌 듯 빠른 속도로 흐름을 타는 눈송이 장막. 시작은 모르지만 끝은 아스팔트. 땅과 하늘은 눈 앞에서 연결되었다. 중력도 바람도 눈보라를 통해 존재를 입증한다.

순간 다른 바람이 산에서 불어오면, 눈의 장막은 그에 제멋대로 갈라진다. 빗질에 응하는 마른 산발머리처럼 줏대없이 흩어진다. 방향이 바뀌고 흐름은 쪼개어지고 갈피를 영 잡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내 마음과 같은 모양새다. 내가 마음이 바빠 어딘가에 홀렸었다. 시간을 밭게 산다는 자체에 좇기며 지금 내게 필요한 사색을 뒤로했다. 그래서 스스로 뭘 해내고 있는 줄로 착각했다.

그랬다 내가 또 나한테 속았다. 안되겠다, 다시 심심하게 시간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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