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사진부터 2017 중반까지의 사진 중에 우선 해당하는 사진을 선택. 모아놓고 나중에 고르자!



























작업에 대해
낮에 뭔가를 집중해서 하면 밤에 작업하기 약간 힘들어
요즘엔 낮긴장도와 피로도가 갑자기 올라가서, 사진에도 공부에도 집중이 어렵다. 책도 글도 어려운 것을 읽기는 어렵고, 가벼운 텍스트 정도만 본다.
이정도로 피곤해서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이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다. 미뤄볼 때 아직 내가 내 공부와 작업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쓰기엔 습관의 개선도 안되었으며 또 건강은 회복이 덜 된 것 같다. 즉 더 쉬어야 하는 듯하다.
쫓겨서 목적의식과 집중을 잃을까봐 두려워
공부와 사진작업에 대한 목적의식이 얼마전까지는 강하게 있었는데, 그보다 정신을 오랫동안 점유하는 일이 ‘툭’ 생기자마자, 일상이 곧 노동인 듯 피곤하다. 요 며칠 내 머리는 그 이슈를 해결하는 데에 거의 다 쓰이고 있다. 당분간은 체력안배 하면서 사진은 야금야금 한다 매일매일 한다 내일은 남은 사진들 중에 추가 셀렉을 하겠다! 그리고 그 중에 엽서로 뽑을 사진을 고르자.
이번 엽서의 묶음 주제는 앞서 여러번 썼지만 지금으로서는[‘바다’’, ‘대양감’]을 다루고, 그 효과로 이완과 평화와 같은 느낌을 주도록 생각하고 있다.
지친 나 다루기
예측 안되는 시간안배에 대한 두려움
나는 자의로 컨트롤이 불가능한 어떤 (시간이든 의사결정의 폭이든 상당히 제한적인) 압박적 상황에 의해, 내 시간의 용처가 내 생각이나 예상한 것과 달리 [갑자기 변하는 —거절한다면 나는 편하지만 상대는 난처할 것 같다고 짐작하여 수락하는 바람에 생긴—]상황에 빠졌을 때에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
이런 때엔 내 몸이 어깨와 위장을 통해 위험신호를 보낸다. ‘경계태세! 경계태세! 이지은이 또 자기를 지키지 않는다!’ 같달까. 영역침범을 수락하고 실제 수행이 끝나는 때까지 평소보다 매우 강하게 스트레스 받고 상당히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 상태로는 공부와 작업 모두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 속은 따갑고 어깨가 딱딱해졌다. 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내 우선순위 프로젝트를 보통 때에 미루지 않고 그 때 그 때 잘 해내고 있다면 이런 용처변경은 수용이 가능하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제대로 진행하고 있지 않으니 예민한 면도 있다. (그러니 매 시간 매일 그저 해내라 지은아…)
남을 우선순위에 두었던 나에게 스스로 사과하기
내가 지금까지 찾아 낸 최선의 접근법은 먼저 스스로의 욕구와 우선순위와 계획을 준수하거나 먼저 생각하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사과]하고 그 다음은 나를 보호하는 나 모드를 발동하여 외부세계에 마치 보호자나 대리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스스로 가진 경계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므로, 이 방법은 실제 위안이 된다. [내 내면의 나]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제대로 하면 많은 경우, 화는 진정되고 마음은 누그러진다. 이제 좀더 편안하고 이완된 마음으로 [외부세계에 대응하는 나]와 다음 비슷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반응할지 그 전략을 고민하고 몇가지 해볼만한 대안책을 꼽아놓는다.
마지막으로 외부세계와의 실질적 해결로는 이런 요구가 있을 때에 사실 어떻게 불편한지 알리고, 나의 요구사항을 포함하여 구조적으로 재발이 방지되게끔 의사를 균형있게 전달 해야한다. 그게 [나 스스로를 지켜내는 내]가, 마치 부모가 아이를 지키듯 스스로를 데리고 사는 듯 해야할 일이다.
작업과 나 사이에서
[바다, 대양감, 이완]을 통해 평화로 향하기
갑자기 ‘평화’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오늘처럼 급작스러운 일정이 내 경계를 깨고 들어오고 나는 그것을 못 막은 사건으로 말미암아 나의 평화가 깨지고 힘들었던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경계를 잘 만들고 지킬줄 몰랐던 서툰 어른이에게 평화는 없다
그 때 나를 가장 예민하게 만들었던 사건은 사실 사소했다. 몇 년 전 연차를 쓰고 내 시간을 만들어 쉬고 있던 날, 상위권자로부터 오후회의에 들어오라 연락이 왔다. 쉬는데 연락할 정도면 긴급이겠구나 ‘짐작하고’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라 여겨 수락했더니, 그 회의에서는 언제나처럼 목표지향이 떨어지고 소모적 논의 또는 설명 또는 침묵이 거듭되었다.
즉 나는 그저 비상용으로 들어오라 쓰인 듯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짐작으로 배려하여 내 자유시간의 구획에 대한 경계를 넘어오길 허용했을 때에 나는 [경직되었고], 나중에 보니 그렇게 중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저 누군가의 예비탄 정도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냥 허무한 것이 아니라 [성이 났다.]
그러나 사실 나는 나에게 격분했던 것이다, 누군가 내 시간을 무성의하게 대하도록 [내가 수락]했다. 스스로의 필요를, 개인시간이라는 내면의 욕구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내게 집중하기, 나에게 솔직해지기, 내면의 필요를 감지하기
그 뒤로 마음을 잔잔하게 다시금 끌고오기 위해 그 사건 뒤로 인스타에 “오늘도 평화”라는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평화를 지키는 데에는 노력이 들었는데, 이는 무너뜨린 경계의 자리에 다시 돌 하나하나를 쌓는 것과 같았다. 가장 기초 토대를 닦는 데에 2년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작년에 휴직했고, 여름께부터 일을 그만하였다. 쉬기 시작했다. 오늘까지로 흘러왔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채워서 다시 충족상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 시기를 통해 나에게는 나와 남 사이의 경계를 형성하고, 나를 (내 필요와 욕구를) 우선시하는 스스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인지된 노력이 나를 이끌자, 스스로에게 분개한 내가 사그라들고 마음에 평화가 어느정도 찾아왔다. 다음으로는 언제나 연결되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조금씩 또는 한번에 나를 꺼냈다. 인스타나 소셜 매체를 잘라냈고, 카톡도 정해진 시간에만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느린대로 사는 것이 나의 안온하고 무해함을 유지하는 방법
즉시적으로 응답하기를 언제나 요구받으면 내 상시 스트레스 수준은 올라가고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며 집중과 주의 수준이 낮아진다.
그래서 나는 인터벌은 길고 생각은 어느정도 정리하여 전달되는 소통매체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여긴다. 엽서는 그런 면에서 안온하고 무해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흐름의 속도가 조금은 느리고, 예상못한 침범에 예민하여 많은 일에 약간의 버퍼가 필요한 내 정신적 필요와 합이 잘 맞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 엽서가 궁극적으로는 안온과 무해함, 위안과 이완, 잔잔하고 평화로운 감정이나 느낌과 연결되었으면 한다.
긴 글을 정리하며
내가 정신도 상황도 혼돈 안에서 긴장하며 살던 때에 “평화”는 내가 [어떻게 도달할지는 모르지만 여튼 추구했던 방향]이었기 때문에 가져와봤다. 요 며칠 하루의 시간 구성이 엉키면서 그 때의 곧 곰팡내가 오를 듯하던 나의 음습하고 그늘진 마음이 떠오른다.
하지만 오늘의 이 상황 또한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유익한 계기이다. 우선은 예전에 내가 무엇을, 어떤 때에, 왜 힘들어했는지 상기시켜준다. 돌아가기 싫은 상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나면 나를 지키는 적당한 경계도 고민하기 마련이다.
또 이런 필요불충족 상태이기 때문에 “이완과 위안“을 주는 “대양감”이나 “바다”의 관점에서 목적에 맞는 사진을 선택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모든 일은 면면이 다른 맛과 형태가 있기에 살짝 돌려보면 어떤 식으로든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상황도 내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써먹자. 그렇게 쓰임을 발굴하고 그것이 심지어 의미가 있다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글 여기서 끝.
혹시 이 사진 엽서목록에 들어갔으면 해요, 싶은 게 있다면 방명록에 알려주세요
#114에서 지정한 앞으로 할 일의 일정변경
1) 다루고 싶은 테마를 생각나는대로 추린다 (내일 일요일에 이거 해라)
2) 그 테마 중 ‘먼저 할 것’을 고른다 (월요일 작업 시간에 이거 해라)
3) 그 테마(‘바다’+’대양감’+’이완)에 맞는 사진을 몇 장 추린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했고 또 토요일에도 이거)
4) 그 중에 연초에 주고받기 괜찮은 사진을 고른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일요일에는 이거, 그리고 편집해서 맡겨라)
5) 그 사진을 왜 좋아했는지 생각하며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하장을 쓴다. (24W05에는 이거 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