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22년 10월 한라산: 흑백 對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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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중학생 때 디지털카메라에서 사진생활을 시작해 고등학생 때에 컬러 필름으로 넘어갔다가, 18세 초반부터 암실생활을 했다.

매우 압축적으로 몰입해서 첫 100롤 정도를 작업한 뒤에 흑백으로 스케일된 세상에 좀 익숙해질 수 있었는데, 한번 그 ‘눈’을 쓸 수 있게 되자 세상을 그림자와 빛의 갈등이나 협력이나 놀이처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때엔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옷에 반사된 빛과 주름들이 음소거된 세상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반사체 표면의 명암비는 계속 변했고, 그건 나도 세상도 살아있다는 신호였다. 특히 야외에서는 빛이 고정되고 멈춰있는 것 같아도, 호흡을 길게 보면 조금씩 움직이고 이따금 여러 변수에 의해 크게 변한다.

나는 그 경험 자체가 좋았는데, 어쩐지 모든 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거나 공생하는 것 같이 이해되어서 편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인공광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흑백의 세계에 빠져있다 컬러를 보면 감각에 충격이 온다.

자극적이다. 태어나 처음 달디 단 도너츠를 먹는 듯한 쇼크.

흑백 사진은 말하자면 고요하고 조용한 세상이었는데, 컬러사진은 음악이나 라디오를 트는 스피커가 켜진 셈이랄까.

음.. 거꾸로 말해보자면 컬러사진을 보다가 다시 단정하게 정리된 흑백을 접하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끼고 작은 볼륨으로 시작하는 음악을 듣는 느낌이다. 그러다 그 이어폰에 익숙해지면 소리가 참 섬세하게 들리는 것처럼, 흑백의 세계를 만드는 명암비와 반사율의 맛을 발견할 수 있다.

04.jpg

두 세상 다 아름답다.

이 주제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직 정리가 잘 안되네.

흑백 작업과정에 대해서

컬러 세상을 흑백으로 전환할 때에는 (컬러 인화과정 보다는 적지만) 수많은 선택의 조합이 존재하고, 이 선택들은 흰색과 검은색 사이, 반사율의 값, 즉 각 셀이 얼마만큼의 회색인지로 인화지에 표현된다.

이 회색의 표현에는 촬영세팅이나 필름제품 자체의 특징도 있지만 현상과 인화과정에서의 세세한 변수를 선택하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인화기나 명암 필터, 노광조건, 약품, 희석비율, 잔존시간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이 결과물의 모습을 휙휙 바꾼다.

흑백의 스케일, 흑백의 세상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런 과정에 적응하는 것이 하나, 그리고 회색의 변주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하나가 아닐까. 아마 ‘흑백논리’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은 ‘회색지대’에 대한 이해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인화지에 흑백의 세계를 올리는 훈련을 하는 동안, 나는 흰색과 검은색이 떡하니 나와서 다른 디테일들이 묻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주 검거나 아주 밝은 것은, 안되었다. 대신 “이 영역은 디테일이 얼마나 살아있는 회색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한번 적지만, 절대의 검은색이나 절대의 흰색이 올라와서 디테일이 아예 없다면 그 공간의 정보는 없는 것과 같았다, 그를 피하기 위해 촬영 때부터 적정하게 표현공간 안에서 디테일이 존재하도록 노출을 맞춘다

그러니까, 극단을 취하는 대신, 양 극단 사이에서 디테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그게 내 십대 후반의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질문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그게 인화지가 아니라 내 삶의 시간에 대한 질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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