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월까지는 쉬는 기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쉬는 기간은 성인기에 처음이다. 줄곧 일하는 학생이거나, 공부하는 일꾼이었다. 지금도 석사과정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그 전에 살던 긴장성에 비한다면 감각적으로 쉬는 중에 가깝다
쉬기 시작하며 처음엔 물리적 시간과 인지/심리적 시간의 차이를 느꼈고, 그 뒤로는 시간을 설계해서 쓰는 재미가 있었다. 그냥 그동안 했던 일이 아니라, 내 몫의 시간을 내가 정한 영역에 쓰는 것. 뭘 공부하거나 해낼지 빈 도화지 위 원하는 위치에 그림을 끼적이는 느낌이었다.
재밌었다(재밌다) 지금까지 큰 불안은 없었다. 이 시기에 대한 나의 인식은, 내 돈을 들여 나의 시간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쉬는 기간이 끝나도록 나의 새로 시작할 업을 못찾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정확하게 이 고민은 “직장을 못잡을까봐”가 아니다. 지난 어느 시간을 잘못 쓴 것처럼, 내 자리가 아닌 듯한 곳에 앉아, 내 몫이 아닌 듯한 일에, 영혼과 육신이 낼 수 있는 열과 성을 다 해 내 시간을 다시 쏟을까봐 두렵다.
내 돈을 들여 내 시간을 사는 이유는 결국 미래에 좀더 ‘안정적으로’ 행복하고 싶어서이다. 이 안정은 비단 생활의 안정 뿐만 아니라, 일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일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의 가치를 포함하는 내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일하는 나’는 많은 날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때로 일이 잘 풀려 즐거울 수는 있었어도, 그 환경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것은 내가 놓는 돌들을 살피고 돌아보고 고민하기 보다는, 그저 그 환경에서 일을 해내는 데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말하자면 사업과 나의 생존 그 자체에 ‘급급하였기 때문’에 발로하였다고 본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내게 남은 젊음과 생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점차 시간당 가치는 더 높아진다. 그 전의 수많은 날들의 하루는, 이제 급급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아까운, 쫀쫀하게 살아내야 할 귀한 하루가 되어가고 있다. 미래 나의 안녕은 이제 멀리있는 얘기가 아니다. 이전과 같은 실수를 또 긴시간 반복하며 다시금 자아와 그 미래를 죽이고 싶지는 않다. 부디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헌신하고 싶은 일을, 그 답을 찾아갈 수 있기를 자주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현재 놓은 돌들이 미래를 이룬다는 인식이다. 그래서 오늘의 돌이라면, ‘나의 업‘이 무엇일까 탐색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업 그 자체보다는 내가 왜 그 전에 실패했고, 어떤 요인이 나를 유난히 힘들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어떻게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지, 어느 가치가 내게 중요한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들은 내가 앞에 선택할 무언가의 이유가 될 것이다. 즉 ‘무슨(형태의 일인지)’은 단지 결과일 뿐이고, 답은 단 하나가 아닐 수 있다.
지금은 열심히 고민하고 찾는 중. 변화 중에 두려운 것은 당연하겠지.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해보겠어. 사진은 2020년 3월 15일에 찍었다. 이 때부터 일에 불만족하고 지쳤던 것 같은데, 결정을 미뤘더니 결국 삶이 떠밀려와 한번은 필요했던 중간정리를 위한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네가 있어서 빛날 자리를 찾으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