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음악
더블베이시스트가 주도하는 영국 14인 재즈 앙상블인 Ancient Infinity Orchestra의 신보 River Of Light (링크)

타이베이 여행 3일차의 오후.
살기 위해 맛 좋은 온도의 물과 차와 커피와 술을 찾아 마시는 자로서, 타이베이 근처 차 산지와 시내 유명 커피 로스터리를 찾아갔다.
우롱차의 나라에 왔는데 현지 차를 못마시고 갈 수는 없어!
우리로 치면 송파 장지역을 넘어 남한산성 꼭대기 백숙촌 위치에 티플랜테이션이 있다. 이름은 마오콩 또는 마오쿵이라 불리는 모양이다.
오전에 트레일 걷기를 한 뒤, 사람이 적어보이고 좀 괜찮은 듯한 느낌의 언덕 위의 티하우스에서 차를 하나 시켰다. 눈으로 보기에 약 2-30g정도 한 통을 주셨다. 사전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동네는 ‘가방’차라는 게 유명하대서 그것을 골랐는데, 시즌의 문제로 다른 차를 추천 받게되었다. 철관음이나 다른 지역 우롱차 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향도 달달한 맛도 꽤 좋았는데, 근데 내가 집에서 보이차 마시던 때처럼 20초를 넘게 기다리고 있으니 할아버지 사장님이 아이고 그거 아니야~ 라는 듯 이렇게 손짓을 하셨다. 그래, 그런걸보니 우롱차였던 것 같네. 나중에 우롱차를 구매한 뒤에 알게된 것인데, 이쪽 차는 10-15초에서 시작해 3번째 이후 탕이 추가될 때마다 10초정도씩 더 우려야 했다,
꽤 큰 찻배를 가진 나는 이 날도 대형 주전자 하나를 다 비웠다. 그 뒤에 다기와 찻잔을 수건으로 닦고 잘 마르라고 뒤집어 놓고 가게를 나왔는데, 아차 싶었다. 이렇게 뒤집는 게 여기 문화에서 이상한 의미인 것은 아니겠지?
그 뒤로 좀더 걸어서 작은 차 판매점에도 들어갔는데, 음식 없이 시음해주는 티하우스였다. 차를 골라내는 모습과 벽에 티 마스터라 쓰여있는 데에서 까막눈이지만 믿어보자 생각했는데, 아리산 홍차같은 타지역 유명차도 들여놓고 있어서 다양한 맛을 봤으니 만족했다. 그리고 예산을 넘어서 또 차를 샀다, 타이완 홍차.. 맛있었어, 후…
뭐, 그런데 이것은 나쁜 선택이었던 게 아니다. 저녁에 탕누어가 찬양한 백화점 지하1층 식품매장을 구경하기 위해 들렀지만, 이런 지역 상품이 잘 없었던데다 이번 짧은 방문 중에는 나는 시간과 언어의 제약으로 시내 차가게를 탐색해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커피세트 = 에스프레소 1잔과 에스프레소 베이스 제조음료 1잔
무려 10년을 넘게 로컬에서 버텨준 로스터리인듯했다. 메뉴구성 상 주요상품은 에스프레소 한샷과 더불어 에스프레소 기반의 제조음료가 세트가 아닌가?
독특해서 주문했다가 에스프레소 한잔에 상콤 새콤 시콤 달콤 달달 찐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그 뒤를 이어 마신 카푸치노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알게된 것이다. 왜 이사람이 에스프레소가 함께 나오는 세트를 구상했는지. 자신의 구현하고자 했던 맛은 그 단일한 한잔을 통해서야 구체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봤던 게 아닐까.
사장님 어쩐지 고민있고 피곤해보였지만, 진짜 오랜만에 맛있었다. 맛공간이 넓을 뿐더러, 어떤 지향성(또는 지향점)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었어. 그리고 그 배경엔 노력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노력어린 것의 맛에 왜 감동하냐면
이 에스프레소 세트를 생각하다보니, 종종 어떤 생산활동에 감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무언가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연구하고 궁리하고 들이받고 파내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만하고 다시하고 매일하고 계속하고 또하고 그렇게 하다 결국 애지중지하며 자신의 일부로 삼게된 사람들을 목격하면 경외감이 든다.
그건 마케팅 메시지 (요즘엔 브랜딩이라고 부르는 영역이기도)를 통해 전달받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영향이야 있겠지만, 내 경우엔 그저 그들이 생산한 (그 시간과 고민의 결과, 핵심을 담은 정수) 어떤 한 조각을 내가 먹고 마셔서 몸에 넣든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거나 읽든, 만지거나 냄새로 맡든하여, 인지의 폭에서 느끼는 순간 그냥 알게 된다.
“지금 나한테까지 온 이게, ‘그냥 만들어봤어, 아무것’이 아니구나, 거기에는 이 사람(들)의 시간도 노력도 이유도 고민도 모두 그동안 있었구나.”
이 지점을 느낄 때에 그 때는 마음이 일렁이고 눈물도 난다. 성취와 성장에 이르는 길에 작건 크건 고비와 고민이 없었을까.
거기에는 해내기까지의 머리를 쇳덩이에, 뜨거운 모래밭에 쥐어 박는듯한 고통도 있었을 것이고 그만둘까 싶었던 순간들도, 방황하고 고민하고, 불확실성 앞에서 흔들리는 순간들도 있었다. 없을 수 없다.
즉 결과물 하나가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에는 개인들의 삶이 치룬 정성적 비용, 그의 시간과 집중과 노력이 있다. 그 앞단을 이루는 거대한 이야기는 평소엔 ‘생산비용’이라는 단어 아래에 잠들어 있지만, 종종 이렇게 숨길 수 없는 때도 있다.
…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게는 그런 무모함과 강인함과 인내가, 그러니까 용기가 있나.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을 해낼 수 있나.
아니 나도 그렇게 해내고 싶다.
나는 그렇다면 무엇을 지켜내고 어떻게 키워내고 싶을까.
이런 나의 고민과 연결되다보니 이 노력어린 것들을 만날 때면 더욱 마음이 일렁거리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