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어디를 가도 보이는 게 거의 비슷해졌다. 이제 서울은 대규모 공유 단지 같다.
평준화된 동네, 표준화된 주거단지, 정형화된 간판. 도시 전반이 ‘적당함’으로 뒤덮여있다. 도시 탐험의 재미가 점점 사라진다. 그러다 우둘투둘한 길, 약간 좁아보이는 길을 발견하면 기대를 한번 해본다. 그렇게 만난 시장도 역시 ‘현대화’를 겪었다면 슬프다. 오늘의 포방터가 그랬다.
이 도시에서 이제는 크게 특색이나 개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개성은 몰개성인지도 모른다. 국가 전체인구의 절반이 몰개성한 도시 안에서 생활의 안정과 부의 확대를 생각하고 특정 자산의 등락세에 매달려 정책결정을 한다. 마치 다양하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화적 생존조건과 반대로 간다.
동네시장 이름 뒤에 붙는 전통의 뜻이 뭐였을까? 이제 그곳들에는 전통이란 단어에 기대할만한 문화적 특수성이 없다. 그래서 뭐라도 기록해야겠다. 대도시가 이정도로 몰개성한 상태가 너무나 독특해서 흥미롭다.
추가적인 더 생각을 적어놓자면,
버트런드 러셀의 책 행복의 정복에서 제시된 ‘촉촉한 땅에 맨발로 서서 손에 쥔 흙의 냄새를 맡는 아이’의 이미지가 종종 생각이 난다. 오늘날 서울에서 자라는 아이들 중 얼마나 자연의 경이를 일상적으로 느낄지 궁금하다.
만약 다음 세대 우리 인구의 절반이 자연에 대한 경험치나 깊은 이해 없이 성장한다면, 앞으로 우리 서울은, 한국은 어떻게 될까?
자연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이(이것을 능력으로까지 불러야 하다니..) 제 때에 계발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인간으로서 잃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을 통해 겪은 바 없이 생태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는 것, 공존을 우선순위에 두는 의사결정이 가능할까?
